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절망에 빠져 우울의 끝까지 갔다가 그 우울함에 갇혀 생각 공장이 됐달까. 멈추고 싶어도 내 공장은 하염없이 돌아갔다. 열심히 살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타인의 눈에는 부족한 인간으로 비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너무 쉽게 얻으려 했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만든 자만은 더 깊은 절망을 선물했다. 자만은 내 눈을 가려 세상에 잘난 사람은 많고, 나는 그저 평균치라는 현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모두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삶을 향한다는 것도 잊게 했다. 내가 원하는 더 나은 삶을 다른 사람들도 원했다. 인간의 욕심은 모두 같다는 걸 망각하고 말았다.
나의 자만과 망각이 빠뜨린 이번 우울은 깊었다. 수영을 못하는 나를 2m가 넘는 풀장에 던져버린 것 같았다. 발은 닿지 않아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몸은 자꾸만 떠서 불안정한 상태. 그 불안정이 싫어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휘젓듯 움직여 보지만, 내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런 상태 말이다. 뭘 해야 이 몸을 고정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 깊고 푸른 우울한 풀장을 벗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이면 해야 하는 일들을 모두 미룬 채 미디어의 노예가 됐다. 눈이 뻑뻑하다 못해 시려서 눈물 즙이 날 지경이 되도록 세계의 드라마를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하면 그 순간은 나를 거부한 내 미래 계획을 잊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그렇지만 역시 그렇게 쉽게 벗어나게 해줄 리 없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시간에도 불현듯 “뭐가 부족했던 걸까”란 질문은 나의 뇌리를 스치고 또 스쳤다.
그렇게 우울한 풀장에서 허우적거렸다가 잠시 숨을 찾아 고개를 쭉 내밀다가의 반복인 일상이었다. 반복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찾았다. “아트북 페어”. 독립 서적도, 그림책도, 일러스트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다 담고 있는 단어였다. 그래서 이건 꼭 가야지, 오랜만에 혼자라도 가야지 싶었다. 그래서 전날 밤 잠들기 전, 부디 비가 안 오길 기도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비가 오면 나는 나와의 약속을 취소할 것이 분명했기에.
다행히도 눈을 뜨자 빗방울은 없고 살짝 후덥지근한 맑은 날씨였다. 하늘 저 끄트머리는 회색빛인 것 같기도 했지만.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하여 우산도 챙기고, 목마를 수도 있으니, 물도 조금 챙겨가고, 대출 연장 신청을 놓친 책도 빨리 읽어야 하니까 지하철에서 읽을 책도 챙기고. 그렇게 주섬주섬 챙기다 보니 흐물거리던 에코백의 모양이 갖춰졌다. 일기예보를 확인하고선 비가 온다는 16시 이전에 돌아와야지를 다짐했다. 낯선 인천의 길가를 돌고 돌아 그렇게 오늘의 목적지 아트북 페어에 도착했다. 공단, 테크노밸리 같기도 한 낯선 곳은 주말이라 그런지 텅텅 비었다. 사람의 흔적도 소리도 없는 곳이라 여기가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입구를 들어선 첫 소감은 이것은 살아있는 전시회였다. 북적북적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쉬지 않는 그런 곳 말이다. 시장통이라기엔 차분하고, 전시장이라기엔 적당한 소란스러움이 있었다.
걸음을 옮기며 빠르게 나의 눈길을 사로잡을 무언가를 찾는다. 독립출판 관련된 축제, 행사는 몇 번 가보았지만, 늘 부스를 방문할 때면 어설프다. 그래서 나의 레이더를 빠르게 작동시켜 내 관심사를,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이 있는지를 조금은 급하게 스캔한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설명을 해주는 부스에 감사하지만, 내가 지갑을 열지 않을 때는 어쩐지 더 미안하다. 그들도 그렇게 먼저 다가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만 같아서. 그렇게 미술관을 관람하듯 천천히 둘러보며 내 취향과 통하는 것들을 찾고, 신나게 돈을 썼다. 귀여운 그림의 엽서도, 한눈에 꽂혀버린 그림책도 그렇게 이미 무겁게 들고 온 에코백에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아직 제주도 여행에서 사 온 책들도 다 읽지 못했지만, ‘올해 안에는 읽겠지’라는 조금은 무책임한 마음으로 결국 다 사버렸다.
통장 잔액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전에, 비가 쏟아지기 전에 간신히 내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그렇게 다시 역으로 가는 길,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음이 가벼웠다. 그래, 이런 게 즐거움이었지. 단, 한 시간의 관람과 지출로 그동안 우울함에 가려졌던 내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 전시회의 무수한 작품들 속에서 보물 같은 작품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담아오는 것이 한때 내 즐거움이었는데…잊고 있었다. 가고 싶은 전시회나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훌렁훌렁 혼자 즐기고 신이 나서 돌아오던 나였다. 오랜만에 가진 나와의 한 시간이 그렇게 나를 풀장에서 끌어올렸다. 내 취향의 책과 그림이 튜브가 되어 빠져나오는 법을 가르쳐줬다. 우울의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몸은 좋아하는 차 한 잔, 치즈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그림책과 함께 말렸다. 그렇게 다시 뽀송한 몸이 됐다. 뽀송한 마음을 가지고 나는 다시 지난번의 넘지 못 한 벽을 마주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넘을 수 있다는 자신은 없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오늘의 나로 살면서, 내 취향으로 남은 인생을 채워나가는 두 번째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으니까. 둘 중 어떤 그림이든 나는 그리고 있을 테니까. 무엇이든 그려서 잘 말려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