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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Jul 12. 2023

청소하고 싶은 날

몸과 마음이 콩밭에 있으니

집에 먼지가 쌓여간다.


옷장을 활짝 여니

회색빛 먼지뭉치가 내 발 밑으로 또르르.

봤지만, 못 본 척.


비 온날 현관 바닥 얼룩진 물자국

어디선가 딸려 들어온

작은 나뭇잎 하나

봤지만, 못 본 척.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아이들 잠옷.

열려있는 옷장.

뒤엉켜 있는 침대 이불.

봤지만 못 본 척.


식탁은 시리얼 먹다 흘린 우유 자국

싱크대에 쌓인 그릇과 컵이  한가득

봤지만, 못 본 척.


플라스틱 용기, 찌그러진 맥주캔과 종이들이

뒤엉켜있는 재활용 수거 박스

봤지만, 못 본 척.


읽다만 욕망의 책들

반납 기한 지난 연체된 책들

소파, 탁자, 방바닥 할 곳 없이 너저분 벌려져 있다.

봤지만, 못 본 척.


둘째 아이의 종이접기

종이딱지, 종이비행기, 종이 팽이, 종이곤충들

흩어져있는 색종이들과 종이접기 책

버릴 수도 없는 알록달록 종류도 다양한 색종이들

봤지만, 못 본 척.


봤지만 못 본척한 시간이 하릴없이 지나간다.

단체 카톡방 울림이 +300개다

무언가 신이 난 것 같다.

나의 시선은 여기에 머물렀다.

휴대폰 들고

화장실 앞을 지난다.

+300개의 카톡을 확인하려는데 이 냄새는..




변기에 제대로 조준하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변기 주변에 튀기고 흘린 노란 액체의 냄새가

제발 봐달라고 애원한다.

봤으나 못 본 척

난. 못. 봤다고 하고 싶다.


눈은 감겠으나, 내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도저히 못 참겠다.

이 냄새.

아들 키우는 집 들은 알만한 이 냄새.

디퓨저를 뚫고 새어 나오는 이 냄새.

하루만 더 참아? 변기 청소 정말 싫다.

싫어.


결국,  손을 들고 만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니. 결국  내 일인걸.


오늘, 대청소 한번 제대로 해보자.

내 반짝반짝. 빛을 내리라.

내 반짝반짝. 빛을 내리라.




지니를 부른다.

오늘은 최신 음악 말고 청소할 때 듣는 음악으로 골라 달라고 해야겠다.

"지니야, 유튜브에서 청소할 때  듣는 음악 검색해 줘"

지니는 언제나 친절하다.

리모컨을 들어 적당히 볼륨을 맞춘다.

너무 오래 입어 헐거워졌지만 버릴 수 없는 애착 츄리닝 바지를 무릎까지 잘 접어 올린다.


노트북도

읽다만 책도 잠시 덮어둔다.

신명 나게 밀고 닦아보자.

오늘은 청소하기 좋은 날.

기지개를 쫙 켠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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