아이 학교에서 부모교육으로 신청했던 독서교육활동 종강날이었다. 11명의 엄마들은 '그림책 놀이'라는 주제로 10회 차 강의를 훌륭히 완주했다. 강의를 이수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들은 그림책 놀이 지도사 자격증 2급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림책 놀이 지도사 자격증을 따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그림책 계획 교육안'이란 것을 작성해서 내야 한다. 둘째, 실제 수업 시현하는 동영상을 촬영해서 제출해야 한다. 수업을 들었을 때는 가볍고 즐거웠는데 막상 자격증을 따야 한다니, 그림책 계획 교육안이라는 것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종강파티가 끝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서 집에 남았는 그림책을 한 권 한 권 꺼내 보았다. 맞아! 이 책은 00 이가 특히 재밌게 읽었던 책이었어. 엇! 이 책은 그림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이에게 읽어주기 너무 어려웠던 책이었어. 내 상상력이 부족함을 철저히 느끼게 해 줬던 글 없는 그림책도 보였다.
남아있는 책들은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정리하고 남은 몇 안 되는 소장 가치가 있는 책들이었다. 그중 내가 끌렸던 책은 바로 린제이 캠프 작가의 "왜요?"라는 그림책이었다. 오랫동안 간직했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읽어줬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읽었을 때의 느낌도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책 속의 주인공 릴리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왜요?"라는 말이다. 아빠는 릴리의 대답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지만 이따금씩 짜증이 나서 "릴리, 그건 그냥 그런 거야. 그냥 그런 거라고."라고 말하며 소파에 머리를 박는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아빠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우리 집 둘째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 호기심 덩어리다. 어렸을 때부터 왜?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지식의 한계에 부딪혀 "엄마도 몰라" "왜 자꾸 물어봐" "그냥 그런 거야"라고 대답을 해버리곤 했다. 초등 4학년이 되어서는 책을 통해 배우다가도 엉뚱한 구석에서 또 내게 질문을 한다. 어느 정도 대답을 해주지만 너무 허무맹랑하거나 정말 모르겠는 질문은 초록색 창에 검색해 보라고 한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아이의 호기심과 질문에 귀찮아하고 회피하려고 했던 엄마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질문이 많은 릴리의 지구에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겠다고 찾아온다. 릴리는 외계인들에게 "왜요?"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진절머리가 난 외계인은 지구를 떠난다. 어른들도 두려워 떨던 외계인을 릴리가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릴리의 아빠는 그런 릴리의 행동에 자랑스러워하며 앞으로 절대 짜증 내지 않기로 다짐을 한다. 마지막에 릴리의 "왜요?"라는 질문에 문을 닫으려고 고개만 빼꼼 내밀며 "그냥 자랑스러웠어"라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눈치를 본다. 그렇게 보통의 어른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어른이 된 나는 아이의 질문과 호기심에 기특해하고 아이의 미래를 기대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찮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나의 그런 퉁명스러운 대답, 표정, 말투가 질문을 회피하는 아이로 키울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 지도사 자격시험의 첫 그림책은 "왜요?"라는 책으로 골랐다. 아이들과 외계어 암호를 풀면서 외계어로 단어와 문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 책 속의 외계어를 해독해 내는 시간도 좋을 것 같다. 나만의 외계어를 만들어 외계어 만들기 책을 만들 수도 있겠다. 질문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음을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재활용 각 티슈를 활용해 궁금한 질문을 종이에 써서 각 티슈 질문상자로 만들어 보고 싶다. 한 명씩 돌아가며 질문종이를 꺼내 나만의 대답을 해보는 시간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그림책을 만나고 싶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활용하여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