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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주한옥 Dec 11. 2022

5. 시골집도 고치면 예뻐요 - 할머니의 40년 전축

1년여 만에 살렸어요.

올해 40살 된 전축이 있습니다. 물론 이 집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보물 같은 존재였지요.

부모님께서는 버리라고 하셨지만 저는 제 꼬꼬마 시절의 추억에 서려있는 이 오래된 전축을 꼭 살리고 싶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와 LP플레이어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그 당시 부잣집에 구비되어있던 태광 에로이카에서 만든 전축이었거든요.


전국을 수소문했는데 찾기가 어려웠는데  제가 오랜 기간 컴퓨터 수리하거나 구매하는 곳 사장님께 갑자기 생각나서 아는 분 있는지 여쭤보니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같은 건물 1층에 계셨습니다.  음향기기 수리 사장님께  전축을 보였 드렸더니 블루투스 되는 것으로 새로 사지 왜 고치려고 하냐며 수리비가 구매 비보다 더 많이 드는데 괜찮냐고 하셔서 저는 할머니께서 40년간 가지고 계신 보물이기에 꼭 살리고 싶다고 간절히 부탁드렸습니다.

 

오랜 세월이다 보니 LP플레이어는 마모되었고 카세트는 모뎀이 나가버리고 라디오는 주파수 부속이 삭기도 하고 내부를 열어보니 세월의 무게인 먼지가 많이 내려앉아있었습니다.


연결된 전선들도 세월의 풍파에 삭아서 끊어져서 땜질해서 잇고 교체하고 참 손과 시간이 많이 드는 수리였어요

수리비로 15만 원 나왔지만 그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40년 세월을 그 가격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카세트테이프와 LP판도  그리고 라디오도 짱짱하게 잘되었습니다.  아날로그 음질의 감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LP, 카세트, CD 그리고 MP3 플레이어까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세대라서 많은걸 경험하며 자란 딱 중간 인생을 살고 있어 어느 세대이든 공감  형성이 가능해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전축은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과 그 시절의 향수를..

태어나자마자 핸드폰에게 익숙한 어린아이들에게는 기분 좋은 낯섦과 아날로그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어른과 아이를 연결할 수 있는 보물이라 저는 생각하거든요.


제 나이가 60대 후반이 되면 이 집의 나이는 100살이 되고 전축 또한 70살이 되겠지만 이대로 이 자리를 지켜주길 바랬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박물관에서나마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요.


  학창 시절에 음악 듣는 걸 좋아해서 용돈 조금씩 모아서 레코드 가게 가서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어보고  하나씩 사 왔었는데 MP3가 생기고 파일을 MP3플레이어에 넣어 듣는 시절이 도래하니 자연스레 자리를 차지하던 카세트테이프와 LP 그리고 CD까지 버리게 되었어요.


전축은 고쳤는데 들을 수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LP와 카세트테이프를 구하기 위해서 당근 마켓과 중고나라를 심심하면 뒤적거리기 시작합니다. 제 학창 시절에 들었던 음악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90~2000년대 가수를 원했거든요.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하늘에서 저의 갸륵한 정성을 아셨는지 45개의 카세트테이프(90년~2000년대 가수들)를 렴한 가격에 하게 되었습니다

먼지가 수북했지만 저에 건 보물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더 좋은 건 개인 앨범이 아니고 메들리라 가슴이 벅찼습니다.

일일이 먼지를 다 제거하고 케이스도 닦고 고이 보관해두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를 받은 날 음악 듣다가 날을 새었습니다.

아날로그 감성 제대로 느낀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축 살리길 정말 잘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이제는 늦었지만 알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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