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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엄마학대 아니니?

완벽하지 않은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많은 것을 배운다.

by 우아옹

금요일 오후 5시 삼 남매가 다니는 영어학원에서 카톡이 왔다.

[어머니, 통화 가능하실까요?]


'뭐지 뭐지! 누구 때문에 통화를 원하시는 거지?'

머릿속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론은 중1 첫째가 영어단어시험을 정말로 싫어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초등 고학년 때부터 첫째를 괴롭히던 영어단어.

단어 외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괜찮아, 힘들면 다음에 해도 되지"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퇴근하자마자 첫째를 불러 선전포고를 했다.

"오늘부터 매일 한과씩 영어단어 1개당 무조건 20번씩 써서 와 시험을 볼 거고 틀리면 다시 보는 거야!"

매번 봐주던 엄마가 강하게 나가자 놀란 토끼눈을 하고 보는 큰아들이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4학년 쌍둥이 동생들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지령이 떨어졌다.

"너네도 단어장 가지고 와!"




토요일 아침

남매 영어테스트로 집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순한 맛 엄마 테스트에 통과되지 못하면 바로 매운맛 아빠와 테스트를 하러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스템에 삼 남매 모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첫째는 2시간 넘게 징징거리며 영어단어를 의미 없이 쓰더니 테스트 결과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틀린 건 다시 써!"


"20 ×20은 400번인데요?

이걸 다 썼는데 또요?

엄마, 이것도 아동학대인 거 알아요?"


"아들아, 엄마가 쓰라고 하는 건 외우라는 거지 의미 없이 쓰라는 의미는 아니지 않겠니?

주말 아침 엄마도 늦잠 자고 싶은데

이러고 영어단어 테스트하게 하는 건

엄마학대 아니니?"


찔린 듯 구시렁거리면서도 다시 단어를 외우는 첫째를 보며 둥이들도 눈치 챙겨가며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주말에 전쟁을 치른 덕분인지 화요일에 영어학원 단어시험 만점을 받은 큰아들.

씨익 웃으며 칭찬이 고픈 눈으로 시험지를 보여준다.

이럴 땐 또 무한칭찬 들어간다!

"최고최고최고"


한번 만점의 재미를 보기 시작한 첫째는 일주일 만에 단어 외우기 트라우마를 벗어던졌다.

'진작 좀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지금이라도 이게 어디냐'라는 긍정마인드로 바꿔본다.


아직은 퇴근하고

엄마도 피곤하다는 호소와 안 하면 국물도 없다는 협박을 해야 하는 4학년 둥이들에게

"모든지 때가 있어!

그때 안 하면 나중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거야"라며 잔소리 폭탄을 던졌다.


단어테스트를 나이스하게 끝내고 게임하러 가던 큰아들이 저 멀리서 소리친다.


"엄마 그거 제 얘기하는 건가요?"


"아들 너 눈치 빨라졌다!"


"그리고 항상 강조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거를 안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쉽게 얻을 수 없어."


또 잔소리 폭탄이 쏟아지자 냉큼 방으로 피신하는 큰아들이다.


"너 동작도 빨라졌다"





완벽하지 않은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많은 것을 배운다.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아침

또다시 둥이들에게 단어테스트를 하며

"다시! 다시!"를 외쳤다.

외웠다고 하면서 자꾸만 엉뚱한 알파벳을 쓰는 아이에게

"이건 네가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해서 그러는 거야, 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어"라며 우아하게 다그쳤다.

속상해도 한 번은 임계점을 넘어서야 하니깐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2월부터 시작한 PT를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가고 있다.

2주 만에 갔더니 너무 오랜만에 왔으니 쉼 없이 6세트를 하시겠다는 PT선생님.

땀을 뻘뻘 흘리면서 너무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회원님! 할 수 있습니다. 못하시는 게 아니에요.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아주 우아하게 가슴에 비수를 꽂으셨다.


잠깐 이 멘트 어디서 많은 들어 본 거 같은데..


'얘들아! 미안하다~~~!'


거울치료 제대로 하고 어그적 어그적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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