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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Jan 18. 2023

오늘의 일기

아무 글이나 떠오르는 대로

공기가 차갑다. 바람은 어제보다 잦아들었다.

키보드를 하나 마련했다. 중고로 구입한 키보드인데, 이미 인터넷에서는 꽤 유명한 제품이다. (키크론의 K6 모델이다.) 자판이 눌리는 느낌이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찰칵거리는 기계의 느낌이 있어 굉장히 사랑스러운 키보드다. 크기는 작으면서도 필요한 기능은 전부 다 들어있으니 신기하기도 하다. 키보드가 있으니 글을 쓸 내용이 없어도 자꾸 키보드를 쓰고 싶어 글을 쓰게 되는 장점도 있다. (글을 매일 쓰기로 마음먹어놓고도 나태해지는 마음을 당분간은 키보드가 잡아줄 것 같다.)


키보드를 잡고 이런저런 글을 쓰다 보니, 컴퓨터보다는 태블릿이 조금 더 편해진다. 학기 중에는 업무가 다 끝나고 남는 시간을 쪼개서 조금씩 일기를 적었기 때문에 따로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컴퓨터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해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다 보니 컴퓨터가 따로 없어, 글을 쓸 때 굉장히 불편했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나는 아직 직접 버튼을 눌러 입력해야 하는 아날로그 세대인 걸까?) 그런데 이 블루투스 키보드를 마련하고 나니, 태블릿에서도 컴퓨터에 글을 쓰는 것처럼 글을 쓸 수 있어 좋다.


키보드에 두드리는 느낌이 좋아 글을 쓸 것이 없는데도 일어나면 일단 키보드를 붙잡고 앉는다. 태블릿을 켜고,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이리저리 두드린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다다닥'하는 소리가 방을 울리지만 아름다운 글은 나오지 않는다. 글감이 없기에 그저 키보드를 이리저리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즐겁다. 키보드 하나가 주는 즐거움이 이리 클 줄 알았다면, 진작에 키보드를 살 것을. 이제라도 샀으니, 그것도 감사하다.




오늘 원래 의정부로 옛 제자를 만나러 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제자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시기라, 학원을 빼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학원을 빼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픈 한 편으로, 대견했다. 공교육에 종사하는 입장에서는 학원을 강력히 반대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신념을 다 떠나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마냥 어린아이 같았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밝혀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 같아 대단하고, 대견하다. 게임을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던 아이가 이제 청소년이 되어가는구나. 중학생이 되어가는구나 싶다.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터라, 기간제로 일했던 곳이 나름 많다. 위에 언급한 의정부, 하남에서도 시간을 보냈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보통 단기간에 시험을 합격하던데. 그에 비해 나는 오래 걸렸던 것이 그때는 굉장히 서럽고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다 재산이 아닌가 싶다. 요즘 학교에 다니며 선생님들로부터 신규 선생님 같지 않게 능숙하게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니 기분도 좋다. 흔히 말하는 중고 신입이라서 그런 것일까?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고, 다 내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지 않아 기분이 좋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몇 년 돌아온다고 해서 그렇게 큰 손해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편으로는 내가 이제라도 합격했으니 이런 말이 나오지, 싶다.)




오랜만에 네이버 지식인에 들어가 보았다. 어릴 때는 어쭙잖은 지식으로 아는 척하기를 좋아했어서 지식인에 가끔 답변을 들곤 했었다. 보통은 내공이라는 별 볼일 없는 보상과 대부분은 명예욕이었다. 나도 대단한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인정욕구, 그 인정욕이 나를 지식인으로 이끌었다. 지식을 쌓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배운 작은 지식으로, (어린 내가 배웠던 지식이니 아주 얕기 그지없는 지식이었다.) 아는 척하기를 좋아했었다.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깨닫고, 나는 지식인에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 지식을 쌓고 나면 다시 다른 사람의 고민이나 질문에 대답해 주고 싶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는 것이 너무 적고 지식이 너무 얕아 다른 사람에게 도저히 답변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아는 척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어제 내 눈을 사로잡는 질문이 있었다. 자신이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인데, 친구들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져 고민이라는 아이였다. 이건 내 전문 분야구나, 싶었다. 아이들을 상담해 주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 이것은 내가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닌가. 아이에게 정성껏 답변을 달아 주었다. 아이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일렀다. 자신을 사랑해야 존중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이는 다시 댓글을 달았다.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고, 고맙다고 했다. 별일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을 수 있었겠다, 싶으니 너무 뿌듯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구나, 전문 분야라고 할만한 것이 있구나. 더 공부해서 더 갈고닦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뿐 아니라 여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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