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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커 Nov 06. 2023

2. 아이스 바닐라라테 (1)

    상봉은 오늘 아침도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뜬다. 홀로 자식 둘을 키우는 싱글대디는 새벽 댓바람부터 할 일이 산더미이다. 어젯밤 불려놓은 밥을 밥솥에 옮겨 쾌속취사버튼을 누른 후 샤워를 시작한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몸에 휘휘 묻히는 모양새는 세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물 주기에 가깝겠다. 어제인가 그제인가, 어쩌면 어제와 그제에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고서는 빨래걸이에 널어둔 양말을 신는다. 나머지 빨랫감도 일사천리로 개고는 장롱 속에 넣어둔다. 다음으로는 아침 준비. 아침밥 7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상봉은 3인분 밥 짓기의 달인이다. 따끈한 밥을 국그릇에 담고 그 위에 튀기듯이 구운 반숙 계란 프라이 한 알씩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케첩으로 하트를 그린다. 오므라이스를 한참 바라보던 상봉은 문득 깨닫는다.

    '딸이 없다.'

    민서가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났다. 상봉은 종종 그의 부재를 까먹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퇴화되는 건지, 아침이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원. 상봉은 익숙하다는 듯 쩝-하고 얕은 한탄을 하고는 2인분의 밥과 두 알의 계란프라이를 삼킨다. 현관으로 향하며,

    "아빠 다녀올게."

    꼭 닫힌 민서의 방 앞에서 입꼬리를 올려본다. 조심히 다녀오라고 외치는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회사에서 상봉은 누구보다 일에 열심히이다. 간혹 자식을 잃은 그를 안쓰러워하는 직원들의 눈빛이 느껴지지만 그럴수록 일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면 딸내미가 저세상에 있다는 걸 잠시 잊을 수 있는 것 같기도. 자식들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가장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는 딸이 이 세상에 없는데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투정일 뿐. 아직 민기가 있다. 부모는 끝까지 자식을 지켜야 한다. 그게 부모가 존재하는 이유니까.

    '나는 아직 아빠야.'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다시 일에 집중해 보지만 결국 머리 위를 떠도는 민서를 지우지 못한 채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남은 일이 많은데, 서둘러야 한다. 민기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집안일을 끝내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구른다.

    '꾸룩..'

    상봉은 자신의 배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점심을 건너뛴 것이 떠오른다. 배고픔은 껄끄럽다. 살고 싶어 안달 난 것만 같아. 입구녕으로 들어간 쌀알은 혓바닥을 만나 가시가 되어 그의 목구멍부터 위장까지를 속속히 할퀴어댔다. 하늘에서 밥 먹을 자격이 없다며 벌을 주는 것이겠지. 마땅한 벌이다. 아니, 부족하다. 그렇게 좋아하던 팥죽도 먹이지 못하고 보냈다. 그 추운 날에. 전화를 받지 않는 딸에게 연락 한 번 더 할 생각 못하고 돼지갈비에 소주를 퍼먹고 있었다. 그렇게 상봉이 한껏 취해있던 그날, 민서는 떠났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상봉은 새벽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차려진 밥을 먹고, 안방으로 숨어, 다시 새벽에 나가기를 반복하는, 한껏 취해서 밤늦게 들어오는, 돈 벌어오는 기계? 어쩌면 평범한 가장, 발자국을 남기는 유령, 그러니까 희미한 존재였다. 그랬던 상봉이 아내와의 이혼을 다짐한 것은 대구의 응급실로부터 전화를 받은 날이었다.

    "최민서님 보호자 되시나요?"

    대구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는 민서가 해부실험을 하던 중에 쓰러졌다고 했다. 과로로 인한 영양실조와 공황증세까지 겹쳐 사단이 난 것이었다. 아침을 먹고 있던 상봉과 아내는 급히 휴가를 내고 민서가 있는 응급실로 향했다. 반년만에 본 딸의 몰골은 말 그대로 ‘피폐’했다. 원체 말라서 빠질 살도 없는 아이의 볼이 움푹 페어 있었고, 원형 탈모에, 허리디스크까지 터져서 제 부모가 찾아왔음에도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있었다. 낯선 딸의 모습에 머뭇거리던 상봉의 옆에서 아내가 말했다.

    "나약한 년"

    민서는 등을 돌리지도 못한 채, 귀를 막지도 못한 채, 그저 눈을 감고 아내의 말을 삼켰다. 이제 와서 변명하자면 상봉은 아내가 그 정도로 무지막지한 사람인 줄 몰랐다. 단호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기절하지 않았던 게 신기할 정도로 엉망의 몰골을 한 딸에게 그렇게 모진 말을 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다. 하물며 민서는 그러한 아내의 말이 익숙한 듯 보였다. 체념한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민서를 보고 순간 자신의 딸이 죽었다고 착각했다. 쏘아대는 아내의 말에 의하면 민서는 원래 피를 잘 보지 못한다고 했다. 피도 못 보는 아이가 왜 의대에 가 있느냐고 묻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난 자식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서. 아내는 상봉이 옆에서 가만히 있는 것조차 짜증 나는 듯 흘깃 째려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민서 너, 수액 다 맞고 오늘 수업에 지장 없게 해. 매일 피 나오는 영화를 보든가 네 피를 뽑든가 해서 피에 익숙해져야 될 거 아니야. 어?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민서를 보고 다짐했다. 아이들을 불행으로부터 구할 것이다. 더 이상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수액을 맞는 민서를 뒤로하고 올라오는 길, 상봉은 아내에게 이혼을 제시했다. 원체 부부로서의 교류가 없어진 지 한참이 되었기에 서로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아내는 무슨 자신감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겠다는 둥, 두둑한 양육비를 준비해 놓으라는 둥의 객기를 부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해자보다는 방관자랑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건지 상봉과 함께 살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결국 아내는 상봉의 집에서 자신의 짐을 빼야 했다. 아내가 떠난 후, 의대를 자퇴할 줄 알았던 민서는 의외로 학업을 지속해 나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 때면 이제 괜찮아졌다는 민서의 말에 점차 안심이 되었다. 무뎌졌다. 사실 상봉은 눈앞에 있는 민기의 뒷바라지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생전 해본 적도 없던 집안일을 새벽과 저녁에 나누어하기도 벅찼다. 그런 상봉에게 타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민서는 제 딸이지만 마치 어엿한 어른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다. 그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불을 바꿔줄 겸 민기와 함께 대구에 내려가서 쌈밥을 사줄 뿐이었다. 민서는 동물이라면 치가 떨린다며 채식쌈밥을 고집했었다. 마침내 6년의 과정을 이겨낸 민서는 졸업을 하자마자 집 앞 한수대병원에 입사했다. 혼자 사는 것이 외로웠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매일 3인분의 아침을 만들고 늘어난 집안일을 하느라 더욱 바빠진 상봉이었다. 그래도 상봉은 좋았다.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면 싹싹 비워져 있는 두 개의 밥그릇을 보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가 행복해지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날도 버릇처럼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전날 밤 출장을 위해 도착한 청주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셔대느라, 뒤집어진 속을 잠재워야 했다. 낯선 건물에서 찾은 편의점. 헛개수와 핫바를 사고는 핫바를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급하게 올라오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헛개수를 꿀꺽거리며 마시고는 그 사이 다 데워진 핫바까지 허겁지겁 먹었다. 금세 배를 채운 상봉은 쓰레기봉지를 간이 식탁 위에 올려두고 창문 너머 걸어가는 직장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경쾌한 벨소리가 울린다. 민서였다. 어제 전화를 받지 않았던,

    "최민서님 보호자 되시죠?"

    민서가 아닌, 그렇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익숙한 어감. 응급실? 민서가 응급실에 간 듯했다. 이번에도 쓰러진 건가. 영양실조? 아니면 허리디스크? 성한 곳이 하나도 없으니.

    “네, 제가 아빠 됩니다.”

    익숙한 어감을 한 남성은 머뭇거리며 대꾸했다.

    "어... 지금 한수대 병원으로 좀 와주셔야겠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최민서님이 사망하셨습니다. 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그젯 밤 상봉이 미리 만들어둔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민서였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그럴 리가 없다. 저녁에 전화를 받지는 않았지만, 요즘 수술이 많아 바쁘다고 했었다. 상봉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이보세요.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이 새벽에 전화해서 장난하는 겁니까? 우리 딸이 뭐요?”


    그렇게 한참 전의 과거로부터 그날까지의 기억을 되새기던 상봉은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려운 장면에 허벅지를 툭툭 치며 현실로 돌아왔다. 어느새 집 앞이었다.

    집에 돌아온 상봉은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집안일을 시작했다. 오늘 일은 한 시간이면 끝날 듯 보였다. 민서가 떠난 후로 빨랫감이 절반으로 줄었고, 쌀이 사라지는 속도도 배로 느려졌다. 한번 시작하면 여섯 시간은 걸렸던 이불빨래도 세네 시간이면 끝났다. 민서의 방 앞에 있어서 민서가 주로 쓰던 화장실은 매번 청소할 때마다 머리카락과의 전쟁이었는데 이제는 몇 달이 지나도 물때 하나 없이 쾌적하다. 매일 아침 민기와 민서를 위해 챙겨놓던 영양제도 유통기한을 지키지 못할 듯 보였다. 미리 세 통이나 사두었는데.

    집안일을 얼추 마친 상봉은 장을 보러 나섰다. 내일 아침은 민기가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를 해야겠다. 마트로 가는 길. 장바구니를 덜렁덜렁 흔들며 걷는 상봉의 시야에 공원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안에 익숙하여 눈을 뗄 수 없는 얼굴이 보인다. 담배를 피우는 한 학생. 민기와 같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요새 애들 잠바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저 학생은 민기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봉은 아들의 이름을 불러야했다.

    "민기야?"

    저 멀리서 고개를 돌려 상봉을 바라본 학생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그리고는, 잠시동안 정지해 있던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반대쪽 골목으로 숨어버렸다. 상봉의 발은 자동반사적으로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골목으로 들어서서,

    "민기야!"

    상봉은 자신이 착각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외쳤다.

    '돌아보지 말아라.'

    상봉의 바람을 비웃듯, 그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민기가 맞았어. 민기는 그 자리에 서서 걸어오는 상봉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왜 여기 있니.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애가, 아빠가 왜 널 여기서..."

    "제가 죽었어야 했던 거지요?"

    민기는 상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녹아버릴 듯 풀린 눈으로, 민기가 말했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아빠도 마음속으로는 누나가 죽어서 내심 아쉽지요? 착하고 똑똑한 누나 대신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 멍청하고 귀찮은 걸림돌이 사라졌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민기의 눈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더니, 뾰족한 눈빛으로 상봉의 심장을 찔렀다. 민기는 멈추지 않고 쏟아댔다.

    "아빠가 엄마랑 이혼할 때 누나랑 나 행복하게 해 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를 보세요. 누나는 죽어버렸어요. 왜 약속 안 지켰어요? 아빠가 다 버린거예요. 엄마도, 누나도요. 이제 제 차례인가요? 나도 버릴 거지요? 난 혼자예요.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요!"

    붉게 상기되어 소리치던 민기는 한 순간에 냉기를 되찾고 돌아서서는 저 멀리로 뛰어갔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한참을 서 있던 상봉은 집으로 향했다. 그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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