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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케이 May 23. 2023

개모차 끄는 사람들

반려인의 축제 메가주에 다녀오다




지난 주말 일산 킨텍스에서 케이펫페어 메가주(Mega zoo)가 개최됐다.

삼성 코엑스, 일산 킨텍스, 학여울 세텍, 부산 벡스코를 포함해 전국 4개의 전시장에서 열리는 펫페어 중 케이펫페어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마침 친한 언니의 남편이 전시에 참가하게 돼서 언니 부부도 만날 겸 전시장에 놀러 가기로 했다.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 반려견들의 등장에 우리 부부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엄빠미소가 장착된다.

사람이 많은 낯선 환경에 예민한 보리를 집에 두고 온 탓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 나온 반려견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펫페어답게 입구로 들어서기 전부터 애견캐리어, 개모차의 행렬이 한눈에 보였다.

뒤에서 보아서는 안에 아이가 타고 있을지, 반려견이 타고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개모차의 퀄리티는 점점 유모차 못지않게 정교하다.

몇 년 전 개모차를 처음 샀을 때는 이토록 대중적이 될 줄은 몰랐다.

다리 멀쩡한 개에게 무슨 유모차냐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알 수 없는 핀잔을 들어야 했던 시절은 이제 모두 지난 이야기다.


우리 앞으로 늘어 선 반려견의 행렬을 따라 전시장 입구로 향했다.

전시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났을 뿐인데, 티켓을 발권하는 키오스크에 사람과 반려견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바야흐로 반려인 1000만 시대를 실감할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전시회에 참가한 형부의 회사는 2년 전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반려견 화식(火食)을 밀키트로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반려견 밀키트'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 진출해 건강한 재료로 만든 식사를 반려견에게 제공한다는 콘셉트로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었다.

프리미엄 등급의 고기와 신선한 채소, 오메가 3, 코엔자임 Q10 함유.

건사료의 성분표만 보고 구매하던 때와 비교하니 지금의 사료는 사람의 음식과 거의 다름이 없다.


비단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신소재를 활용한 인견커버 쿠션, 3가지로 변형 가능한 카시트, 진드기 방지용 목걸이, 슬개골 탈구 방지를 위한 매트, UV차단 고글 등 견생(犬生)의 질을 높여주기 위한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반려인을 유혹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유난한 개 엄빠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우리 부부지만, 별천지와 다름없는 전시장의 제품들을 발견할 때마다 '이런 것까지?'를 외치며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내가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개모차였다.

얼마 전 춘천으로 여행 갔을 때 식당에서 마주쳤던 강아지가 타고 있던 개모차를 보고, 한눈에 '이거다'싶었기 때문이다.

바구니가 탈착 되는 형식의 개모차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마치 경차를 타고 가다가 매끈하게 잘 빠진 벤츠 SUV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개모차, 캐리어, 카시트 세 가지로 활용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급 변신에 크게 동요됐다.


전시장에 있는 5개의 개모차 부스를 모두 방문했다.

반려견의 체중과 사이즈, 분리형태, 소재와 서스펜션, 자유로운 핸들링, 이동시 무게, 접이시 편의성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보리의 첫 차를 5년 이상 사용해 본 경험자로써 기준점이 명확히 좁혀져 있었다.

가격대는 10만 원대 후반부터 100만 원대까지 외관의 차이에 비해 가격의 차이가 훨씬 컸다.

5년 전 15만 원에 구매한 것에 비하니 개모차의 가격이 훌쩍 뛰어있었다.

춘천 여행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제품은 전시장 구매가로 10만 원 후반에 할인하고 있었는데, 컬러별 일부 재고가 소진되었다고 할 만큼 인기가 있었다.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직원의 말에 마음은 더 급해졌다.

곁에서 제품을 살펴보던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전시된 제품이 마지막 재고가 될지 모르니 좀처럼 개모차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여유롭게 시연해보고 싶었지만 한정할인이라는 말에 이곳은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어깨너머로 시연하는 제품을 보니 수려한 외관과는 다르게 위에 바구니의 축이 흔들리는 구조적인 단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안전성이 의심 돼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도대체 얼마나 걸어 다닌 걸까. 두 다리에 뻐근함이 느껴지는 걸 보니 시간이 꽤 지났나 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 반이다. 10시 반부터 장작 3시간을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돌아다녔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오빠 우리 이제 정하자. 아무래도 안전한 게 중요하겠지?"

"당연하지. 보리는 타이타닉 자세로 서있을 텐데. 건들거리는 바구니에 어떻게 태워"

역시 개아범스러운 모범답안이다.


예상보다 늘어난 예산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앞으로 남은 견생동안 쭉 고장 없이 타줄 거라 믿으며 차선책이었던 다른 개모차의 구매를 결정했다.

가격대차이가 있어서인지 대기 없이 바로 조립이 가능하다는 말에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저희는 바구니 안에 쿠션과 개모차에 달 수 있는 인형도 드려요."

"그럼, 새 인형으로 주세요. 저희 개가 새를 좋아해서요"

"두 개  다 드릴게요"

중고 개모차를 당근 하고, 새 차에 태울 생각을 하니 내 차를 새로 바꾼 것만 같이 기분이 좋다.

말끔하게 조립된 개모차를 끌고 전시장을 가득 메운 개모차 무리에 합류한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가세요. 개모차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타이타닉 자세로 시승 중인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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