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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안 Dyan Sep 16. 2024

2024. 08. 10. & 2024. 08. 17. GS뮤비페스티벌

미운 네 살, 엉뚱한 일곱 살의 아이가 된 것처럼,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할 때가 있다. “왜?”. 한 글자로 시작하는 끝없는 질문이 머리를 빼곡하게 채운다. 온 세상이 습도로 빼곡했던 이번 여름날, 그대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생겨났다.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그대들의 공연 셋 리스트와 여느 때처럼 무대 위에서 한 껏 신이 난 그대들을 본 것뿐인데, 이상하게 이번 8월은 나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왜 우리의 떼창이 좋아?

첫 번째 ‘왜’였다. 부산에서의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셋째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관객석의 모습을 담았다. 자신만 보겠다며, 이 모습이 너무 예쁘다며 담아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이 노래를 떼창 하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대들의 단독 공연에서도, 페스티벌에서도, 이 노래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곡이었다. 그러니 그만큼 우리의 떼창은 그대들에게 흔한 일,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 중에 핸드폰을 꺼내 그대가 직접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싶어 할 만큼, 그대는 오늘의 떼창이 왜 좋았을까. 오늘은 어떤 연유에서 진한 감동을 받은 것일까? 팬지오디가 아닌 사람들까지 함께 부르는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가 진하게 다가왔을까. 아니면 부산까지 하늘색 불빛으로 물들인 우리의 모습이 좋았던 걸까.

이제는 우리에게 당연해져 버린 떼창이다. 그래서 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오늘을 떠나서, 그대들은 왜 우리의 떼창이 좋을까. 우리가 떼창을 사랑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늘 이 순간 더 행복해지길 바라기에. 그대들이 한 번 더 웃었으면 좋겠고, 그대들에게 오늘이 잊지 못할 순간이 되길 바라기에. 우리의 떼창이 존재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대들의 26년 차 아이돌 인생에서 우리의 떼창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도 그대들은 모든 공연마다 그 떼창을 참 좋아한다. 그대들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대들의 눈은 우리를 향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르다가도 눈을 뜨고 마이크를 잠시 자신에게서 떼어놓을 때면, 살포시 웃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마이크를 그저 손에 쥔 채 손짓과 입모양으로 가사를 따라 하고, 씨익 웃으면서 우리의 떼창에 호흡을 맞춘다. 온몸으로 우리의 노래에 애정을 보내는 그대들의 모습은 우리의 기폭제가 된다. 그 행복한 모습에 행복을 더해주고 싶어서, 더 크게 목소리를 낸다. 그런 그대의 모습이 좋아서 떼창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대들은 왜 우리의 떼창을 듣고 또 들어도 여전히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모르겠다. 무대 위에서 그대들이 바라보는 모습이 어떻기에, 어떤 느낌과 기분이기에 26년째 들어도 얼굴 가득히, 온몸으로 그 행복을 표현해 주는 것일까. 무대 위의 그대들, 무대 아래의 우리들. 우리의 위치는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기에, 어쩌면 이 “왜”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미운 네 살처럼 궁금하다. 왜 우리의 떼창이 좋아?



왜 이게 가능한 걸까?

올해 여름은 온 세상이 물기를 머금은 것 같았다. 출근길의 9호선처럼 온 세상에 꽉 들어찬 습도는 정차하는 어느 역에서도 내리지 않는 사람들 같았다. 결국 나를 휘감는 묵직한 습도와 여름을 함께 나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습도가 높은 여름날이면, 나는 종종 녹아내린다. 몸은 탈수를 거치지 않은 채 꺼내 든 솜이불처럼 무겁게 늘어진다. 몸이 늘어지고 나니, 정신은 정신대로 흐물텅해진다. 사람이 맹해진다고 해야 할까. 가까운 사람들은 반쯤 넋이 나간 채 돌아다니는 여름날의 내 상태를 알기에 피식 웃고 만다. 하지만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습도 높은 여름날의 나를 만나면 꼭 묻는 말이 있다. “괜찮으세요?”


이런 내가 8월 한 여름의 페스티벌에서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여름의 최대 난제였다. 그래서 사실 가기 전까지는 그대들을 가까이서 볼 생각은 포기했다. 그저 그대들의 기를 살려줄 수 있는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불빛이 되는 것에 만족하기로 마음을 내려놓았다. ‘여름날 뙤약볕 아래에서 얼음물도 없이 화장실도 못 간 채 7시간을 버틴다.’  여름날이면 슬라임 인간이 되는 나에게는 혹독한 임무였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이 여름날 살아남기 위해 그대들과의 거리를 포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산은 실내이기는 하나 ‘페스티벌에 최적화된 라인업 아래에서 사람들과 끼여 버틴다.’ 역시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또 부산과 일산은 한 주 차이였다. 바로 다음 주에 내가 또 스탠딩을 버티고 서있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일산은 새벽같이 간다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던 상황이라, 또 스탠딩의 자리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내 자리 욕심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 생각에 불과했다. 공연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공연 당일 무대에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팬심은 다시 끓어올랐다. 그리고 기어코 부산과 일산 두 공연 모두에서 스탠딩에 들어섰고 그대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려 애썼다. 부산의 뙤약볕 아래, 가지고 간 남방을 가오나시처럼 두른 채 눈만 내놓고 햇볕을 피했다. 일산의 스탠딩 인파 속에서 가수가 바뀔 때마다 파도에 떠밀리듯 앞으로, 앞으로 전진을 했다.


팬심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한 여름의 뙤약볕도, 여름날 끈적하게 부딪히는 타인과의 접촉도, 모두를 버티고 그대들과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그동안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하며 쌓은 체력과 튼튼해진 다리 덕분도 있을 것이고, 유럽 여행 때 기차 화장실을 쓰기 싫다며 8시간을 참아온 전적이 있는 내 방광의 경험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혹독한 스탠딩 조건을 견디게 하는 것, 그리고 할 수 없을 것이라 단정 지었던 일에 뛰어들게 만드는 것, 그것은 모두 팬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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