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 엄마 이야기
천재가 이슈다. 10살의 나이에 과학고에 들어간 어린이는 홀로서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중학교때 땅꼬마로 전학온 한 친구가 서른이 넘어 소식을 들었는데 키가 180이 넘는 장신이 되었다고 해서 놀란적이 있다. 반에서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아 있던 초등학교 친구는 성인이 되어서 단신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재능도 신체적 성장속도와 비슷해서 아이마다 시기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나 자신을 포함 내 아이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다.
영재 소년으로 이름을 날리던 아이였던것 같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이라 지난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한번 보고, 강현군이 운영한다는 채널에도 들어가 봤다. 화면의 한가운데에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한 영리한 소년은 과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보였다. 그런데 그 화면 앵글의 오른쪽 혹은 왼쪽에, 정면에서 아이를 사랑스럽게 지켜보고 계실 부모님이 나는 더 선명하게 보였다.
어린 강현이가 학교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아프셨을까, 더 잘할 수 있고, 더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과학고에 진학을 시키셨을 텐데, 문제가 생길때마다 학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도움을 주셔야 했을것이다. 홈스쿨링으로 검정고시를 패스하느라 가정에서 얼마나 부모님의 역할이 컸을지 너무 이해가 간다. 순간순간 흔들릴때마다 다독여야 하고, 매일 해야하는 분량과 계획을 지켜나가는데에도 부모의 손길이 매순간 필요했을 거다. 이 모든 과정은 절대 아이가 혼자 부모의 도움없이 해낼수는 없다. 그랬다면, 과학고에서의 갈등도 혼자서 헤쳐나갔을 테니까. 아이를 나무라는 것도, 부모를 나무라는 것도 아니다. 내 성과가 다른 사람의 그림자에 가려 도둑을 맞기도 하고, 나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아 유령취급을 받거나, 주목받지 못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경험은 작금의 대한민국 학생들이 모두 겪어내고 있는 삶이며, 부모가 방패막이를 해주거나 대변인 역할을 해주는 일은 아이들 스스로가 거부한다, 그들도 자신이 겪어낼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다. 안타깝지만, 수학적 천재성만으로 전세계 유례없는 '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이 되기에는 무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천재성을 가진 아이가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펼칠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세상에 최고의 부모라고 할 것이다. 아이도 부모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질 것이고, 부모역시 얼마나 아이가 자랑스럽고 뿌듯할까? 하지만 현실은 안전하고 평화롭지 않고, 세상은 내 아이만을 위해 배려해주지 않고, 내 아이의 재능이 조금만 울타리를 넘어서면 평범, 혹은 평범이하의 능력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싫었다
민사고에 입학한 후에 아들은 전교생이 천재라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 못해서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길래, 장난치는거 아니냐고, 전교 일등만 하고, 학교에서는 배울게 없다고 불평불만을 하던 네가 무슨 말이냐 했다. 그래 맞다. 대치동에서 초등때 미적분하고 들어온 애들이 절반이 넘는듯 했다. 게다가 독서 수준은 마이클 샌델이나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기본이고, 뮤지컬, 오케스트라, 밴드, 힙합까지 갖추고 대통령표창을 받으며,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금메달을 달고와서는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시험공부를 한다. 한없이 스스로가 얼마나 더 채워져야 하는지 배워가는 아들을 보면서, 참 민사고에 보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강현군 부모님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십분 공감한다. 어린 아들이 그룹 활동에서 그런 취급을 당해서 상처받고 돌아오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드실거라는 것을.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는 일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그것이 실력, 외모, 성별, 나이, 경제적능력, 집안의 배경, 나아가서는 인종과 국적 등등, 어떤 요소는 부당하고, 어떤 요소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며, 어떤 요소는 메익센스라고 구별하며, 인정하고, 감내하고, 혹은 저항하면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나가는 과정을, 나는, 부모인 나의 방식으로는, 가르쳐 줄수가 없었다고. 나는 고작 학교에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교장실을 쳐들어가는 일 정도가 내 능력이었고 내가 강현군 부모님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방식이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경험을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직접 해보기를 바라셨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우수한 면만을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아닌, 추하고, 부끄러운 면을 발견해내고, 비난받고, 수정해나가고, 그 과정속에서 배우고 감동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배울수 있기를 바랬다. 그렇게 천재소리를 그만듣고 떨쳐내고 평범해지기를 가슴 아프게 지켜봤지만, 지난 세월동안 내가 왜 아이를 돋보이게만 하려고 새로운 걸 가르치고 곧잘하면 금방 그걸 드러내고 칭찬을 받게 하고, 무대위에 세우고 즐거워했는지 미안하기만 했다.
강현군 에게 보낸 과학고 학부모의 항의 메일을 보고, 크게 공감했다. 물론 그 부모님의 언어선택은 부적절했지만, 과학고 아이들이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를 낮추고, 개발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지, 그 시간을 함께 보냈던 부모로서, 천재소년의 뜬금없는 등장은 불편했을 테니까. 항의 메일의 어머님의 의도는 사실과 다른 부분을 차치하고라도, 요지는 필자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느꼈다.
사족이지만 나는 방송계에도 오래 몸을 담았었고, 영재발굴단과 같은 포멧의 프로그램처럼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영상구성과 연출방식을 잘 안다. 과거 경력덕에 가족들에게 카메라 밖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주면, 다들 TV 프로그램이 재미가 없어져서 필자의 가족들 반응은 이렇다 "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고 깃발을 꽂고 만세를 부르는 저분 .... 그 앞에 미리 카메라 어깨에 메고 뒷걸음치면서 올라가는 카메라맨이 있다고 ...."
아이를 재단하고 연출하는 일에 나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민사고가 아들을 불렀고, 나는 아이를 기꺼이 놓아 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무언가에 취해 있었나 싶었다. 천재를 품고 계신 모든 부모님들에게, 그 대단한 실력과 영재성을 품고 같이 가려 하시지 말고, 되도록 빨리 세상에 내놓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갈등과 관계를 익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평범함을 배운다는 것이 천재성을 댓가로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10살에 대학을가고 석박사를 따는 것으로부터 과연 '누가'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그리고 민사고의 모든 '평범해진 천재들' 과 그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부모님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