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기억이다. 내 집과 가까운 한 블록 떨어진 아파트에 사는 3학년 언니 집으로 놀러 갔다. 평소에 친구의 집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날은 가고 싶지 않았다. 언니의 집에서 컴퓨터로 올림픽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밖에서 큰소리로 엥 소리를 내며 소방차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나와 언니는 창문 너머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시뻘건 불길이 치솟으며 매캐한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았다. 하늘은 까만 연기로 뒤덮였고 4층 창문으로 사람이 보였다. 밖에서는 어른들이 이불을 펴서 뛰어내리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화재 현장을 처음 본 놀란 나와 언니는 창문을 닫았다. 30분이 지나고 나니 소방차에 소리가 그쳤고 언니와 놀고 집으로 갔다.
돌아가는 길에 불이 난 현장은 까맣게 탄 가구들과 잿더미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어른들은 잿더미 앞에서 근심하는 표정으로 불이 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는데 친구의 집이었다. 집은 온통 타서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어제 친구와 웃으며 놀았던 그 집.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불이 난 상황을 물어보았다. 방학 탐구생활에 나온 크레파스를 녹이며 초를 만들다가 떨어뜨려 커튼에 불이 옮겨 붙어서 불이 났다고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잠시 은행을 다녀온다고 나가셨고 내 친구와 언니는 초를 만들다가 불이 난 상황이었다. 내 친구와 동생은 4층 창문에서 용기를 내 뛰어내렸지만 친구 언니는 겁이 나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현관문으로 탈출하려다가 연기흡입으로 질식해서 죽었다고 한다.
‘내가 친구의 집에 갔으면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잠도 잘 오지 않았고 무서웠다. 무서워서 한동안 밖을 나가지 못했다. 친구에게 ‘괜찮냐’는 안부조차 전할 수도 없었다. 친구는 불이 난 집에 더 이상 살 수 없어 이사를 했다. 그 후로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때는 친구한테 괜찮냐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 친구를 만나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미안해 친구야. 사과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