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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 Jul 24. 2024

[독서록]리틀 라이프(A Little Life)

by. 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A little life)


네 명의 남자. 그리고 한 개의 리틀라이프.


예술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늘 고군분투했고 그리되리라고 이상하리만치 확신했던 제이비. 부모의 무심한 비교 속에서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숨어 살아온 맬컴. 그저 묵묵히 배우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윌럼. 그리고 태연함을 무기로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조차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주드.


대학 시절부터 함께 해 온 넷은 저마다 다른 고민과 꿈을 안고 있었지만 주변의 "아직도?"란 소릴 걱정해야 할 만큼 여전히 함께였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꿈을 좇기 위해 각기 다른 곳으로 향할 때에도 그들은 기꺼이 함께했다. 자신의 낯선 모습과 새로운 사람들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부정하고, 때론 도망치고. 그렇게 타인과 함께할 수 없는 굴곡들을 마주하게 될 때도, 그들은 늘 함께였다.




저자와 책


저자는 한야 야나기하라로, 한 번 듣는 것으로는 절대 올바르게 기억해 낼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이었다. 성에서 유추되듯 아버지가 일본계 미국인이고, 반갑게도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내가 유별난 애국자는 아니지만 이 점 때문에 책에 더욱 관심이 갔던 건 사실이다. 아쉽게도 한국과 관련한 행보가 크게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저자에게 한국에 대한 정서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저자는 편집자로 일하며 꾸준히 소설을 썼는데, 2013년 발간한 첫 번째 장편 소설 「숲 속의 사람들(The People in the Trees)」부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지금 리뷰하는 「리틀 라이프(A Little Life)」 또한 맨 부커상 후보에 오르고 메이저 지면에 올해의 책으로 꼽히며 비평가들의 찬사와 함께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Orgasmic Man, 1969(Peter Hujar) 출처: OCULA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강렬한 표지에 이끌렸을 텐데, 나 또한 그랬다. 책을 읽기도 전에 궁금해 먼저 검색해 보니, 포토그래퍼 Peter Hujar의 『Orgasmic Man(1969)』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표지와 관련해선 아래와 같은 저자의 인터뷰도 읽을 수 있었다.

"I really hung on for the cover. I love the intimacy, the emotion, what looks like anguish. There's something so visceral about it."
"저는 정말 그 표지를 고집했어요. 친밀감, 감정, 고뇌처럼 보이는 게 좋아요. 그 사진에는 극도로 본능적인 무언가가 있어요."
출처 : The Booker Prizes

확실히 남성의 표정에는 고통 같은 것이 서려 있다. 하지만 사진의 제목은 '절정에 이른 남자'다. 제목을 알고 보니 또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이미지의 불확실성이 이 책을 읽고 느낄 감상과 아주 긴밀하게 닮아있다고 말한다.


책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욱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래 뭐 한 번 읽어보지.'라고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압도적인 분량이었다. 1, 2권을 모두 합하면 총 1,000페이지에 달했다. 요즘 나오는 장편 소설들은 400페이지가 넘어가면 '와 백과사전이다.'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짧아지고 있는데, 이 정도 분량의 장편소설을 고른 건 해변의 카프카 이후 오랜만이었다. 두 번째는 영미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소설을 좋아해서 읽기도 하지만 다채로운 문장들을 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번역 도서는 저자의 원 문장이 아니라 역자를 거쳐 재탄생한 문장이기 때문에 항상 꺼려왔다.


그렇게 얼마간 고민이 이어지다가, 오히려 이 고민들이야말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책이라는 방증이라 결론 내렸다. 영상 매체(그것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가 글을 철저하게 대체하고 있는 요즘 그 압도적인 두께로 본토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번역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 독자들의 정서까지 사로잡았으니, 안 읽고 버틸 수가 없는 책이 아닌가?



감상 : 힘들다. 그냥 다.


한줄평

우리 모두는 삶을 살아간다. 사니까 삶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삼 주에 걸쳐 책을 완독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완독 했다'가 아니라 '완독 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힘든 책이었다. 나에게 읽기가 힘들다는 건 보통은 형식의 문제다. 독자를 만나기엔 아직 미숙한 수준의 문장이거나, 반대로 자신의 역량을 뽐내려다 보니 지나치게 난해해진 문장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이 힘들었던 건 그런 형식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억지스럽지 않은 감각적 묘사가 적소에 배치되었고, 번역 또한 작가의 의중을 존중하며 옮겼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힘들었던 건, 책 제목 그대로 A little life 때문이었다.


이 책은 네 명의 남자로 시작해 결국 마지막 한 명의 남자로 끝이 나는 이야기다. 문제는 네 명 중 한 남자의 인생이, 그 한 남자가 보여주는 a little life가,  허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심하게 고단하다는 것이다. 꼭 어딘가에 존재하는 신이, '어디 한 번 이것도 살아 봐.'라고 툭툭 던져대는 삶 같다.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는 비극에 지쳐 책을 덮으려 했다가, 호기심에 굴복해 다음 페이지로 넘기고, 결국 다음 페이지에게 또 당해버려 책을 덮어버리고, 그다음 날 다시 읽고는 싶은데 또 힘들 것 같아 주저하게 되고. 책을 쥐고 있는 내내 그것들이 반복되는 힘듦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완독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미 인물에게 흠뻑 몰입이 되어버렸는데, 여기서 읽기를 포기한다는 건 안 그래도 불쌍한 그의 인생을 내 손으로 내다 버리는 몹쓸 짓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이 얼마나 영악하게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지 실감했다.


그 지독한 삶의 주인 주드는 소설 초반에는 완벽하게 숨어있다. 작가가 보여주질 않는다. 나머지 세 명의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 흘러간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주드의 삶을 아주 조금씩, 정말이지 아주 감질나도록 그 단면만을 살짝살짝 드러낸다. 꼭, '각오해. 여기서 더 읽는 건 네 탓이야.'라고 저자가 유예 기간을 주는 것 같다. 그렇게 독자가 자신도 모르게 작품 속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 바로 그때 주드의 a little life가 휘몰아치듯이 전개된다. 손을 쓸 겨를도 없이 거세게 불어닥친다. 독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제발 얘 좀 내버려 둬!'하고 소리치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뿐이다.


그렇게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며 책을 읽다 보면, 마치 고행의 대가라도 되는 듯 제5장 행복한 시절이 펼쳐진다. '아, 드디어!' 주드의 행복을 만끽하다가, 언제 또 틀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을 버릴 수는 없다.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이 다음 주면, 다음 달이면, 다음 해가 되면 끝날 거라고 연신 되뇌던 주드처럼 말이다. 달콤함에 속지 않으려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건만, 저자는 독자들의 그 불길한 경계를 비웃으며 수많은 죽음들로 이야기의 종말을 고한다. 그 종말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한지라, 저자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 애정이 없는 걸까 하고 의심이 들 정도다.


그나마 작가의 아량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마지막은 해럴드가 윌럼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이게 꼭 주드의 삶을 함께 인내하며 버텨준 독자에게 저자가 건네는 위로와 격려 같이 느껴져 묘한 감정과 깊은 여운을 남긴 채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좋았던 점


다양한 직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 직업에 대한 밀도 있는 묘사가 돋보인다. 아마 저자가 저널리스트라서 가능했을까?

글의 초반부를 마치 남자판 Sex and the City처럼 가볍게 톡 터트린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글의 초반부터 주드의 a little life가 전개되었다면 이 정도로 성공한 책이 될 순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의 내면, 그리고 개인과 또 다른 개인의 관계처럼 복잡한 관념들을 선명한 감각적 묘사로 비유한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아쉬웠던 점


힘들다. 그냥 책의 모든 게 힘이 든다.

저자가 여성인데 주요 인물은 모두 남자다. 그래서 인물들의 성격이나 대화 면에서 남성의 일반적 특징과는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물론 이건 내가 성별에 대해 갖고 있는 스테레오타입 때문이다.

앤디가 주드에게 제공하는 외과적 처치에 비하면, 정신의학과 의사는 거의 무능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쉽다. 특히나 정신의학에 대해 대중의 태도가 열려가고 있는 요즘 시대에 말이다. 그리고 그게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아마 퀴어 소재에 익숙하지 않고 익숙해질 생각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굉장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기억


정상을 가장하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노력이 너무 커서 다른 데 쓸 에너지가 없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주드)


"너 자신한테만 미안해해."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속죄하려 드는 주드를 위로하는 앤디)


"외로워." 커다랗게 입 밖으로 내어 말하자, 고요한 아파트가 솜에 스며드는 피처럼 그 말을 빨아들인다.

(늘 태연했던 주드가, 자신의 외로움을 인지하는 순간.)


그는 신문지를 다시 쓸 수 있도록 조심스레 풀었다.

(온전한 자신의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어린 주드. 작가의 이런 섬세함이 좋았다.)


"고객들과 있을 때는 약간의 활기a little life를 보여줘야 해."

(어쩌면 주드의 삶은 타인을 향한 a little life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삶이 그냥 보상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이 과한 보상을 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인생이 그에게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인생을 원망하지 않도록, 인생이 계속 앞으로 가게 허락해 주도록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온갖 아름답고 근사하고 바라던 물건들로 그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누려본 적 없는 행복이 찾아오자 혼란스러워하는 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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