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on - Great Escape

by 남킹


Kwoon - Great Escape

중력의 고독, 혹은 창백한 연(鳶)의 비행

1. 침전하는 오후의 방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는 그냥 기상 현상이 아니라, 도시의 잿빛 폐부에서 뱉어내는 끈적하고도 우울한 타액과도 같아서, 오후 4시의 어정쩡한 시간대를 견디고 있는 나의 낡은 오피스텔 창문을 끊임없이 두들기며 마치 이 얇은 유리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리된 나의 건조한 세계로 침입하려는 집요한 노크 소리처럼 들려왔는데, 그것은 흡사 잊고 지냈던 과거의 죄책감이거나 혹은 막연한 미래의 불안이 형체 없는 유령이 되어 창틀을 쥐고 흔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규칙적이고도 신경질적인 리듬을 갖고 있었다.

방 안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암막 커튼—그것은 내가 이 세상의 과도한 조도(照度)로부터 나의 예민한 망막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방어기제이자 차단막이었으나—사이로 스며든 희미하고 푸르스름한 빛만이 먼지의 춤사위를 비추고 있었고, 나는 그 먼지들이 공기 중에 부유하며 그려내는 불규칙한 브라운 운동을 멍하니 응시하며, 나의 육체가 낡은 가죽 소파의 푹 꺼진 웅덩이 속으로 서서히, 아주 느리게 액체처럼 녹아들어가고 있다는 기묘한 감각적 환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파 옆에 놓인 거대한 스피커, 그 검은색의 매끄러운 표면은 마치 심연의 입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고, 나는 그 침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질 때쯤, 마침내 무거운 손을 들어 앰프의 전원 버튼을 눌렀는데, '틱' 하는 작은 파열음과 함께 기계가 예열되며 뱉어내는 미세한 험(hum) 노이즈가 방 안의 정적을 찢지 않고 오히려 그 정적 위에 얇은 막을 덧씌우듯 깔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갈망하던 그 어떤 '탈출'의 의식이 준비되었음을 직감했다. 프랑스의 어느 우울한 몽상가들이 결성했다는 밴드, Kwoon. 그들의 앨범 When The Flowers Were Singing을 플레이어에 걸고, 나는 마치 독한 압생트 한 잔을 들이키기 직전의 알코올 중독자처럼 떨리는 손끝으로 'Great Escape'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2. 언덕 위의 독백, 기타 줄의 떨림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현실의 공기는 순식간에 재편성되었다. 도입부의 어쿠스틱 기타 선율은, 비에 젖은 아스팔트 냄새가 진동하는 이 도시의 눅눅한 습기를 단숨에 증발시키며, 내 의식을 저 멀리, 색채가 거세된 무채색의 언덕 위로 순간 이동시켰는데, 그 기타 소리는 화려한 기교나 과시적인 장식음 따위는 완전히 배제된 채, 오직 나무 울림통이 가진 본연의 건조하고 서사적인 울림만을 간직하고 있어서, 마치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가락이 쇠줄을 스치며 지나갈 때 발생하는 마찰음(fret noise) 하나하나까지도 고독한 방랑자가 내뱉는 한숨처럼 들려왔다.

"I was standing on the hill (난 언덕 위에 서 있었지)"

보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그것은 가수가 마이크 앞에서 부르는 노래라기보다는,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영혼이 허공을 향해 읊조리는 나직한 독백에 가까웠고, 그 목소리에는 어떠한 격정적인 감정의 고양도 없는 듯 보였으나 실은 그 담담함의 이면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슬픔과, 동시에 그 슬픔을 딛고 날아오르려는 위태로운 희망이 팽팽하게 길항(拮抗)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을 감았다기보다는 시각이라는 감각 기관을 차단함으로써 청각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회화적 이미지 속으로 투신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내 눈앞에는—정확히는 나의 뇌내 시각 피질이 재구성해 낸 상상 속에는—끝을 알 수 없는 잿빛 구름이 낮게 깔린 황량한 언덕이 펼쳐졌고, 그 언덕의 꼭대기에는 앙상한 소년 하나가 거대한 연(혹은 사람의 머리보다 훨씬 큰 기괴한 풍선)을 손에 쥔 채 위태롭게 서 있었는데, 그 소년은 바로 나 자신이기도 했고, 동시에 내가 잃어버린, 혹은 살해당한 나의 순수성이기도 했으며, 중력이라는 거대한 족쇄에 묶여 영원히 지상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종(種)의 슬픈 초상이기도 했다.

"Watching the world / Trying to catch the wind (세상을 바라보며 / 바람을 잡으려 노력하며)"

가사가 이어질수록, 기타의 아르페지오는 점차 그 밀도를 더해갔다. 그것은 단순히 음표의 나열이 아니라, 소년이 쥐고 있는 연줄을 타고 흐르는 팽팽한 장력(張力)의 묘사였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연줄을 당기는 힘으로 존재를 증명하듯, 음악은 내 귓속을 파고들어 척추를 타고 내려가며 나의 무기력한 신경계에 전율이라는 이름의 전기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그 신호에 맞춰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 방구석의 곰팡내 나는 현실이 아닌, 저 구름 위, 대류권의 거친 바람 속으로 몸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3. 상승(上昇), 그리고 구름 속의 미로

곡이 중반부로 치닫자, 드럼과 베이스가 합류하며 공간의 확장이 일어났다. 초반의 소박했던 어쿠스틱 사운드는 점차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몽환적인 신디사이저와 공간계 이펙터가 잔뜩 걸린 일렉트릭 기타의 굉음이 채우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마치 소년이 마침내 발을 지면에서 떼어내어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의 물리적 현상을 청각화한 것만 같았다. 스네어 드럼의 타격음은 심장의 박동처럼 둔탁하게, 그러나 점점 더 빠르게 고동쳤고, 심벌즈의 쇳소리는 귓가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 소리처럼 날카롭게 비산(飛散)했다.

나는 뮤직비디오 속의 그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나의 발아래로는 내가 그토록 증오하고 권태로워했던 도시의 풍경들—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붉은빛을 토해내는 자동차들의 행렬, 그리고 그 속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무수한 인간 군상들—이 점차 작아지며 하나의 추상적인 얼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내려다보았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기묘한 해방감, 혹은 세상의 모든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면제받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쾌감이었다.

"And fly away (그렇게 날아가는 거야)"

이 구절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더 높이, 더 깊은 구름 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구름은 밖에서 볼 때는 하얀 솜사탕처럼 평화로워 보였으나, 그 내부는 거친 난기류와 차가운 수증기로 가득 찬 혼돈의 도가니였다. 기타 사운드는 이제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을 찢고 나아가는 비행체의 엔진 소리처럼, 혹은 대기권과의 마찰로 인해 불타오르는 날개의 비명처럼 웅장하게 증폭되었다.

슈게이징(Shoegazing)과 포스트 록(Post-rock)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Kwoon 특유의 사운드 스케이프는, 겹겹이 쌓인 소리의 층(layer)들을 통해 나를 감싸 안으며, 현실의 감각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나는 더 이상 소파에 누워 있는 육신이 아니었다. 나는 소리 그 자체였고, 진동이었으며, 바람을 타고 흐르는 하나의 입자였다.

4. 폭발하는 카타르시스, 위대한 탈출

곡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을 때, 음악은 임계점을 넘어선 댐이 붕괴하듯 폭발했다. 모든 악기들이 일제히 굉음을 내지르며 하나의 거대한 소리의 벽(Wall of Sound)을 형성했는데, 그 소리의 벽은 나를 압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높은 차원으로,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무(無)의 공간으로 밀어 올리는 추진체 역할을 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빛의 산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태양 빛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의 눈부심과도 같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터지는 불꽃놀이의 섬광과도 같았다.

보컬은 더 이상 가사를 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악기의 일부가 되어 울부짖었다. 그것은 언어의 기능을 상실한, 오직 감정의 덩어리로만 이루어진 절규였다. "Great Escape." 그렇다, 이것은 탈출이었다. 단조로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빚과 관계와 약속들로 얽히고설킨 사회적 자아로부터의 탈출, 그리고 무엇보다 유한한 시간 속에 갇혀 늙어가는 육체로부터의 필사적인 탈출이었다.

음악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는 내가 매달려 있던 연줄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환영을 보았다. 줄이 끊어지는 순간, 추락에 대한 공포가 엄습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나는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줄이 끊어진 연은 바람이 이끄는 대로, 혹은 바람조차 닿지 않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끝없이 상승했다. 그 상승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죽음일 수도, 영원한 고독일 수도, 혹은 진정한 의미의 낙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결과가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 비행의 과정 자체가 주는 벅차오름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눈가에는 알 수 없는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려 관자놀이를 적시고 있었지만, 그것이 슬픔 때문인지 기쁨 때문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5. 하강(下降), 그리고 남겨진 여운

폭풍 같았던 클라이맥스가 지나가고, 곡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격정적으로 울부짖던 기타는 다시 처음의 차분한 톤으로 돌아왔고, 드럼 비트는 멈추었으며, 웅장했던 신디사이저의 잔향만이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희미하게 남았다. 그것은 마치 하늘 높이 올라갔던 연이 바람을 잃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상을 향해 나선형을 그리며 떨어지는 모습과도 같았다.

음악이 완전히 멈추고, 스피커에서 다시 미세한 '틱' 소리와 함께 정적이 찾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다시 나의 좁고 어두운 방으로 돌아왔다. 창밖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먼지들은 여전히 부유하고 있었으며, 소파의 가죽 냄새는 여전히 퀴퀴했다. 모든 것이 변한 게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경험했던 그 광활한 하늘의 감촉, 구름의 차가움, 그리고 심장이 터질 듯한 해방감이 여전히 내 피부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Kwoon의 'Great Escape'는 5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나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 놓았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체험이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에 젖은 도시는 여전히 우울했지만, 이제 그 풍경은 더 이상 감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제든 이 음악을 다시 재생하는 순간, 나는 다시 그 언덕 위에 설 것이고, 바람을 잡을 것이며, 저 구름 너머로 위대한 탈출을 감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현실은 여전히 무겁고 고단하지만, 내 영혼 한구석에는 끊어진 연줄을 매단 채 하늘을 유영하는 소년 하나가 영원히 살아가게 되었음을 깨달으며, 나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 숨결 속에서, 희미하게 비 냄새 섞인 구름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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