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 엄마 이야기
1학년 말 진로를 정해야 한다. 국내파 문이과, 해외파 문이과로 총 150명 남짓의 전교생이 4개파로 구분되어 내신경쟁을 하게 된다. 말도 안되는 구조이긴 하다. 제일 수월해 보이는 국내 문과도 40명 안팍이었는데, 설마 중간도 못하겠나 싶었는데 중간은 신상계였다. 민사고 갔다면서 왜 서울대에 안갔어요 ?
1. 서울대는 안간다 .
라고하면 거짓말일테지만, 서울대가 전국 고등학생들에게 골고루 기회의 평등을 주기 위해 한해 3200여명을 뽑고있으니, 수시전형에서 서울대를 간다는 것은 줄서기에 불과하다고 봐야하지 않을지. 한발치 물러나서 보면 산술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운것이, 전국고등학교 수가 이미 2300여개이다. 공립학교인 서울대가 해야할일은 전교1등을 기본적으로 선발하고 나면, 한학교에 두명도 더 못받는 수다. 허허 서울대는 안가고싶다. (n 수는 자유)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나면, 민사고에서 서울대에 갈 학생들의 쿼터는 정해지는 것 같다. 세부특기나, 담임이 써주시는 종합의견등은 수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바램만큼 크지 않다, 아주 미약하다. 1등급 성적과 노멀한 세부특기를 기록하는 학생과 , 2-3등급학생의 환상적인 세부특기를 비교하면 , 결과는 냉혹하게 1등급만 서울대가 데려간다. 설마가 아니라, 정말 실상은 너무 냉정하다는 사실. 물론 과목에 따라 수강생이 한자리수인 과목에서는 2,3등급이 정성평가될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현실은 또 한번 냉혹하게 그런거 없다. 수강생이 8명인 ap 과목이었는데 8명 모두 a를 받았는데, 그럴수 밖에 없는게, 8명 모두 내로라하는 영어고수들이었고, 아들도 해당학기 영어교과우수상에 영어논술 금상수상자였다. 근데 이런 과목들이 수두룩한데 대학기준 내신환산점을 어찌 낸다는 것인지. 아무튼 내신은 원점수 추척으로 0.1 단위로 추락한다.
산술적으로 서울대에서 보는것은 결국 내신 등급 1만이다. 환상적인 세부특기사항과 서류를 꾸려봤지만, 그들이 한페이지라도 들여다봤는지 의문이다. 우리 한국 대학들의 수시전형이 그렇다. 다양한 전형이 나뉘어있어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정함을 표방하는듯 하지만, 내신 등급으로 1차를 걸러낸후, 그 이후에 세부특기사항및 적성,전공적합성을 본다는 뜻이다. 많은 입시전문가들이 결국은 내신으로 뽑는것이라는 말을 하고있고, 그래도 민사고인데 99점 1등급과 98점 2등급을 정성평가 하지않을까 기대하지만, 기대를 버리시라고 하고싶다. 믿고 싶지 않으시면, 자유이시고, 안간힘을 써보아도 결과는 냉혹할것이니 아이가 졸업 한 후에 저처럼 깨달으시길 바란다. 초심으로 돌아가시길.
2. 서울대 입결의 실상
민사고에 와서 서울대에 가는게 왜 불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 중이다. 민사고는 2학년 1학기때 국제반과 국내반으로 나누게된다. 국제반도 문과와 이과, 국내반도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내신경쟁을 시작된다. 얼핏 계산해도 150명 남짓의 전교생이 1/4로 나뉜다고 보면 되는데, 각 40명 선이었다. 인서울을 하려면 적어도 20명안에 들어야 한다.
매년 각 학교에서 발표하는 대입 입결은 누적된 n수생의 당년도 입학결과 수치이다. 그래서 매년 서울대 합격자는 앞선 선배들의 고된 재 도전이 합산된것이다. 대입을 생각하자면 앞이 캄캄한것은 민사고가 아니라 국내 모든 고등학교를 다니는 입시생들의 고전이다.
3. 그럼 왜 민사고에 가는가
서울대를 가겠다고 민사고에 오는 친구는 결론적으로 거의 없다. 서울대를 갈 사람은 어느 고등학교에서든 서울대를 간다. 객관적인 '서울대 가는 민사고' 의 허상에 대한 인덱스를 거론했으니 이제 톤을 좀 낮추어, 서울대에 안갈거면 왜 굳이 민사고를 가는냐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금은 100분 면접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개정된 통합면접도 기존의 민사인을 가늠하는 기준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개교이념이고, 민사인이 될 '그런' 인품을 가진 아이들을 품어내는 학교여야 하기 때문이다. 왜 면접으로 최종 합격을 결정하는지는, 꼭 민사고가 아닌 다른 명문고 혹은 명문대학교도 마찬가지, 그 눈빛과 말의 품성을 통해 사람의 됨됨이를 알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우리는 기존에 천재라고 불렀던가, 그랬다면 아이들의 성장과정 동안 한 두번은 내 아이가 천재일까, 혹은 댁의 아이는 천재가 아닐까요, 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많다. 그런 이유로 민사고를 선택하지 말았길 바란다.
초등학교 3학년때쯤 학교에 다녀와서는 " 어머니, 어머니, 이리 와보세요, 비둘기가 땅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먹을때 어떻게 먹이를 찾는지 아세요? 이렇게 찾아요 ( 하면서 옆으로 고개를 돌린채 한쪽 눈을 바닥에 고꾸라지듯이 들이대면서 ) 이렇게 찾아요, 왜냐면 눈알을 사람처럼 돌리지 못해서 그래요, 그리고 위 아래 옆을 볼때 빨리빨리 틱틱틱틱 하면서 움직이잖아요 " 그때 정말 박장대소하고 눈물이 날정도로 웃은 적이 있다. 그렇게 비둘기가 한쪽눈을 바닥에 붙이고 모이를 찾는 모습을 흉내내는데, 얼마나 천진하고, 신기해 했는지, 나를 웃기려고 한게 아니라, 그날 아들은 조류의 안구에는 근육이 제한적으로 발달해서 눈동자를 못돌리는 대신 머리를 움직여야 하는 것, 그리고 전방을 향한 안구가 아닌 머리 양옆에 위치한 눈때문에 인간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된 날이었다. 그리고 또 하루는 시험공부를 하던날 책상위에 남겨둔 쪽지에 이런 시가 적혀있었다. '
잠
공부할때, 그게 방해를 한
맨마음으로 이겨낼 수 없는
공부의 악마, 잠
우리가 가장 모를 때에
참을성을 가진 치타처럼
엉금엉금 걸고 먼저 우리의
가슴으로 폴짝 뛴 후
인생의 기가 모두 다 전부
빠진 것처럼 편하고
나에게, 이 '잠'이란
행복의 약으로 볼 수 있음
아, 얼마나 편안하고 만족한
사람의 최고의 경험하는 것과
고생이 많고 애를 크게 쓴 뇌를
위해서, 드디어 쉴 시간을 쥘수 있다
잠, 과연 천사일까
악마일까 ??!
4. 민사고에 가길 잘했나 ?
지금도 종종 아들과 대화할때가 있다. 지금은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은 내 왼손 검지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KMLA 졸업반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주위사람들은 왜 민사고 갔는데 서울대에 안갔어요? 서울대 가려고 민사고 간거 아니에요?
계열별로 각 40명중 3-4명이니 민사고에서는 현역으로 10명 안팍으로 서울대에 들어가고, 재수 및 n수 선배들의 재 도전으로 여기에 5-6명이 더해지면, 평균 20명정도의 서울대 진학입결이 뜬다. 물론 서울대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각 대학의 의치한 계열로 분산되고, 카이스트, 지스트, 유니스트, 리스트 등의 공과학대로도 진학한다. 이렇게 비 서울대 명문으로 또한 20여명을 더하면, 그러고보면, 전교생의 절반이상이 서연고 및 과학대로 진학하는 셈이다. 현역 입결 하한선은 성균관대로 알려져있다. (물론 반수대상이며, 연고라인도 반수 재수를 거듭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건 다른 모든 고등학교가 같은 사정이고, 전반적인 입시제도의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누가 언제 고쳐줄지 ...)
민사고 갔다면서 왜 서울대를 못가요? 이런 질문에 그동안 나는 많이 반성해 왔다. 왜냐하면 질문 속에 담긴 의도에 지난날의 자식을 대했던 나의 태도와 오만에 대한 꾸짖음이 있어서다. 셀수 없이 상장을 가져오고, 무대위에 올려지고, 미디어에 노출되기도 했던 아들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과분한 칭찬과 찬사를 당연시 여겼던 적이 있어서다.
아들은 서울대에 가지 못했다. 반수 재수도 하지 않았고, 성적에 맞는 대학을, 본인이 좋아하는 영어와 외국어를 전문으로 특화된 대학에 들어가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고1때 12특을 버리고 한국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서울대를 갔겠지만, 알고도 한국행을 선택했다. 특혜를 원하지 않았고, 가만히 있어도 서울대에 갈 학생이 왜 한국에 가려하냐는 교장선생님의 만류를 안듣기로 했었다.
우리는 모두 민사고에 소위 미쳐있었고, 명문 민사인이 되고 싶었던 꿈 하나뿐이었다. 지금 그리고 아들은 민사인으로서 그가 속한 곳마다 부끄럼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고 있음에 여전히 놀라고 있다.
그래서 민사고에 갔던 거였다고 우리는 대화한다.
민사고에서 마음껏 놀길,
올해 새롭게 민사인이 될 후배들과 예비 민사고 엄마들에게 당부드림.
성공하는 일마다, 넘어지는 순간마다, 묵묵하게 응원해주는 것.
1학기 중간고사 치고, 전학가지 마시길.
졸업하고 ! 민사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평생가져가시는 것의 가치를 믿어보시길.
지난 12학년때, 아들은 존버정신으로 졸업한다며 의지를 다졌었다.
민사고에 입학하는 것 만큼
민사고를 졸업하여
진정한 민사인으로 남는것이
더 값지고 힘겨운 일이었던 것.
기억할 것
모두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