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8. 30. KBS 대기획 <딴따라 JYP>
이전에 그대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팬들이 우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고,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그대들은 이토록 누군가를, 연예인을 좋아해 본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좋아하고 아직도 애정을 끝없이 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그런 말이었다. 그대들을 사랑하는 팬의 마음이란,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25년도 훌쩍 넘은 이 오랜 마음은 때로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같기도 했다가, 연인을 향한 절절한 마음 같아지기도 한다. 그대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그대들이 아프지 않고, 잘 잤으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우리와 오래오래 건강하게 봤으면 좋겠다는 것. 이 정도의 문장으로나마 간신히 표현하는 이 작은 마음은 그저 그대들이 언제나 빛나길 바랄 뿐이다.
오늘 공연의 주인공은 그대들이 아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대들과 오랜 시간 함께한 제작자였다. 제작자와 함께한 아이돌 가수들이 함께 서는 공연이었다. 우리만이 아닌 다른 그룹의 팬들도 함께할 자리였다. 그래서 한 자리라도 더 하늘색으로 채우길 바랐다. 그래서 관객석을 보는 그대들의 눈이 반짝이길, 그대들의 입가엔 미소가 걸리길, 춤을 추는 그대들의 몸짓엔 힘이 더 담기길, 그러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대들이 게스트로 서는 그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일지라도, 그대들이 가장 빛나고 우리가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길 원했다. 그대들과 우리의 관계성을 다시 한번 공중파 방송에 띄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도 지오디 팬이 있어?’라고 묻는 바깥의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대들도, 우리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내 바람은 바람으로 스쳐 지나갔다. 하루종일 속상함만 채워지는 날이 됐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그대들을 빛나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을 타인에게 방해받아 서럽고 속상했다. 이번 방송은 여러 가수의 팬이 모이는 자리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기에 각 그룹의 응원봉은 사용이 불가하다고 공지가 됐다. 그리고 나는, 아니 우리는 모두 착하게 그 말을 들었다. 우리의 응원봉인 하풍봉을 꺼내지 않았고, 제공된 너클을 손에 끼고 흔들었다. 혹시 들 수 있을까 싶어 챙겨 온 슬로건도 꺼내도 되는 걸까 고민하며 눈치를 보았다. 이 공연의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까, 그 주인공은 내 가수의 탄생에 지대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행여 내 작은 행동이 그대들의 이름과 우리의 이름에 누가 될까 걱정했다.
무대에서 ‘거짓말’이 흘러나오는데, 우리가 원래 하던 대로 응원법을 해도 되는 걸까 싶어 그 자리의 모두가 응원법의 첫 부분을 주저했다. 다들 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해도 될까’ 싶어서 작게 “윤계상”을 외치는 것을 들었다. 그렇게 주저하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리의 응원법은 제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응원봉도, 슬로건도 어떤 것도 그대들에게 우리가 왔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응원법이라도 목이 터져라 외치고, 노래라도 있는 힘껏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가장 첫 번째 게스트 무대로 나온 그대들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 다였다. 그렇게 소심하게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 그대들이 우리를 믿고 오늘도 신나게 무대에서 뛰놀다 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난 착한 아이가 됐던 것을 후회했다. 가장 첫 번째 무대여서 눈치만 보다가 슬로건조차 제대로 들 지 못했고, 응원봉은 아예 금지라고 생각해서 챙겨가지도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뒤를 잇는 다른 아이돌 그룹들은 여기저기서 응원봉을 꺼내 들었으며, 슬로건과 각종 플래카드가 즐비했다. 허탈했다. 원활한 녹화를 위해 그들의 규칙을 따른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제작진의 말을 들어 응원봉도 들지 않은 우리의 행동이 맞는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못된 느낌이었다. 흔히 말하는 호구, 말 잘 듣는 호구가 된 느낌이었다. 착하면 바보가 되고, 호구 취급을 받는 사회를 잠시 망각했다.
그렇게 자신들이 말한 규칙을 모두 어긴 다른 팬덤들을 카메라로 열심히 잡아 전광판에 띄우는 제작진들이 원망스러었다. 할 줄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니었는데, 할 줄 알았지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안 하고 참았던 모든 행동이 후회됐다. 행여 방송에는 내가 보고 있는 다른 팬덤의 응원봉과 슬로건들만 가득해서, 내 가수의 팬은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됐다. 응원법이라도 목청껏 내질렀지만, 방송에 충분히 나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러한 무질서를 어느 것도 통제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녹화가 끔찍하게 싫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 만큼 가슴속에서는 화가 끓었다. 그대들을 위하는 마음 하나로 모든 불편과 긴 대기 시간을 감내했다. 그런데 그대들을 위한 응원의 마음을 타인으로 인해 방해받은 기분은 자꾸만 내 가슴속 화를 지폈다.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내는 가슴에, 후회와 원망이 재가 되어 남았다.
서른이 넘은 어른이지만, 아직도 그대들만 생각하면 마음은 애가 된다. 그대들이 최고였으면 좋겠고, 어느 누구보다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고 싶다. 그런 팬의 마음이 우지끈 두 동강 나버린 오늘,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원망의 소리를 내뱉기 바빴다. 그런 내 모습을 봤다면, 그대들은 “아니야, 괜찮아. 우리 다 들었어. 너네 있는 거 다 봤어. 그러니까 속상해하지 마. 너희가 최고야.” 그렇게 말해줬을 것만 같다. 나의 얕은 아량과 편협한 마음과 달리, 그대들은 언제나 늘 바다처럼 넓고 너그러웠으니까 말이다. 오늘의 무대에서 즐거워 보인 그대들의 모습을 보면, 어떠한 표식이 없었음에도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의 함성이 에너지가 되어 그대들의 귓가로 흘러들어, 가슴에 피어오르는 열정이 되었다고 믿고 싶다. 그대들 앞에만 서면, 어린애가 되어 질투와 욕심이 넘치는 이 어린 마음을 그대들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