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시작한 글쓰기를 나는 오늘도 내일도 선택할 것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가족이 아닌 다른 모든 관계는 나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다. 악연은 놓으면 되는 것이고 인연은 잡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택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을 한다. 눈을 뜨면 물 한 잔을 먼저 마실지 달콤한 믹스 커피 한잔을 먼저 마실 것인지, 에어컨 온도를 26도로 할지, 27도로 할지, 빨래는 지금 돌릴 것인지 오후에 돌릴 것인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것인지 말 것인지 등.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살 수 있다.
글 쓰는 삶 속으로 들어온 것 역시 나의 선택이었다. 모든 선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그 선택을 하기까지 수많은 우연이 겹치고 겹쳐 내게 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인이 책을 냈다고 하길래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도 한번 책을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엄마 작가가 되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내가 책을 낼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우연히 글감을 찾기 위해 이십 대에 쓴 일기장을 펼쳐보았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작가로 살아보기라는 글자에 심장이 요동쳤다. 뭐라고? 갑자기? 내가? 왜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가 되고 싶었구나. 그래서 지인이 책을 냈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두근두근했었구나’ 나도 몰랐던 나의 과거가 현재의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더 많은 책을 읽게 되었고 글쓰기를 배우러 다녔다. 나에게 글쓰기는 선택이 아니라 우연에 가까웠다.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두 권의 공저와 단독 저서 한 권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공저와는 달리 혼자 책을 쓰는 일은 부담이 컸다. 과연 이런 문장으로 책을 낼 수 있는 걸까? 나는 왜 책을 낸다고 했을까? 무슨 자신감으로 시작을 한 걸까?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세상이 달라진 것처럼 굴었다. 글을 쓰라고 글을 쓰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소리쳤는데 지금의 나는 확신할 수 없는 문장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문장 안에서 허우적거리다 고개를 들어 숨을 뱉으면 쉼표가 생겼고 미로를 헤맬 때는 말줄임표가 생겼다. 밀린 숙제를 끝내는 기분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더 쓴다고, 더 붙잡고 있는다고 달라질 글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놓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글쓰기도 제대로 못 하면서 왜 책이라는 물성으로까지 나의 욕심이 뻗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파주에 가서 인디자인 수업을 듣고 책과 유튜브를 통해 표지와 내지를 만들었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마다 나의 일상이 흔들렸다. 결국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마음이 힘들었다.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잘’을 뺐더라면 어땠을까. 조금은 수월했을까?
숨이 턱턱 막히는 8월 <몰타 아는 사람,손!>이 세상에 나왔다. 인터넷 서점에 책이 판매되기 시작했는데 오타가 있다는 이야기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의 부족함이 책으로 삐죽 솟아 나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가 손으로 빚어 가마에 넣어 굽고 광택을 더해 세상에 내어놓은 내 작품이다. 부족하지만 나는 진심을 다했기에 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단 한 문장이라도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여전히 확신할 수 없지만 계속 해내고 싶은 마음으로 문장을 이어간다.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를 나는 오늘도 내일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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