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과 나의 스위치를 ON

by 다이안 Dyan

그대들과 나의 스위치를 ON

한동안 올라가지 않았던,

뽀얗게 먼지가 눈처럼 내려앉은,

어린 시절에는 뻔질나게 드나들고 오랜 시간을 보내던,

그런 나의 다락방에 올라가는 계단에 불이 켜졌다.


그렇게 천천히 다가간 계단 입구의 스위치에는 당신의 손자국이 하얀 눈밭의 발자국처럼 남아있다. 당신의 손자국 주변으로 살포시 쌓인 먼지를 한참 들여다본다. 그렇게 내 기억의 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던 다락방과의 추억에 젖어 든다. 그리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당신이 켠 스위치를 따라 올라선 다락방에 털썩 주저앉는다. 눈물이 그렁해졌다가 다시 또 피식, 슬며시 웃음 짓다가 한참을 그렇게 다락방과 시간을 보낸다. 다락방과의 시간을 곱씹으며 그렇게 또 추억 위에 감정을 덧댄다.



그대들이 말한 "ON"의 의미가 그랬다. 그리고 그대들이 정의한 의미대로, 말 그대로 나의 스위치가 켜졌다. 직장을 다니고, 업무를 쳐내고, 친구들을 만나 맛집을 가고 디저트를 놓고 수다를 떠는 그런 보통날을 보내던 나였다. 그런 나의 보통날에 당신들이 켠 스위치는 그동안 흐른 세월만큼 천천히, 그리고 은은하게 불빛을 흘려왔다.


불빛의 시작은 내가 사랑했던 당신들의 목소리로 부르던 그 한 곡, 한 곡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먼지 쌓인 나의 기억력을 되살리려 나의 모든 외출 길을 당신들의 목소리와 함께했다. 그동안 몇몇 곡은 생각날 때마다 찾아 듣곤 했지만 이렇게 당신들의 모든 노래를 다시 찾아 듣는 것은 참 오래간만이었다. 요즘의 노래와는 다른 대화 같은 가사와 전자음을 찾기 힘든 멜로디가 나의 익숙함을 깨웠다. 오랜 시간 함께한 익숙함은 일상의 갖은 자극으로부터 날카로워진 나의 불안정을 잠재우고 편안함을 줬다. '그래, 이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익숙한 그대들에게 다시 내 맘을 누인다.


그대들이 켠 스위치는 천천히, 은은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폭발, 분출과는 다르게 서서히 적셔 들어가는 것. 그것이 그대들의 매력이다. 그런 그대들의 스며듦에 익숙한 나는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 보면 열성적인 팬이 아닐 수 있다. 나의 오늘을 살아내기 바빴고, 나는 나 자신 하나도 온전히 감당하기 버거운 사람이었기에. 그대들을 만나기 1시간 전까지도 나는 미친 듯이 설레지 않았고, 잔뜩 흥분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평소에도 내 감정을 억누르고 빼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잔잔했던 탓일까. 그대들을 만난 그 순간 잔뜩 눌려서 납작해져 버린 그리움, 애틋함, 고마움, 그리고 사랑이 서로를 앞다투며 나오기 바빴다. 그렇게 울컥, 그대들을 만남과 동시에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줘 참지 않으면 마스크를 잔뜩 적셔버릴 것 같았기에.


그동안의 긴 기다림과 그리움을 다 보듬기에 당신들과 함께한 세 시간가량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들이 다시 날 적시기에는 충분했다. 보통날에 파묻혀 건조함의 흙먼지를 날려대기 일보 직전이던 그대들과의 추억은 오늘 맑은 하늘을 수혈받아 다시금 촉촉해졌다. 그대들을 열렬히 사랑했던 열 네 살 시절의 감성이 한 스푼, 그대들의 재잘거림에 즐거움이 한 스푼, 무대 위 그대들의 모습에 차오르는 동경심이 한 스푼, 그대들과 만든 지난날의 추억을 다시금 그대로 재현해냈다는 뿌듯함이 한 스푼, 그렇게 마른 추억에 감성이 한 스푼씩 더해지니, 내 추억의 땅은 어느새 한 줌 움켜쥐면 한 손 가득 물기가 남을 만큼 촉촉해져 있었다.



그대들의 또 다른 팬인 그녀는 말했다. 그대들은 언제나 맑은 하늘 같다고. 그 말에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은 언제나 내 곁에 항상 있다. 언제나 내 위에 떠 있으며 끝없이 펼쳐진 무한의 공간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바다처럼 파아란 하늘도, 시간 감각을 상실할 정도로 칙칙한 하늘도, 솜인형 같은 뭉게구름이 펼쳐진 하늘도. 그렇게 하늘은 수시로 변하지만, 하늘은 하늘이다. 매일 매시간을 찾게 되고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어쩌다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면 보이는 것. 극단적인 감정에 올려다보면 보이는 것. 하릴없이 드러누워 몽상을 떨며 보게되는 것. 그렇게 조용히 존재감을 비추는 것이 하늘이다. 내게는 그대들이 그렇다. 그대들은 하늘이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그대들의 방송을 모두 챙겨보지 않는다. 잦은 이직과 끝없는 탈락으로 나 자신을 한없이 구렁텅이로 몰아넣던 그 시기에, 늦게나마 그대들이 함께 걷는 모습을 보며 구렁텅이를 헤쳐나올 마음의 힘을 얻었다. 그대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그대들이 서로가 있음에 힘을 얻는 모습에서 나도 내 주변을 살피고 주변의 진심 어린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 이상 새로 나온 노래의 가사를 외우려 가사집을 펼쳐놓고 공부하지 않는다. 더 이상 나의 재생목록은 그대들의 역사로 꽉꽉 채워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대들의 멜로디가 나의 머릿속에 꽂히곤 한다. 일어나자마자 뜬금없이 그대들의 노래를 흥얼거린다거나, 퇴근길의 노을을 뒤로한 채 걷다가 문득 감성이 그대들의 노래와 잘 어울린다 생각한다거나… 그렇게 이유 없이 그대들은 날 찾아오곤 했다.



나의 모습은 예전 같지 않다. 그렇지만 어쩌다 하늘을 올려다보듯이 그대들을 찾곤 한다. 내가 기쁠 때, 더 이상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그렇게 당신들에게 스며든 지 오래인 나는 때때로 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렇게 그대들을 올려다보면, 그대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떠오를 때도 있고 그대들의 노랫말이 생각날 때도 있고 그렇게 내 생각은 점점 미소를 향해 다가간다. 그렇게 생각의 끝에는 살풋 웃음 짓게 된다. 그게 바로 그대들이다.


하늘이 항상 새파랗게 눈이 부실 수만은 없다. 그렇게 하늘은 변하기도 한다. 그대들의 삶도 그랬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하늘은 그렇게 돌고 돌아 맑은 하늘일 수 있으니까. 그대들의 세계에서 오랜 시간, 갖은 먹구름과 천둥, 번개를 만나며 지금까지 안녕히 그 자리를 지켜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언제나 맑은 하늘이 아니어도 좋다. 그렇게 그대들은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나의 하늘로 남아주면 된다.


그대들을 매일 올려다보지 않는다고 잊혀졌다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그대들은 잊힌 적이 없다. 이미 스며들어와 있기에, 그동안처럼 슬며시 다가와 그대들과 나의 스위치를 ON으로 돌려놓으면 된다. 지금의 ON도 늘 그랬듯이 서서히 OFF로 넘어갈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보통날 속에서 그대들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딸깍, 딸깍을 반복하며 나의 하늘인 그대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건강히, 무사히 계획한 바를 잘 끝내길 바라는,

지금까지 그랬듯 그대들의 안녕을 바라는,

수없이 많은 좌석 중 한 자리의 누군가이자

다시 우리 안녕을 나눌 날을 기다리는 팬이 고마움과 애정을 담아 한 글자씩 눌러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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