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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Apr 16. 2023

최고의 먹물 빠에야

여행의 참 맛

TV채널을 돌리다가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뭉뜬리턴즈’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뭉쳐야 찬다’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의 멤버 네 명이 배낭여행하며 겪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네 명의 초보 백패커가 스페인으로 떠나 겪는 여행의 모습을 보니 몇 년 전 남편과 둘이 떠났던 스페인의 추억이 고스란히 소환되었다.




동경하는 가우디와 흠모하는 피카소의 나라 스페인.

강렬한 색채와 색감만큼 풍부한 먹거리도 여행의 분명한 동기를 더해주었다.

경유지를 포함해 16시간의 고된 비행이 식욕을 떨어 뜨릴 법도 했지만 9박 10일의 여행은 일분일초가 귀하니 먹는 것도 보는 것만큼이나 충실하게 해내리라 마음먹었다.

한국에서 출발 전 도시마다 가고 싶은 여행지와 맛집 리스트를 휴대폰 메모장에 차곡차곡 살뜰하게 정리해 두었더랬다.


가장 첫 번째 가야 할 곳으로 정한 곳은 한국 여행객에게 평이 좋은 먹물빠에야 집이다.

다행히도 꼼꼼하게 사진과 약도를 포함해 리뷰를 남겨 준 블로거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웨이팅이 기본 15~20분은 있을 거라던 내용과는 다른 게 기다리지 바로 안내를 받아 테이블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유럽과 스페인 현지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지금 이곳이 스페인이란 사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부의 벽의 몰딩과 클래식한 무드의 원목의자도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사진 없이 스페인어로만 적혀 있는 메뉴판 중 어떤 게 먹물빠에야인지 이미 블로그에서 학습을 해 왔기에 손쉽게 주문을 해냈다.

짜장을 태운 뒤 오징어를 몸통 모양대로 동그랗게 잘라 버무려준 것 같은 모습의 먹물빠에야는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는 전혀 식욕을 자극하는 비주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스페인 전문 식당을 찾은 적이 없었던 우리는 알지 못하니 기대할 수 있는 맛의 이미지가 없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의 맛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오징어 향이 강하게 나는 죽을 졸인 맛이 아닐까?’

한식으로 쓰이는 재료들이 배합된 맛을 상상하니 흡사 해물죽과 같은 맛이 연상됐다.

쌀로 조리하는 빠에야는 상그라아(적포도주에 과일을 가미한 스페인의 음료) 한잔을 거의 다 비운 후에야 우리의 테이블에 도착했다.

2인분이라기에는 커 보이는 철판냄비에 소스가 자작한 까만색의 빠에야는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한 향을 풍겼다.

오징어와 홍합은 살이 올라 통통했고, 쌀은 오징어의 향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먹물빠에야의 맛을 1/10도 표현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검은 소스 안에 감춰진 풍미는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처음 맛보는 먹물 빠에야가 준 좋은 기억 때문에 스페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먹물빠에야의 맛이 떠오를 정도이다.

그 후로 스페인 여행이 끝날 동안 우리는 세 번의 먹물빠에야를 더 먹었지만 바르셀로나 식당에서 먹었던 그 맛은 어디에도 없었다. 



두 번째 맛본 먹물빠에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길이 막혀있던 지난 3년 간은 떠날 수 없는 강제적인 상황이 나의 여행세포를 잠재우게 했다. 이제는 하늘길 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워졌지만 365일 매장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에 해외여행은 엄두가 나질 않는 자영업자 신세다.


스페인 여행길에서 돌아오던 날 남편과 한 약속이 있었다. 가우디의 역작이라 불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에가 완공이 되는 2026년에는 꼭 다시 스페인을 찾겠다고 말이다.

방송을 통해 사그라다 파밀리에가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외벽의 초록색 그물이 거의 사라진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2026년에 완공된 거장의 유물을 맞이하는 영광을 또 한 번 누릴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벌써 가슴이 벅차온다.

그때 다시 맛볼 먹물빠에야도 여전히 근사하기를.

두 번째 찾는 스페인은 나에게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하는 궁금함에 지난 사진첩을 뒤적여본다.




2019년 사그라다파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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