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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Aug 28. 2023

양심의 자유와 행동할 권리

국가는 나에게 빚을 졌습니다.

나는 교사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으로 정의되는 한 개인이자, 교사라는 집단에 속한 한 개체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한 방법이나, 나를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교사이기 이전에 자유의지를 지닌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부분은 온전히 교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려면 온전히 나라는 인간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는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내 신념과, 내가 누리는 권리와, 내가 져야 할 책임입니다. 그리고 내 말, 내 행동입니다. 교사라는 단순한 구분법으로는 나를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교사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따릅니다. 때때로 교사에게 주어지는 교사라는 책임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의 행사보다 앞서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보호, 안전에서 교사는 제외되어 있습니다. 교사라는 책임이 항상 우선하는 탓입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이 상황이 누구의 책임이라고 꼬집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규정짓고, 그 사람을 끌어내리거나, 책임을 지우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 대한 냉정하고도 차가운 판단입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 상황은 단단히 잘못되었습니다. 모든 직업이 가지는 권리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가지는 권리도 교사라는 이유로 무시되었습니다. 한 국가에 속한 개인이라면 당연히 누리고, 누리지 못하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권리를 무시하는 주체는 다양합니다. 작게는 같은 개인에서부터 크게는 국가 권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층위에서 내가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는 무시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나는 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나는 누구에 의해서도 협박이나 위협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만약 내 말이나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나는 당연히 나의 행동에 대해 소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명을 한 이후에 내가 법을 어긴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진다면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으로서 법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개정 및 재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을 하는 노동자로서 단체 행동을 할 수 있고, 집단 교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들은 너무도 처참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나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거나 말할 수 없습니다. 교사이기 이전에 내가 가지는 양심의 자유는 무시됩니다. 내가 한 말 한마디는 곧 아동을 죽이는 칼이 됩니다. 아동이 느끼는 모욕감이라는 것은 나를 처벌하기에 정당한 사유가 됩니다. 형법상의 절차를 처리함에 있어 당연히 존재해야 할 무죄추정의 원칙은 없습니다. 이곳은 오로지 모든 사람이 유죄입니다.
이러한 절차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협박하거나 위협합니다. 적법한 절차를 가지고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 합니다. 그러나 물러나거나, 도움을 요청할 곳은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느끼는 참혹하고도 차가운 교직의 현실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까?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원죄가 되어, 더 이상의 소명이나 변호절차는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까?
혹자는 이 일을 보고도 나를 원망하거나 모욕할 것입니다. 교사들이 잘못했으니 일이 이 지경까지 커졌다거나, 자신이 만난 교사들은 모두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거나 따위의 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래도 교사가 좋아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방학이 있고 임금이 나쁘지 않으니 좋은 직업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싫다면 교사를 그만두는 것이 맞지 않냐고 말입니다.
나는 내 양심에 따라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한 개인일 뿐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장점을 사랑합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 이 직업이 좋습니다. 아이들을 통해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이 직업이 너무나 좋습니다.
다만 내가 선택한 직업이라고 해서 내가 그 어떤 것도 요구할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내가 요구하는 것은 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국가에 속한 국민으로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기본 이념이 아닙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법과 제도를 이용한 협박이 난무하고 있고, 그 협박을 등에 업고 나의 기본권을 포기하기를 어려 사람들이 종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본권에 대한 요구가 지나치다고, 혹은 배부른 소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역사의 흐름은 거스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회는 조금씩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은 나를 옥죄고 괴롭게 만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내 요구는 좌절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이 직업에 종사하는 동안 이루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언젠가는 이뤄질 것입니다. 나에게, 또 많은 사람들을 탄압했던 사람들은 역사의 반대편에 기록될 것입니다.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명문을 통해 한때 말했듯, 국가는 나에게 빚을 졌습니다. 지금은 내가 미울지 모르나, 국가는 나에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로서 마땅히 해야 했던 일인 한 국가에 속한 인간,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한 잘못을 되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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