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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Apr 01. 2024

비트겐슈타인의 유서 #1

죽음

죽음               


높은 언덕의 아파트. 복도는 따스했다. 나는 창에 비친 도시를 봤다. 흔적뿐인 바람. 어스름한 달빛과 흐릿한 가로수. 미세하고도 온전한 빛들의 떨림. 거리를 장식하는 수많은 가게. 상점에 촘촘하게 새겨진 명품. 응결된 갈망이 해동을 외친다. 도시는 불안에 잠겨있다. 자산의 크기로 나뉜 그들의 공간에 인간이 박혀있다. 배분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 욕망의 큰 뭉치가 떠다닌다. 인간. 정신. 물질. 한없이 빈곤한 하루. 답답한 가슴이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물든다.     

사건 현장에 발을 디디면 늘 이렇듯 불안감이 도착한다. 속절없이 고통 속으로 끌려들어 간다.     

‘젠장 25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낯설다니!’     

이불 속에 누운 채, 그는 뻗대고 있다. 단 하나의 느낌이 모든 것을 덮는다. 무상. 징그럽게 길고 이상하게 흐릿한 햇빛이 투과한 정적의 방은, 네모난 공간의 안정감을 갖추기에 너무 많은 장식이 깃들어있다. 조명은 어둡고 눅눅하며 침울하고 벌겋다. 그림자가 가득한 공간. 나는 세움대가 비추는, 바닥에 난 검은 핏자국이 주는 장식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부산한 집안을 안정시켰다. 코끝이 살짝 비리다.     

액자가 사방에 흩어졌다. 조각난 빛들이 시리다. 내 앞에 흐드러지게 펼쳐진 갈등. 흐리고 멍한 여인이 웅크리거나 환한 미소의 흑인 청년이 벽에 처박혀 있다. 통속적인 사진. 액자를 장식한 소품은 더럽다. 아트라고 인쇄된 액자는 그 속이 텅 빈 채 천장만 멍하니 주시하고 있다. 벽시계의 끝이 둥근 초침은 오전 오후로 나누어진 일상에 못마땅한 듯 투박하게 투덜거렸다.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당연하게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에 늘 혼란을 겪었다. 왜냐하면 나의 시간은 지나치게 정확하고 나 외의 시간은 심하게 느긋했다.     

식물이 소파 옆에 놓여있다. 오후의 검은 햇살 아래 속살이 드러난 꽃술. 불쌍하기 짝이 없게 적은 일사량. 주인의 무관심이 주는 몇 방울의 물로 의식을 진정하고 싹을 틔우고 꽃을 벌려 삭막한 사막으로 변형됨을 몸으로 막아서는 고통. 나는 죽은 가지를 톡톡 튕겼다. 공간을 부유하는 빛 속의 먼지. 마스크 속 입김이 뜨겁다.     

‘죽은 이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그는 말할 수 없기에 침묵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마에 박힌 총구멍. 도취한 듯한 눈동자. 옅은 분홍빛 코끝. 나는 그의 이야기를 줍기 위해 애를 쓴다. 굴뚝처럼 솟아오르는 의문.     

‘당신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만큼 일그러져 있었나? 혹은 강렬하고 지배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혔나? 혹은 자신을?’     

벽난로. 내가 못마땅해하는 소품. 자리만 차지하고 볼품없고 그을음을 생성해 기관지를 괴롭히고 따스함이라는 정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안락함을 선사하고 묘한 뒤틀림으로 섹스 장면을 미화하는 물건. 온전한 작품 하나가 그의 발치에 널브러져 있다. 조각품은 더없이 하얗고 빨갛고 노랗고 푸르다. 사소한 것들의 종합.     

나는 그가 남긴 종잇조각을 쳐다본다. 볼품없는 종잇장 하나. 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유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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