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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May 19. 2023

맞아요. 저도 그래요.

느슨한 연대 속 공감의 힘



그날따라 유독 아침이 무겁게 느껴졌다.

몸이 무거운 것인지 마음이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날.

남편이 출근 한 뒤 침대 위 반려견 보리와 함께 눈을 뜬 아침이, 젖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의 눈부심이 부담스러운 그런 날.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내 아침을 망가뜨리나 싶어 달력을 보았지만, 배란기나 월경주기와는 무관한 365일 중 매우 평균인 300일 중 어느 하루쯤 된다.


이런 날은 잘 짜인 하루의 루틴을 흐트러뜨리기 딱 좋은 날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한 후에 1년간은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자영업을 하루라도 빨리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었다.

매일을 원하는 대로 시간을 배치할 수 있고,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 점이 그랬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텅 빈 것만 같은 집안의 정막도, 일상의 분주함이 사라진 나의 시간도 지루하게 느껴졌다.


평소와 다르게 다이어리를 펼치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최근 허상처럼 느껴지는 SNS에 신물이 나 가급적 SNS는 하지 않는다.

특히나 이런 날, 이런 기분인 내게 인스타그램에서 그려지는 남들의 화려한 삶은 독이라는 것을 지난 경험상 익히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네이버 카페를 뒤적였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독서모임을 검색해 보았다. 지역명과 독서모임을 검색했더니 이 지역의 크고 작은 맘카페가 십여 개쯤 검색되었다.

세 번째 페이지쯤 검색된 독서카페는 활동이 매우 저조해 보이니 패스로 하기로 했다.

이쯤 되니 나의 소속감이 될 만한 키워드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영업자 말고 내가 소속될 만한 키워드가 뭐가 있지? 반려인? 딩크?

'딩크'를 검색하니 여러 개의 카페가 나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딩크임을 밝히는 걸 꺼려서인지 무리가 형성되는 일이 없었다. 몇 년 전 딩크족 카페가 없어서 만들어볼까 잠시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에 기억이 난다.


카페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딩크는 '소수의견'이라고 생각했는데, 전국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보니 신기했다.

마치 동화 속 미운 오래 새끼의 주인공이 백조가족을 만을 때 기분이 꼭 이랬을지 모르겠다.

그곳에서만큼은 내 의견이 일반적이었다.


'안녕하세요. 가입인사 드립니다'


카페 가입 후 글을 보기 위해서 으레 거쳐야 할 가입인사를 쓰고, 나와 같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기본적인 등업신청을 해야 했다.


가입 후 바로 글쓰기가 가능한 'no kid 선택한 이유'라는 이름의 게시판이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보았다.

내 주변인들은 아이 없이 사는 부부가 없어서 나와 같은 선택을 한 다른 사람의 이유가 늘 궁금했었다.

나처럼 일찍 현실육아의 간접체험으로 육아에 겁을 먹은 사람들과 자아실현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올곧이 본인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는 사람들 모두 그 이유의 중심에는 자신과 배우자가 있었다.

비슷한 이유에 달린 댓글은 '저도 같은 이유에서 딩크를 결정했어요', '제가 쓴 글인 줄 알았네요' 하는 동조의 댓글들이었다.

여기서는 누구도 소수의 의견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소속감이 느껴졌다.


브런치스토리에서 내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이유에 대해 글을 쓴 것처럼 나도 게시글을 남겼다.

'저도 언니 아이들 돌보다가 현실육아에 대해 알아버렸어요. 워킹맘들 정말 대단하죠'

'맞아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둘만 행복하기로 한 삶. 저도 마찬가지예요' 라는 공감의 댓글들이 하나 둘 달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나눈 적 없는 이야기였다.

친구들은 아이가 없는 삶을 결정한 나를 설득할지언정 동조하지는 못하니까.

가끔 육아로 지쳤을 때 '니 팔자가 상팔자다'라고 우스갯소리는 해도, 공감 영역으로 들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온라인카페에서 조금 전 만난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위로받는다는 감정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마케팅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카페나 다를 바가 없는데,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줄 든든한 친구들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구나. 

나의 결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 속에 있다 보니 잊었던 거야.

이해받는다는 게 어떤 거였는지.


느슨한 연대가 주는 공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 이날부터 나는 공감의 시그널로 마구마구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맞아요. 맞아요. 저도 그래요. 다 이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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