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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Feb 17. 2023

불안함 없애기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며칠간 포근하다가 갑작스레 춥다.


이제 개학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선생님들마다 개학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아이들을 만나서 그려질 행복한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더 크다. 나는 아직 경험이 일천한 상태라, 많은 개학을 지나치지는 않았으나 매번 개학이 다가올 때마다 이런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악몽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악몽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세세한 줄거리를 제외하고는 핵심적인 요소들이 대부분 같다.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무시하는 아이들, 소리를 질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 내가 꿈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나는 아이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불안함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안함이 왜 생기는지 이유를 탐구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항상 불안할 때마다 내가 왜 불안한지 제삼자의 시선으로 분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행동이 내 비이성적인 불안함을 없애줄 것이라 믿기 때문인데, 불안함이 비이성적인 것인 것을 깨닫고 불안해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도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불안함은 마음의 작용이고, 이성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계속 남아있게 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 내가 왜 불안한지를 고민해 보겠다.


내가 불안한 가장 큰 이유는 '무지' 때문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 말하듯,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지의 세계에 공포감이 있는 쪽이 유리했을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미지의 요소가 많고,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치명적으로 다가왔을 테니. 그러나 나는 미지에 대한 공포가 남들보다 더 큰 편이다. (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지금이야 취향으로 바뀌어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든지, 새로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든지 하게 되었지만 사실 새로운 것을 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새로운 것을 접하지 않게 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무언가가 옳은지 그른지 확인할 길이 없고, 확인할 길이 없다는 말은 내가 스스로 틀렸는지 확인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 되며, 스스로 틀렸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발전할 수 없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발전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 무지, 미지의 두려움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로 다짐했다. 새로운 것을 배움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을 공부하고, 경험하기로 마음먹었다. 미지의 공포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미지의 공포를 제거한다면 이 불안함 또한 조금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6학년 아이들은 갑자기 어디에선가 나타난 외계인 같은 존재가 아니다. 나도 언제가 6학년이었던 적이 있었고, 나의 부모님도 6학년이었던 적이 있다. 아마 6학년에 해당하는 13살이었던 인간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6학년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존재가 아니듯, 6학년을 지도하기 위해 애쓴 인간 또한 처음 필요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나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선각자들 또한 아이들을 어떻게든 지도하고, 알아가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굉장히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다시 대하는 것 이전에 아이들의 전체적인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고학년 아이들과 작년에 처음 만나며 느낀 것은, 아무리 아이들이 컸다고 한들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아무리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한들, 절도를 하고 욕을 하고, 침을 찍찍 뱉는 아이들이라고 한들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나를 안도하게 했고, 슬프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손길을 기다리는 동시에 뿌리친다. 뿌리치는 손길을 이겨내고 아이들 마음에 다가가는 것이 나의 숙제가 될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만 있다면,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다는 자신이 든다.


지난번 EBS에서 강연을 보다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조지프 나이의 말을 듣게 되었다. 조지프 나이는 정치학 전문가로, 다양한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인물이며, 세계적인 석학이다. 조지프 나이는 소프트 파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권력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있다. 하드 파워는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예를 들면 선생님이 아이들을 윽박지르는 것, 크게 소리를 치는 것, 겁을 주는 것, 벌로 숙제나 청소를 시키는 것 정도가 해당될 수 있겠다.)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은 굉장히 편리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상대는 지금은 나에게 굴복하지만 언제든 나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 소프트 파워이다. 소프트 파워는 다른 말로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상대에게 나의 매력을 보여주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자진해서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 매력에 중요한 것이 공정성과, 옳은 목적이라고 했다. 옳은 목적을 위해 하는 일이고, 이 일이 공정하다면 상대는 알아서 따를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강연을 듣고, 굉장히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따랐을 때, 권위에 굴복했던 때보다는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했을 때, 더 진심으로 따랐던 기억이 났다.


결국 포인트는 아이들이 나를 존경하게 만드는 것이다. 존경은 살 수 없다. 아이들도 사람인지라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한다. 아무에게나 존경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없는 훌륭한 가치를 지닌 사람을 존경할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존경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말로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된다면 아이들은 나를 존경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된다면, 아이들은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침착하게 아이들을 지도한다면 아이들은 나에게 마음을 열 것이다. 아이들에게 수업이 필요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면 아이들은 기꺼이 업에 참여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눈높이를 맞추어 대화한다면, 아이들은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배운다는 것은 아이들 위에 군림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가르침을 필요로 할 때 가르침을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이렇게 글로 적고 나니 불안함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할 1년이 '즐거울 것 같다', '얼른 개학했으면 좋겠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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