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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kuna Matata Dec 06. 2022

너도 늙어봐, 이년아

나이는 먹어도 늙지는 마 엄마


“조금 느리게 가는 아이. 마음은 커다란 아이.

 저 길 끝에 보이는 꿈 따라가면 느린 걸음걸음마다 반짝반짝 환하게 빛이 난다"     


요즘 아이와 즐겨 듣는 노래다.


합창 연습 시간에 배웠는데 노랫말이 참 좋다며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들려주길래

처음엔 별 감흥 없이 같이 듣다, 따라 부르다, 덩달아 나도 이 노래가 참 좋아졌다.   

  

사십춘기라 그런지 엉뚱한 데서 눈물샘이 터질 때가 잦기는 해도, 동요를 듣다 눈물을 흘릴 줄이야.

원래 가사의 맥락과는 별 상관으로, ‘느린 걸음걸음’이라는 가사에 느리게 걷는 우리 엄마가 겹쳐 보인 때문이다.     


“엄마, 늦었다고! 아니 그러게 나 혼자 휙 둘러보고 오면 될 걸 왜 굳이 따라나서서는 느그적느그적 자꾸 뒤처지는데! 나 진짜 시간 없다니까!”     


워낙에 살갑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딸은 아니었어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세상 누구 못지않던 나였는데, 변했다. 

고분고분 엄마 말만 잘 듣던 아이였는데, 간도 커졌다.   

  



엄마 손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던 꼬마가

엄마랑 나란히 팔짱을 끼고선 함께 공연을 보러 다니는 대학생이 되고,

그러다 이젠 엄마가 되어 내 아이 손을 잡고 성큼성큼 앞서 걷는다.

내 새끼 시선과 필요를 쫓느라 바빠, 그 사이 멀찌감치 뒤에서 걸어오는 엄마를 챙길 생각은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신발이 미끄러운가. 지난번 넘어졌던 무릎이 시큰거리는 것도 같고. 알아서 따라가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

“아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멀쩡한 신발 탓하지 말고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얼른 말해. 관절약은 잘 먹고 있는 거야? 그거 매일 꾸준히 안 챙겨 먹으면 효과 없대. 잘 좀 챙겨 드셔”     


느린 걸음이 멋쩍기도 하고, 당신 때문에 신경 쓰여 자꾸 되돌아오느라 제대로 볼일을 못 보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한 마음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엄마의 변명에,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로 쏘아대는 딸.

길 가다 보면 한 번씩 목격되던 나이 든 친정엄마와 못되게 쏘아붙이는 딸의 모습이 내 것이 되다니. 엄마한테 이럴 일인가.      



분명 같이 걸어가고 있던 엄마가 어느 순간 한참 뒤에 있다.

내 걸음을 놓치지 않으려 바쁜 시선과,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발걸음의 부조화를 보고 있자면 다짜고짜 화가 치솟는다.

느려진 엄마의 걸음이 답답해서인 줄 알았는데, 그런 엄마를 챙기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거다.      


엄마를 할머니로 만들어준 건 나면서, 엄마가 늙는 게 싫다.


늘 어설픈 내 치다꺼리를 해준 것도 부족해 내 아이까지 보듬어 돌봐주는 걸 당연하다 여겨왔는데, 이제는 거꾸로 내가 엄마를 보살펴야 하는 때가 되었다는 사실. 그걸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싫은 모양이다.

남들에게는 호구 소리 들을 만큼 모자라게 굴면서, 엄마에게만큼은 어쩜 이리 모질고 이기적이기만 한지.   

   



다행히 우리 엄마는 나의 이런 구박과 모질음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분은 아니다.      


“너도 늙어봐, 이년아”     


그러게.

엄마 말은 늘 맞다.

     

영어 단어도 아니고 한번 들은 가사를 왜 못 외워?

눈이 시리다고? 그게 뭐야?

날이 흐린 거랑 몸이 무거운 거랑 무슨 상관이야?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들이 내 안에서 하나 둘 찾아지는 걸 보니

머지않아 나도 서글픔 가득 담아 우리 딸에게 쏘아대겠지.


너도 늙어봐, 이년아.          




(사진출처_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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