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기 가장 좋은 날은 '오늘'이고, 실행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지금'이다. 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는 '나중'이고,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단어는 '지금'이다. '내일'과 '나중'은 패자들의 단어이고, '오늘'과 '지금'은 승자들의 단어이다.
-이민규의 <실행이 답이다> 중에서
맘카페에서 좋다고 소문난 헬스장을 찾아 지난 6개월을 조용히 혼자 다녔다. 그동안 나를 볼 때마다 먼저 인사해 주는 트레이너들과 회원들이 있었지만 물어보는 말에 간단한 대답과 미소만 지을 뿐, 정해진 그룹수업이 끝나면 적당히 유산소로 시간을 채우고 나오기 바빴다. 내 우선순위가 운동은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이 있으면 운동을 하고 시간이 없으면 빠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인가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약속도 할 일도 아무것도 없는 날이었다. 오전 스케줄이라고는 헬스장 그룹수업이 하나 있는데, 비가 이렇게나 쏟아지는 날에 누가 운동을 할까 싶었다. 회원이 한 명도 없는 헬스장을 상상하며오늘도 쉴까를 고민하는 사이 카톡 오픈채팅 운동방에서 인증사진이 올라왔다. 비가 와도 만보인증, 수영장 인증, 홈트인증을 하고 있었다.
'와... 이렇게비가 많이 오는데.. 운동을 나가셨네....'운동인증방에 자극을 받아서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느니, 나도 빗속을 뚫고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은 이미흘러 있었고, 이러다 늦을까 후다닥 운동 나갈 준비를 했다. 우산을 꼭 쥐고 비를 피해 가며 총총걸음으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노란 조명을 받고 있는 선인장이 가득한 헬스장에 들어와 수업받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평소보다 더 많은 인원이 이미 매트 위에 있었다.
'헐... 이 언니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을 하는구나...'
세차게 내리는 장대비 따위는 운동 놀이터의 그녀들에게 전혀 대수롭지 않다라는 걸 내 눈으로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들이 스트레칭하는 뒷모습은 마치 물 위를 떠가듯 백조처럼 우아하고 고요했다.
3년을 꾸준히 운동하신 왕언니는 몸이 깃털처럼 가볍고 유연하시다. 몸이 아파서 운동을 시작한 키다리 언니는 5년 넘게 매일같이 나와 수업의 모범을 보여주신다. 운동 트레이너로 착각할 정도로 탄탄하고 매끈한 몸매를 가진 젊은 엄마는 누구보다 밝고 힘찬 에너지를 내뿜는다. 올해 봄쯤 분명 통통한 몸으로 빅사이즈 티셔츠를 입고 내 옆에서 운동하던 분이, 어느새 쌀쌀한 가을이 되자 살이 쏙 빠져서는 허리가 훤히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따뜻한 날 내가 본 그녀의 살들은 시간이 흘러 온데간데없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왜 그동안 잘 안 나왔어요~ 조용하신분 왜 안 나오냐고 다들 궁금해했어요. 이제 빠지지 말고 우리 같이 운동해요~"
가녀린 몸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천상 여자'의 느낌을 풍기는 언니가 오랜만에 나온 나를 챙겨주었다.
'아~ 나는 여기서 조용하신 분인가'보다 생각이 들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궁금해했다는 말에 헬스장의 어색한 공기가 좀 편안해졌다. 난 여럿보다 혼자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한두 마디라도 말을 걸어주는 회원들이 고마웠다. 다른 회원들의 운동하는 모습은 알게 모르게 내게 자극이 되고 있었다.
그룹 수업을 마치고 런닝머신을 타려고 버즈를 귀에 꽂는데, 살을 쏙 빼고 나타난 그 엄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언니! 런닝머신 그냥 타면 힘들고 재미없어요. 유튜브에 '같이 뛰어요' 검색해서 하나 골라서 틀어놓고 타봐요. 저는 이거 봐요~ 시간 정말 빨리 가요. 유튜버가 속도 줄이라고 할 때 줄이고 올리라고 할 때 올리니깐 살 빼는데 효과도 좋아요. 그리고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니깐 저는 좋더라고요."
런닝을 하는 내내 유투버랑 같이 뛴다?
이제껏 예능이나 드라마를 틀어놓고 일정한 속도로 두고 빠른 걸음으로만 걸었다. 남들처럼 뛰다가는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시도 조차 하지 않았다. 속도 7을 눌러본 적이 없던 나인데, 과연 뛰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힘들면 멈추면 되지. 뭐. 한번 틀어나보자는 마음에 추천해 준 영상을 누르고 얼떨결에 따라 뛰기 시작했다. 유튜버가 말하는 속도 그대로 따라 할 수 없었지만 가능한 만큼 조금씩 올려갔다. 런닝머신에서 이렇게 뛰어본 건 내 마흔 인생을 살면서 처음 있는 날이었다. 중간에 멈추고 싶었지만, 계속 파이팅을 외쳐주는 유튜버가 옆에 있었고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10세트 속도 9를 맞추고 1분 버닝을 외치며 최대치로 달릴 때 쾌감이랄까 성취감이랄까.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느껴지는 숨 가쁜 내 심장소리가헬스장 전체를 가득 채우는듯 했다.
'거봐! 해냈자너. 진짜 잘했어. 정말 잘했다고'
내가 나에게 무한한 칭찬을 보냈다.
아!같이 뛴다는 게 이런 거구나.
혼자 했다면 절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운동하러 왔지만 혼자 운동하고 있지 않았고,
런닝머신 위에 혼자서 뛰고 있지만 페이스 메이커를 해주는 영상 속 수많은 운동메이트들도 있었다. 오픈채팅 운동방 인증사진 역시 내가 운동하는 사람들 틈에 들어가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 이제 같이 뛰어요!
비가 많이 내리던 날 헬스장을 오가며 찍었던 사진. 언젠가 비오는 날의 남광장이 그리울 것 같아서 담아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