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곤퀸파크의 별
별이 쏟아질 듯 아득한 밤하늘과 깊이가 한눈에 짐작되는 청량한 에메랄드 빛 바다를 나는 동경한다.
도시에서는 밝은 조명과 미세먼지로 별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강화도에 있는 친정집에서는 가끔 별구경을 할 수가 있다.
항상 곁에 있던 존재임에도 잊고 있다가 얼굴을 내밀어 모습을 드러내니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다.
별이 ‘까꿍! 나 여기 있지’ 하는 것만 같다.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드문드문 자리했지만 최근에는 그마저도 감지덕지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처연해진다.
오늘은 그리운 별을 추억한다.
몇 해 전 캐나다 알곤퀸파크에 위치한 케빈에서 보았던 쏟아지는 별.
나는 그 별을 잊을 수가 없다.
자연과 함께 있다는 기분,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기분을 그토록 명확하게 느껴본 적이 있을까.
캐나다의 알곤퀸파크에 위치한 케빈은 여행 전 에어비앤비로 구했다. 그것도 고작 한화 15만원 가량이었으니 한국의 여느 숙박시설과 비교해도 꾀 저렴한 편이었다.
작은 집을 독채로 저렴한 가격에 구했던 것도 만족스러웠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그곳의 위치였다.
케빈은 공원 내에 위치해 있어서 알곤퀸파크를 온전히 즐기고자 하는 여행객에게 그야말로 최상의 조건이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 자리한 작은 집은 주인집과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별채였다.
알곤퀸파크는 서울의 11배 이상 넓고, 약 2500개 이상의 호수와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토록 큰 공원이니 코스별로 하루 종일 하이킹 한다고 해도 다 돌아볼 수는 없을 정도의 면적이다.
별다른 사전지식 없이 알곤퀸 파크의 일정을 달랑 하루만 잡아두었다는 건 나에겐 지금까지 후회로 남는다.
안내책자에 나와있는 코스를 몇 곳이나 걸었을까.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냇가의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에 이끌려 발길을 옮기고는 있지만 내가 어디쯤에 와있는지 출구는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막연함이 주는 신선한 자극이 더 깊은 숲 속으로 나를 안내하는 듯했다.
혹여나 길을 잃을지 모를 여행객을 위해 나뭇가지에 코스별로 색깔천을 다르게 묶어둔 친절함이 아니었다면 코스에 들어서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온 길을 기억하기 위해 나의 해마를 꾀나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어둑해질 무렵 도착한 숙소는 주방과 거실에 소담히 담겨있는 탐스러운 과일과 주인장의 배려로 채워진 수납장의 어메니티, 주방의 원두커피와 종류가 다양한 차, 깨끗이 세탁해 정성 들여 접어 둔 타월까지 무엇하나 나무랄 데가 없이 예쁜 곳이었다.
가로등도 없는 국립공원의 밤은 7시만 되어도 그야말로 암전상태가 된다.
지구상의 모든 불을 차단하리라 마음먹은 것처럼 온통 까만 밤이 되는데, 그 색은 흡사 크레파스의 흑색에 가까웠다.
모든 전자기기를 손에서 내려둔 채 입구 쪽 데크 위 썬베드에 몸을 누이니 수없이 많은 별이 가슴팍으로 후드득 떨어질 듯, 손에 스칠 듯 가까이 보인다.
까만 벨벳에 스와로브스키 스톤을 뿌리면 저렇게 반짝일까.
지구가 둥글다는 걸 한눈에 느낄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별이 반구 형태로 떠있고, 썬베드에 쭉 뻗은 몸으로 누워있는 나는 무중력 상태로 떠있는 우주인이 된 것만 같았다.
3D 디바이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울렁거림처럼 온전한 자연과 마주했을 때의 나는 조금은 울렁거렸고 거리감을 상실하는 경험을 했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부딪치는 나뭇잎소리와 오롯이 자연 속 나만 존재하는 듯한 기이한 첫 경험을 알곤퀸파크가 내게 선물해 주었다.
아쉽게도 그곳에서의 나의 경험은 휴대폰 속 사진첩에 남겨져있지 않다.
사진으로 그때의 감동을 담을 수도, 무엇도 그 사간을 방해하게 둘 수도 없어 눈에 한번 가슴에 또 한 번 담아두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나의 추억 속 까만 밤은 고요함의 밤이요. 무아의 밤이요. 생경함의 밤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나와 상대를 초월한.
자연은 언제나 가장 멋진 방식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이렇게도 멋지고 감동적인 자연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