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의 화폐개혁론을 읽고
이거 한 두 번 읽어서는 어림도 없겠다.
방학을 맞아 그동안 사두었던 책들을 한 권씩 읽기로 마음먹었다. 학기 중에는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 기운이 없어서, 혹은 그냥 그럴 마음이 안 생겨서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이제는 펴야겠다는, 무언가 쫓기는 듯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늦기 전에 내 지적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지식이 있는지 깨닫고 있다. 그럴수록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나도 무언가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오래된 명언을 꺼내 부여잡고, 무엇이라도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에는 무엇인가 알기는 너무나 쉽다. 정보가 없어서 고통받던 지난 수많은 세월과는 다르게, 요즘은 정보가 너무나 넘쳐난다. 이곳에도 정보, 저곳에도 정보. 길 가다 발에 채는 것이 정보다. 이렇게 정보가 많아지니 정말 좋은 정보는 무엇일까 하는 판단이 더욱 어려워졌다. 옳은 정보와 다른 정보의 간극이 줄어들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도 더욱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정보를 유튜브에서는 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출처가 불분명하고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정보들이 넘쳐나는 까닭이다.
정보를 얻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에는 수많은 정보가 들어있지만 (물론 개중에는 가짜도 섞여 있을 수 있다. 가짜 정보를 전하려는 사람이 책을 쓰지 말라는 법 있는가?), 적어도 책에는 출처를 밝히는 노력은 들어가 있다. 출처를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이 정보의 근원이 믿을 만한 곳인지 (사회나 학계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주류 이론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진짜 정보임을 확신하기 쉽다. 물론 나도 '짜장면 만드는 법'이나, '턱걸이 잘하는 법' 같은 정보들은 유튜브를 검색해서 알아내곤 한다. 이 정보는 나의 신념이나 믿음과 밀접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어떻게 만들든, 내 입에만 맞으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만약 내가 '짜장면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가서 중화요리에 관한 책을 찾아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책을 읽는다. 오늘 읽은 책은 케인스의 화폐개혁론이다. 케인스는 저명한 경제학자로, 전 세계에 불어닥친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경제 정책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케인스의 다양한 책이 있지만, 내가 굳이 화폐개혁론을 고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일단 케인스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케인스가 썼던 아무 책이나 일단 구매한 것이다.
책은 너무나 어려웠다. 연달아 두 번이나 읽어 보았지만 대략적인 내용밖에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내가 파악한 바로는 케인스가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케인스는 대공황이 불어닥치지 전,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이 시기는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기였는데, 1차 세계대전 이전에 호황에서 벗어나 세계가 점점 경제의 침체로 빠져들고 있던 시기였다. 케인스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전통적인 유럽 세계와 전쟁에서 지고 폐허가 된 독일과 같은 신흥 유럽, 그리고 미국이나 제3 세계까지, 모두가 경제난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케인스는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먼저 이야기한다. 가장 먼저 설명한 것은 통화의 가치와 부의 배분의 문제인데, 통화의 가치가 오르고 내리는 현상, 즉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에 따라 사회의 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설명한다. 인플레이션에는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현물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저축하지 않고 투자하게 될 것이며, 투자한 돈이 새로운 부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가도 같이 올라가게 되고, 이때는 불로소득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고 보았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돈의 가치가 올라가, 사람들이 돈을 저축하게 되고,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투자를 꺼리게 되어 장기적인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고 보았다.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모두 힘든 상황이고, 해결해야 할 상황이지만 인플레이션에서는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한 반면, (국채 부담을 줄이고 기업 투자를 촉진하게 되므로) 디플레이션에서는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다양한 이론들을 설명하고 논파한다. 화폐수량설, 구매력 평가설, 환율의 계절변동까지. (이 부분은 너무나 복잡해서 아직은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화폐 수량 설은 대중들이 재화나 물건에 대해 구매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의 화폐를 보유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즉, '화폐의 양 = 생계비 용지 수 X 대중의 소비 단위'라는 이론인데, 이 단락이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부분은, 케인스가 설명한 '화폐의 양에 따라 물가도 같은 양으로 조절된다'라는 부분이다. 화폐의 양에 따라 대중의 소비 단위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화폐의 양이 늘면 물가도 올라갈 것이고, 화폐의 양이 줄어들면 물가도 줄어들 것이다. 케인스는 여기서 화폐수량설이 대중의 습성을 읽지 못한다고 말한다. 화폐량이 2배가 되면 물가가 2배가 될 것이라는 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만 옳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 경제학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지 않는지까지 설명한다. 화폐 수량설이 주장하는, 소비 단위, 잠재적 채무, 그리고 그중의 현금의 비중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물가는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라 정확하고 분석 가능한 소수의 요인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하며, 충분히 조절 가능하고, 조절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구매력 평가 설은 화폐 수량설에 이어, 화폐가 국가 내에서 가지는 구매력인 대내 구매력과 국가 밖에서의 구매력인 대외 구매력을 설명하고 있다. 각각 국가 내에서 가지는 구매력의 비율을 '구매력 평가'라고 하는데, 균형 상태에서는 환율과 구매력이 일치하지만 만약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익을 얻으려는 쪽으로 무역이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환율은 구매력 평가와 가깝게 이동하게 된다. - 와 같은 내용이 이어진다. 두 번이나 읽어도 이렇게 적은 부분밖에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몇 번이나 더 읽어야 이해가 갈는지. 막막하다.)
그러고 나서 케인스는 평가절하와 디플레이션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가절하란 통화와 구매력의 간극이 많이 벌어졌을 때, 떨어진 통화의 가치에 현재의 가치를 고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디플레이션은 통화와 구매력의 간극을 줄여 통화의 구매력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 대전 이후에 유럽에서는 망가진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평가절하와 디플레이션에 관한 논쟁이었는데, 케인스는 평가절하를 지지한다. 디플레이션은 화폐의 가치를 교란하고, 부를 부의 소유자 쪽으로 재분배하게 되며, 심지어는 '인플레이션은 이익이 되는 측면도 있는 반면, 디플레이션은 얻을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매력이 중요한 것이며, '돈은 단지 거래 수단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소명을 다하면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가 보다'라고 말한다. (굉장히 마음을 울리는 말이었다.)
이 뒤에도 다양한 내용이 이어진다. 케인스라는 위대한 학자가 자신의 전문 지식을 동원하여 이 어려운 책을 (정말 어렵다. 내가 이렇게 지식이 짧았던가.) 쓴 이유는 오직 하나다. 전후 세계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려는 마음이다. 나는 위에도 여러 번 말했듯, 케인스가 한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나 어려운 내용과 수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마 일반인이 읽기 쉽게 최대한 쉽게 쓴 내용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어렵다니...) 하지만 케인스가 하는 말의 요지는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케인스가 책을 집필할 당시 (1923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의 조짐이 나타나던 시기이다.) 존재하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이론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고, 이 괴리를 메우지 못하면 현실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자신의 화폐 이론을 책에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파 경제이론은 장황하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다. (나는 경제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케인스의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다. 나는 벌써 설득이 되어버렸다.) 경제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케인스의 논리는 굉장히 견고하다. 다양한 사례를 이용하여 화폐수량설과 구매력 평가설, 디플레이션 정책을 비판한다.
돈은 돌아야 한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자신의 나라만 보호하기 위해 펼쳤던 보호무역조치가 대공황을 악화시켰고, 결국 대공황을 극복했던 미국과 중국이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돈은 중요하지만 결국 수단이다. 돈은 단지 사람이 사용하는 거래 수단일 뿐이다.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돈은 돈이 가지는 구매력 때문이 힘을 가지는 것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국가나 은행의 역할을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케인스는 물가는 조절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학교에 다닐 때 배웠던 내용이 떠오른다. 국가의 역할에 관한 경제학자들의 관점이 대공황 이전과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대공황 이전에는 시장에 경제를 맡겼다면 대공황 이후에는 국가의 시장 개입이 활발해졌다고 배웠다. 이런 내용이 연결되니 흐름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경제학에 문외한인 내가 접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이미 책을 샀으니, 이왕이면 완벽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읽어보고 싶다. 그때가 되면 지금 쓴 글이 지금 느껴지는 것보다 더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뭐라고 쓴 것인지 통 모르겠다.) 그런 날이 되면 오늘 쓴 글이 창피할 수 있겠지만, 얼른 그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