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애버그네일 2세

by 남킹

헐리우드가 사랑한 '가짜'의 제왕 (혹은 유니폼 페티시의 끝판왕)

서막: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잊어라, 진짜 물건이 나타났다

자, 여러분. 눈을 감고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떠올려 보십시오. 잘생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공항을 활보할 때, 뒤따르던 스튜어디스 군단을 기억하십니까? 톰 행크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다니던 그 얄미운 녀석 말입니다.

"영화니까 가능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뻔뻔하고, 더 어이없으며, 훨씬 더 기가 막히니까요. 오늘 소개할 인물은 16살의 나이에 전 세계를 무대로 "나 잡아봐라" 놀이를 시전했던, 20세기 최고의 '위조 예술가' 프랭크 윌리엄 애버그네일 2세입니다.

그는 폭력이 아닌 '매력'으로, 총이 아닌 '펜'으로 은행을 털었습니다. 그의 무기는 단 두 가지였습니다. 잘생긴 얼굴(디카프리오 급은 아니었지만 먹혀줬습니다)과,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강철 같은 심장.

자, 안전벨트 매십시오. 이 비행기는 목적지도 없고, 조종사도 가짜니까요.

제1막: 가출 소년, 사기의 맛을 깨닫다 (아빠, 미안해요!)

1948년생, 뉴욕 브롱스 출신의 프랭크. 시작은 평범했습니다. 아니, 좀 불행했죠. 부모님의 이혼 소송 중, 판사가 "아빠랑 살래, 엄마랑 살래?"라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전력 질주로 법정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때 나이 16살. 주머니엔 땡전 한 푼 없었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었습니다. 바로 '삭은 얼굴'이었죠.

16살인데 아무도 그를 미성년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새치가 희끗희끗했고 키도 컸거든요. 그는 생각했습니다.

"어라? 내가 어른처럼 보인다면, 어른 대접을 받아야지?"

그의 첫 번째 사기 피해자는 누구였을까요? 안타깝게도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패륜아라고 욕하진 마십시오. 나름 생존 본능이었으니까요.) 그는 아버지의 신용카드를 빌려 주유소에 가서 타이어를 사고, 그 타이어를 다시 팔아 현금을 챙겼습니다. 이른바 '카드 깡'의 선구자였죠. 아버지는 나중에 수천 달러의 청구서를 받고 뒷목을 잡았지만, 프랭크는 이미 뉴욕의 인파 속으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는 뉴욕 거리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서류와 제복을 믿는다. 알맹이는 중요하지 않아. 포장지가 명품이면 내용물도 명품인 줄 안다니까!"

이 철학은 향후 5년간 전 세계 은행과 경찰을 농락하는 바이블이 됩니다.

제2막: 팬암(Pan Am)의 유령 조종사, 하늘을 날다(공짜로)

뉴욕에서 은행 계좌를 트고 수표를 위조하려니 뭔가 부족했습니다. 은행 직원이 꼬치꼬치 캐묻는 게 귀찮았던 거죠.

"권위가 필요해.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는, 간지 나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파일럿 제복이었습니다. 당시 1960년대, 파일럿은 하늘의 제왕이자 모든 남자의 로망, 모든 여자의 이상형이었죠. 파일럿이 수표를 내밀면 은행장은 지점장실에서 뛰쳐나와 악수를 청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프랭크는 팬암 항공사에 전화를 겁니다.

"아, 제가 부기장인데요. 호텔 세탁소에서 제 유니폼을 잃어버렸지 뭡니까? 내일 비행인데 큰일 났네요."

구매 부서 직원은 친절하게도 새 유니폼을 맞출 수 있는 곳을 알려줍니다. 그는 가짜 사원증을 만들고(프라모델 비행기 로고를 오려 붙여서!), 멋진 제복을 입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효과는 폭발적이었습니다. 그가 은행에 들어가면 창구 직원의 눈빛이 '하트 뿅뿅'으로 변했습니다.

"어머, 기장님! 100달러요? 당연히 바꿔드려야죠!"

신분증 확인? 그런 건 무례한 짓이죠. 저 찬란한 금장 단추를 보고도 의심하다니!

그는 '데드헤딩(Deadheading)'이라는 시스템을 악용했습니다. 이는 항공사 직원이 업무상 다른 공항으로 이동할 때 남는 좌석을 무료로 이용하는 제도입니다. 프랭크는 팬암 유니폼을 입고 전 세계 26개국을 공짜로 여행했습니다. 250번 넘게 비행기를 탔고, 마일리지는 100만 마일이 넘었습니다. (물론 적립은 안 됐지만요.)

가장 웃긴 건, 그는 비행기 조종법을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한번은 기장이 호의를 베풀어 "자네가 조종간 한번 잡아볼 텐가?"라고 권했습니다. 프랭크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제가 어제 과음을 해서요. 규정상 안 됩니다."

기장은 "역시 프로는 달라!" 하며 감탄했죠. 사실 프랭크는 오토파일럿 버튼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는데 말입니다.

제3막: 청진기를 든 사기꾼, 소아과 과장이 되다

비행기를 너무 많이 타서 멀미가 났던 걸까요, 아니면 꼬리가 밟힐까 봐 겁이 났던 걸까요? 그는 조지아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번엔 아파트 임대 계약서 직업란에 무심코 '의사'라고 적어버립니다.

그런데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던 진짜 의사가 찾아옵니다.

"선생님, 병원에 소아과 과장 자리가 비었는데, 관리직이라 편합니다. 한번 해보시죠?"

프랭크는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거절하면 의심받을까 봐요.

그는 '프랭크 코너스'라는 가명으로 병원에 취직합니다. 낮에는 병원 행정을 보고, 밤에는 의학 드라마를 보며 용어를 외웠습니다. 인턴들이 와서 "과장님, 이 환자 엑스레이 좀 봐주세요" 하면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말합니다.

"음... 자네 생각은 어떤가?"

"골절 같습니다."

"바로 그거야! 내가 시험해 본 걸세. 아주 훌륭해!"

인턴들은 그를 존경했습니다. 교육의 신이라면서요.

하지만 위기는 찾아왔습니다. 응급 상황에서 '블루 베이비(청색증 아기)'가 실려 왔는데, 간호사가 "선생님, 어떡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프랭크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도 몰라! 난 고등학교 중퇴라고!'

다행히 진짜 의사가 달려와 아기를 살렸습니다. 프랭크는 이 사건 이후 병원을 그만둡니다. "사기는 쳐도 살인은 하면 안 된다"는 그나마 남은 양심 덕분이었죠. (사실은 무서워서 튀었을 겁니다.)

제4막: 법을 농락하다, 가짜 변호사의 탄생

의사 놀이도 지겨워진 그는 루이지애나로 갑니다. 이번엔 스튜어디스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변호사'라고 뻥을 칩니다.

"나 하버드 로스쿨 나왔어."

그 말 한마디에 그는 루이지애나 법무장관 사무실에 취직해야 할 처지가 됩니다.

문제는 변호사 자격증이었습니다. 그는 하버드 성적 증명서를 위조해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 시험(Bar Exam)은 쳐야 했습니다. 여기서 프랭크의 천재성이 드러납니다. 그는 8주 동안 죽어라 공부해서 진짜로 시험에 합격합니다.

위조한 건 서류뿐, 합격은 실력이었죠.

하지만 법무장관 사무실 일은 너무 지루했습니다. 게다가 동료 변호사가 하버드 출신이라 자꾸 "너 그 교수님 알지?" 하고 물어보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아 사표를 던집니다.

제5막: 교수님, 질문 있는데요?

잠깐 쉬어가는 타임으로 그는 유타주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사회학 교수로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합니다.

학생들은 그를 인기 강사로 꼽았습니다.

"교수님 강의는 정말 생생해요!"

당연하죠. 교과서가 아니라 본인이 밖에서 겪은 사기 기술과 인간 심리를 가르쳤으니까요. 그는 항상 학생들보다 딱 한 챕터 먼저 교과서를 읽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대학 교수라는 권위가 그를 지켜줬으니까요.

제6막: 수표 위조의 마술사, 은행을 털다

직업 놀이는 취미였고, 본업은 역시 수표 사기였습니다. 그의 기술은 예술의 경지였습니다.

당시엔 전산망이 느렸습니다. 뉴욕에서 발행한 수표를 캘리포니아에서 입금하면, 진짜인지 확인하는 데 며칠이 걸렸죠. 프랭크는 이 틈을 노렸습니다.

그는 수표 아래에 있는 MICR(자기잉크 문자인식) 코드를 조작했습니다. 뉴욕 수표인데 코드는 캘리포니아 은행으로 찍히게 만든 겁니다. 수표 교환소 기계는 혼란에 빠졌고, 수표가 미국 전역을 뺑뺑 도는 동안 프랭크는 유유히 현금을 인출해 사라졌습니다.

그는 심지어 공항 렌터카 카운터 옆에 있는 은행 야간 금고(Night Deposit Box)에 '고장 났음. 경비원에게 맡기세요'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본인이 경비원 복장을 하고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맡긴 현금 가방을 몽땅 들고 튀었죠. 정말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 아닙니까?

그가 5년 동안 위조한 수표는 250만 달러. 현재 가치로 수백억 원에 달합니다. FBI는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잡으려고 하면 파일럿으로 변해 날아가고, 병원에 숨고, 법원에 숨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죠. 그들은 그를 '스카이웨이맨(Skywayman)'이라 불렀습니다.

제7막: 꼬리가 길면 잡힌다, 프랑스 감옥의 지옥

하지만 영원한 쇼는 없는 법. 1969년, 프랑스 몽펠리에. 그는 과거 여자친구(승무원)의 신고로 체포됩니다.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다 포위된 거죠.

프랑스 경찰은 자비가 없었습니다. 그는 페르피냥 교도소의 독방에 갇혔습니다. 그곳은 감옥이라기보다 던전이었습니다. 빛도 없고, 변기도 없고, 물도 없는 돌방. 그는 발가벗겨진 채 6개월을 버텼습니다. 체중이 30kg이나 빠져 뼈만 남았죠. 화려한 파일럿, 의사, 변호사였던 남자의 처참한 몰락이었습니다.

이후 스웨덴으로 이송되었다가(거긴 호텔 같았다고 합니다), 결국 미국으로 송환됩니다.

여기서 전설적인 탈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화장실 변기를 뜯고 밑으로 탈출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그가 지어낸 뻥일 확률이 높습니다. (본인도 나중에 과장되었다고 인정했죠.) 하지만 JFK 공항에 도착해 연행되던 중, FBI 요원들이 사복 차림인 것을 이용해 "나 FBI인데 이 죄수 내가 데려간다"라고 연기하며 도망친 건 사실에 가깝습니다. 정말 끝까지 헐리우드 액션입니다.

제8막: FBI, "적을 동지로 만들어라"

결국 그는 다시 잡혀 12년 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감옥은 그를 담기에 너무 좁았나 봅니다. 5년 후, FBI가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야, 프랭크. 너 위조수표 기가 막히게 만들더라? 감옥에서 썩을래, 아니면 나와서 우리한테 위조범 잡는 법 좀 알려줄래?"

프랭크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출근은 언제부터 하면 됩니까?"

그는 석방되어 FBI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사기 방지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스승이 된 거죠. 그를 잡으려고 쫓아다녔던 FBI 요원 조 셰이(영화에서 톰 행크스 역)와는 평생 절친으로 지냈습니다.

"조, 그때 나 잡으려고 며칠 밤샜어?"

"닥쳐, 프랭크. 술이나 마셔."

아마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요?

제9막: 사기꾼에서 보안 컨설턴트로, 인생 역전의 피날레

오늘날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세계적인 보안 컨설팅 회사의 CEO입니다. 전 세계 은행들이 그에게 돈을 싸 들고 와서 "제발 우리 보안 시스템 좀 뚫어봐 주세요"라고 부탁합니다. 그가 만든 위조 방지 수표는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는 강연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한 짓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외로웠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어린애였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글쎄요. 그의 눈빛을 보면 가끔 20대 시절의 그 장난기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는 여전히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습니다. 단지 이제는 합법적으로, 그리고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으며 그 재주를 부리고 있을 뿐이죠.

에필로그: 진짜 사기꾼은 누구인가?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이야기가 우리를 매료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그가 똑똑해서? 대범해서?

아니요. 그는 우리가 맹신하는 '시스템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유니폼, 학위, 명함, 서류... 우리는 사람을 보지 않고 그 껍데기만 보고 판단합니다. 프랭크는 그 껍데기만 살짝 바꿨을 뿐인데, 세상은 그에게 돈과 명예와 사랑을 바쳤습니다.

어쩌면 그는 사기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짓궂은 장난꾸러기이자 사회학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러분의 지갑 속에 있는 수표나 신용카드를 꺼내 보십시오. 혹시 모르죠. 그 보안 기술을 만든 사람이, 50년 전에는 그 기술을 뚫고 250만 달러를 훔쳤던 바로 그 남자일지도 모르니까요.

자, 이제 확인해 보세요.

당신의 통장 잔고는 안녕하십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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