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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Jan 22. 2023

늦게 배운 운전이 재밌다.

너무너무 재밌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 어린 날에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가 어른이 되어 다른 방향으로 분출되곤 한다는 사회학적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실제로 나는 어릴 때 음식을 골고루 먹게 교육을 받고 자라 군것질을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군것질을 스스로 조절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식을 많이 먹곤 한다.) 실제로 재미있는 줄 모르고 배우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 은근히 적성에 맞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이 도둑질이 바로 운전인데, 운전이 이리 재미있고 편리한 줄 알았다면 진작 배울 걸 하는 후회를 요즘 많이 하고 있다. 다들 길고 긴 수능 수험생활이 끝나고, 대학에 가기 전 남는 시간 동안 따는 것이 시쳇말로 '룰'인 운전면허를 내가 왜 이런 늦은 시기에 갖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명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내가 사는 곳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 운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자취방을 구할 때처럼 이사를 할 때, 대학을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되어 지역을 옮겨 다닐 때, '만약 지금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런 생각도 그때뿐이었다. 일 년, 혹은 이 년에 한 번씩 드는 이런 작은 생각으로는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생활에서 필요가 없으니 이런 일회적 필요성도 금방 잊어버렸다.


둘째로, 운전이 무서웠다. 운전이 무서운 것은 누구나 매한가지겠지만, 나는 운전이 참 무서웠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도 속도가 너무 빠르면 무서웠는데, 이것도 똑같다. 자동차를 끌고 달리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지, 누군가에게 사고를 일으키면 어쩌지, 뉴스에서 본 급발진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도로 위 트럭에서 무언가 날아와서 내 차를 덮치면 어떡하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공포로 운전을 시작하기가 매우 꺼려졌다.


셋째로, 운전을 하게 되면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았다. 운전을 하게 되고 차를 갖게 되면 실제로 유지비가 많이 든다. 할부, 보험료, 기름값, 통행료, 자동차세... 셀 수 없는 비용이 줄줄 빠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운전을 할 줄 알게 되는 것이 곧 차를 사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웃기는 변명이다. (그리고 차를 내 형편에 맞는 것으로 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미루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들, 심지어 그 일을 한계까지 미뤘다 한들, 언젠가는 일을 해치워야 할 날이 온다. 나는 운전면허를 작년 4월경 취득했는데, 운전을 겁내지 않고 도로로 나오게 된 지는 채 한 달이 못 된다. 운전면허를 딸 때도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 사연은 나중에 내가 잊지 않는다면 따로 풀어보기로 한다. (굉장히 우스운 일이 있었다. 내 꼴이 우스운 일이.)


막상 면허를 따고 나서도 운전을 하는 것이 어찌나 두렵던지, 처음에는 도로를 보고 있는 눈을 깜빡거리기도 겁이 났고, 급기야는 옆자리에서 나의 운전 연수를 도와주던 아버지에게 와이퍼를 켜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와이퍼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지도 알지만 손을 핸들에서 놓고 눈을 짧은 시간이라도 떼는 것이 공포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처럼,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사고가 나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연습만이 살 길이었던가? 아버지, 누나와 함께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동네를 뺑뺑 돌기를 어언 한 달이 지나고, 집 근처에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마트에도 가보고, 이사를 할 때는 내 자취방이 있는 양평까지도 차를 운전해 보았다. 모두 닥쳐서, 해야 돼서 한 것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자신감이 점점 생기는 것을 느꼈다. 시내 운전만 하다가 처음 고속화도로를 탔을 때 그 느낌은 정말 아직도 짜릿하다.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리다 80,90 킬로미터로 달리게 되었으니 무서울 만도 한데 자신감이 더욱 생겼다니 아이러니하다.) 비 오는 날도 운전을 해보고, 밤에도 운전을 해봤다. 그렇게 점점 운전 실력이 늘어갔다.


고개를 앞으로 고정시키고 좌우 사이드미러만 겨우 보던 세월을 지나, 이제는 차선 변경을 할 때면 숄더 체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후진이나 주차도 문제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네비를 직접 보기가 무서워 (눈을 도로에서 뗄 수가 없었으니) 네비를 틀어놓고 누나에게 설명을 들어가며 운전하던 시간은 이제 다 지났다. 이제 직접 네비를 확인하며 운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남들 다 하는 운전 뭐 대수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내가 굉장히 자랑스럽다. 역시 뭐든 시작하면 되는구나


비록 이번에는 운전이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고 살았던 수많은 일들이 아른거렸다. 내가 겁이 나서, 귀찮아서 해보지 않은 것들 중에 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이제는 뭐든 시도하며 살자. 혹시나 재미가 없어지면 그때 그만두면 될 것이 아닌가. 일단 해봐야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일이다. 시도하다 실패하면 어떤가. 이것이 나랑은 맞지 않는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은 셈이니 아까울 것도 없다. 이제 시도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새로운 것을 많이 시도하며 살 것이다. 또 어떤 것이 나의 도둑질이 될는지 궁금하다.


오늘 밤에는 누나를 데리러 간다. 물론 내가 직접 운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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