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폰지

by 남킹

찰스 폰지

"나를 믿어, 난 천재니까!" (혹은 역사상 가장 비싼 수업료를 걷은 남자)


서막: 2달러 50센트의 몽상가, 미국에 상륙하다

1903년, 보스턴 항구.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건너온 키 157cm의 땅딸막한 청년 하나가 배에서 내립니다. 주머니 속에는 단돈 2달러 50센트. 원래는 좀 더 있었는데, 배 타고 오는 길에 도박으로 다 날려 먹었습니다.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죠? 그의 이름은 카를로 피에트로 조반니 구글리엘모 테발도 폰지. 이름만 들어도 벌써 귀족 같고 신뢰가 가지 않습니까? 줄여서 우리는 그를 '찰스 폰지'라고 부릅니다. 현대 금융 사기의 '아버지', 아니 '대부' 되시겠습니다.

그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이렇게 외쳤을 겁니다.

"이봐, 미국! 내가 널 접수하러 왔다. 내 주머니엔 먼지뿐이지만, 내 머릿속엔 백만 불짜리 꿈이 있다고!"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었습니다. 그는 식당 설거지, 웨이터, 식료품점 점원 등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팁을 삥땅 치다 걸려서 짤리고, 손님에게 건방 떨다 짤리고... 아주 다채로운 '해고의 역사'를 써 내려갑니다. 그는 나중에 자서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1달러를 100달러처럼 보이게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아니요, 찰스. 그건 그냥 허세예요.

1막: 사기의 맛을 알아버린 캐나다 유학(?) 시절

미국에서 별 볼 일 없자 그는 캐나다 몬트리올로 튑니다. 거기서 '자로시(Zarossi)'라는 은행에 취직하죠. 이 은행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상대로 고금리 이자를 주며 돈을 끌어모으고 있었습니다. 폰지는 여기서 인생을 뒤바꿀 엄청난 진리를 깨닫습니다.

은행장 자로시가 이자를 어떻게 주는지 아세요? 부동산 투자 수익? 주식 대박? 아닙니다. 그냥 '새로 온 호구의 돈을 받아서, 먼저 온 호구에게 준다'였습니다.

"유레카!"

폰지의 뇌리에 번개가 쳤습니다.

"이거다! 돈은 버는 게 아니야. 돌리는 거지!"

하지만 자로시는 돈을 들고 멕시코로 튀었고, 멍하니 남겨진 폰지는 자로시 흉내를 내며 수표를 위조하다가 딱 걸려서 캐나다 감옥에서 3년 동안 콩밥을 먹습니다. 출소 후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또 밀입국 알선하다 걸려서 애틀랜타 감옥행.

감옥은 그에게 '하버드 경영대학원'이었습니다. 거기서 온갖 잡범들에게 범죄의 기술을 배우고, 세상에 멍청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학습했으니까요.

2막: 우표 하나로 세상을 속이다 (전설의 시작)

1919년, 보스턴. 마흔이 다 된 폰지는 여전히 빈털터리였습니다. 수출입 잡지나 만들까 하고 사무실을 차렸는데, 파리 날리기 딱 좋은 날씨였죠. 그런데 어느 날, 스페인에서 날아온 편지 한 통이 그의 운명을 바꿉니다. 편지 안에는 '국제 반신권(International Reply Coupon, IRC)'이라는 게 들어있었습니다.

이게 뭐냐고요? 쉽게 말해, A국가에서 사서 편지에 동봉해 보내면, B국가에서 우표로 바꿔주는 쿠폰입니다. 그런데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경제가 박살이 나서 환율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이 쿠폰을 1센트에 사서, 미국에서 우표로 바꾸면 6센트어치가 되는 기적의 수학이 성립된 거죠.

폰지의 눈이 뱅글뱅글 돌아갑니다.

"잠깐, 이탈리아에서 쿠폰을 왕창 사서 미국에서 우표로 바꾸고, 그 우표를 현금화하면... 수익률이 400%?"

물론 여기엔 맹점이 있습니다. 우표를 수천만 장 바꿔서, 그걸 다시 현금으로? 우체국 직원이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고 쫓아낼 게 뻔하죠. 하지만 폰지에게 '실현 가능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그럴싸해 보인다'는 것이었죠.

그는 즉시 '증권 거래 회사(Securities Exchange Company)'라는, 이름만 들어도 뭔가 월스트리트 냄새가 나는 회사를 차립니다. 그리고 전설의 멘트를 날립니다.

"45일에 50% 수익 보장! 90일이면 원금의 두 배!"

당시 은행 이자가 연 5%였습니다. 그런데 45일에 50%라뇨? 이건 사기거나 기적이거나 둘 중 하나인데, 사람들은 항상 기적을 믿고 싶어 하죠.

3막: 광란의 보스턴, "닥치고 내 돈 가져가요!"

처음엔 몇몇 의심 많은 사람들이 푼돈을 맡겼습니다. 45일 뒤, 폰지는 보란 듯이 이자를 붙여서 돌려줬습니다. 어떻게? 뒤에 온 사람 돈으로요. 소문은 산불처럼, 아니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보스턴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야,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있는데, 완전 미다스의 손이야!"

"우표를 뭐 어떻게 한다는데, 난 모르겠고 돈이 복사가 된다니까!"

사람들이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찰관, 판사, 청소부, 가정주부 할 것 없이 쌈짓돈을 들고 폰지의 사무실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무실 앞 줄이 블록을 두 바퀴나 감았습니다. 돈이 어찌나 쏟아져 들어오는지, 직원들이 돈을 세다가 지쳐서 그냥 휴지통에 쑤셔 넣고 발로 밟아 다졌습니다. 서랍을 열면 지폐가 팝콘처럼 튀어나왔죠.

폰지는 하루에만 25만 달러(지금 가치로 수십억 원)를 벌어들였습니다. 그는 157cm의 단신이었지만, 돈다발 위에 올라서니 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최고급 양복을 빼입고, 다이아몬드 핀을 꽂고, 1만 2천 달러짜리 커스텀 '로코모빌'을 타고 다녔습니다. 20개 방이 달린 저택을 사고, 에어컨이 나오는 수영장을 지었습니다. (당시에 에어컨이라니!)

보스턴 경찰들도 그에게 투자했기 때문에, 그가 과속을 하든 뭘 하든 경례를 붙였습니다.

"충성! 폰지 회장님, 제 이자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걱정 마게 김 순경. 자네 퇴직금은 내가 책임지지."

그는 그야말로 '보스턴의 예수'였습니다.

4막: 의심하는 자 vs 뻔뻔한 자

세상엔 항상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죠. 금융 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기요. 전 세계에 유통되는 국제 반신권(IRC)을 싹 다 긁어모아도 2만 7천 달러밖에 안 되는데, 폰지 씨가 굴리는 돈은 수천만 달러잖아요? 대체 뭘 사고파는 겁니까?"

폰지는 아주 여유롭게 대처했습니다.

"영업 비밀입니다, 멍청이들아. 내가 코카콜라 제조법을 너네한테 알려주리? 꼬우면 투자하지 마!"

이 당당한 태도에 의심하던 사람들도 "아, 비밀이라서 그렇구나. 역시 천재는 달라" 하며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심지어 폰지는 자신을 의심하는 잡지사를 고소해서 승소까지 합니다.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를 뚫을 기세였습니다.

하지만 '보스턴 포스트'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퓰리처상을 노리고 폰지의 뒤를 캐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금융 홍보 전문가 윌리엄 맥매스터를 고용해 폰지를 인터뷰하게 했는데, 맥매스터는 폰지를 만나자마자 직감했습니다.

'이 인간은 금융의 금 자도 모르는 백치다.'

맥매스터가 물었습니다.

"회장님, 지금 자금 흐름표 좀 볼 수 있을까요?"

폰지가 대답했죠.

"자금 흐름? 내 주머니가 흐름이고 내 지갑이 장부야!"

맥매스터는 곧바로 보스턴 포스트에 폭로 기사를 씁니다.

"폰지는 사기꾼이다. 그가 말한 우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땡전 한 푼 투자한 적이 없다. 그냥 돈 놓고 돈 먹기다!"

5막: 붕괴, 그리고 최후의 발악

기사가 나가자 보스턴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투자자들이 좀비 떼처럼 사무실로 몰려와 "내 돈 내놔!"를 외쳤습니다.

보통의 사기꾼이라면 이때 튀었을 겁니다. 야반도주, 멕시코행, 성형수술.

하지만 우리의 슈퍼스타 찰스 폰지는 달랐습니다. 그는 사무실 발코니에 나가서 성난 군중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도넛을 나눠주며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언론이 저를 음해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돈은 안전합니다! 지금 당장 원하시는 분께는 원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돈을 뿌렸습니다. (물론, 새로 들어온 투자자의 돈이었지만요.)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역시 폰지야! 언론이 쓰레기네!" 어떤 사람들은 환불받은 돈을 다시 투자하겠다고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종교죠. 사이비 종교.

그러나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매사추세츠 주 당국이 강제로 장부를 압수수색했습니다.

결과는?

부채: 700만 달러 (현재 가치 약 1,000억 원 이상)

자산: 61달러 가치의 우표와 약간의 현금.

네, 그가 말한 '수백만 달러어치 국제 반신권'은 사실 우표 수집가 앨범에나 들어갈 법한 양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허공에 뜬 숫자였죠.

1920년 8월, 폰지의 제국은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체포되는 순간에도 그는 기자들에게 윙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 재미있는 시간이었잖아? 다들 꿈꾸게 해 줬으면 됐지."

6막: 끝나지 않는 쇼, 그리고 쓸쓸한 퇴장

폰지는 사기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 감옥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보석으로 잠깐 나온 사이에 플로리다로 도망쳐서 또 사기를 칩니다! 이번엔 '늪지대 땅 팔기'였습니다.

"플로리다의 황금 땅을 드립니다! (물론 악어가 살고 물이 차오르는 늪이지만요)"

가명으로 위장하고 배를 타고 텍사스로 도망치려다 결국 잡혀서 다시 감옥행. 이번엔 빡세게 징역을 살고 1934년에 출소합니다. 미국 정부는 "제발 이 인간 좀 치워라"라며 그를 이탈리아로 추방해버립니다.

이탈리아에 간 폰지는 무솔리니에게 접근해서 한자리 차지해보려 했지만(역시 스케일이 다릅니다), 무솔리니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폰지는 결국 브라질로 떠돌게 됩니다.

말년의 폰지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항공사 지사 직원으로 일하며 근근이 먹고살았습니다. 2차 대전이 터지면서 그마저도 잃고, 시력도 잃고,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1949년, 자선 병원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한때 보스턴 전체를 쥐락펴락했던 사기꾼은 쓸쓸히 눈을 감습니다. 그가 죽을 때 남긴 유산은 달랑 75달러. 보스턴에서 하루에 25만 달러를 벌던 남자의 초라한 결말이었죠.

하지만 죽기 직전, 그는 기자가 찾아왔을 때 마지막까지 폰지다운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그들에게 뭘 줬냐고? 난 그들에게 1억 달러어치 쇼를 보여줬어. 그 정도면 입장료치고 싸게 먹힌 거 아닌가?"

에필로그: 폰지는 죽지 않았다

찰스 폰지는 죽었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불멸합니다. 그의 이름은 고유명사가 되어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습니다.

'폰지 사기(Ponzi Scheme)'.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외치고 있을 겁니다.

"원금 보장! 월 10% 수익! AI 기반 최첨단 코인 트레이딩!"

그리고 누군가는 그 말을 믿고 지갑을 엽니다. 폰지가 지옥에서 킬킬거리며 웃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봐봐,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니까. 탐욕이 있는 한, 나는 영원히 살아있어."

그러니 독자 여러분, 만약 누군가가 '너무 좋아서 믿기지 않는' 제안을 해온다면, 찰스 폰지의 콧수염과 그 뻔뻔한 미소를 떠올리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지갑을 닫으십시오. 역사상 가장 비싼 입장료를 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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