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에게 전하는 말
"할아버지, 잘 되게 하늘에서 도와주세요." 최종 면접을 앞두었을 때 주문처럼 외던 말이었다. 종교가 없는 내가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을 찾는다 한들 생면부지의 도와달라는 부름에 답할 리 없으니까. 어디든 기도할 곳이 필요했던 나에겐 먼저 하늘에 가신 양가의 할아버지를 부르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기도란 행위 자체가 다소 비현실적인 상상을 부르는 주문임에도 말이다.
이렇게만 쓰면 할아버지들과의 추억이 깊은, 그래서 생전에 애정을 깊게 나눈 사이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안양의 도시인 친할아버지와 안성의 농부인 외할아버지와 내가 맺은 관계는 평균의 조부모와 손녀의 관계 정도였다. 그래도 같은 안양 사람이던 친할아버지는 비교적 자주 뵈었다. 가끔 집에 오실 때면 내 장래 희망을 물으시기도 했다. 수의대 진학을 꿈꾸던 손녀에게 꼭 후배가 되라며 꿈을 품은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하시던 꽤 다정하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반면에 농부인 외할아버지는 농사일이 전부인 무뚝뚝한, 조용한 그런 할아버지셨다. 안성 외갓집에 도착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찾아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 길을 어떻게 왔냐며, 우리 손주 왔냐며 포옹과 쓰다듬는 손길을 쉴 새 없이 건네며 반겨주시는 할머니. 그리고 말없이 끄덕끄덕 고갯짓으로 인사에 응해주시는 할아버지. 그렇게 할아버지는 왔냐는 한마디도 잘하시지 않는 과묵하신 분이었다. 요즘 말하는 MBTI를 할아버지께서 하셨다면, I가 90% 이상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극 I의 내성적인 낯가리는 손녀가 일 년에 네다섯 번 뵙는 할아버지와 만든 추억의 양을 책으로 치자면 얇은 홍보 책자 한 권쯤일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쌓은 추억이 정말 없다는 걸 깨달을 때는 할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졌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위암과 치매를 동시에 겪으셨다. 치매라는 병이 그렇듯이 할아버지의 기억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였다. 그리고 연례행사 중 하나였던, 할아버지의 생신에 여느 때와 같이 도착해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가을임에도 아직 쌀쌀한 시골집의 냉기도, 여전히 손주를 환하게 맞아주시는 할머니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외할아버지뿐이었다. 엄마가 할아버지께 동생과 나를 한 명씩 다시 말하며 기억의 여부를 물었을 때, 나에게는 할아버지의 끄덕임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젠 조용한 끄덕임조차 내게 남지 않았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기억에서 내가 제일 먼저 지워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사춘기 고등학생에겐 낙석과 같은 충격과 슬픔이었다.
낙석과 함께 내 머릿속은 요란해졌다. 어른들의 말씀대로 참하고 의젓한 집안의 맏이이자, 외갓집의 첫 번째 손주로 지내온 날이 후회됐다. 좀 더 남동생들처럼 작은삼촌의 심기를 건드려 집안을 시끄럽게 해 할아버지께 혼나기도 해 볼걸. 온갖 농기구와 집기구를 헤집어 놓으며 할아버지를 귀찮게 해 볼걸. 가까이 오지 말라며 토끼를 잡는 할아버지 곁을 맴돌며 청개구리처럼 굴어볼걸. 내 성격과 행동에 대한 후회가 가득 차올랐다. 생전에 남녀 차별과는 거리가 멀디먼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손자,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 기억에 영향을 줬을까라는 작은 의심도 피어올랐다.
나의 가슴 한편에 남은 바위 같은 후회와 의심을 당시에는 그저 내버려 둘 수밖에는 없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과 감정이 괜히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남은 것처럼 보일 것을 걱정했다. 그러다 최근에 사촌 동생과 옛날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쩌면 합리화일 수도, 어쩌면 과거 미화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방치해둔 나의 바위를 돌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 사촌 동생들과 놀다가 사고를 치면, 혼나던 건 늘 첫째인 내가 아닌 늘 장난꾸러기였던 남동생들이었다. 어쩌면 할아버지께선 그만큼 장녀이자 첫째인 손주를 보호해주신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하늘을 향해 먼저 걸어가신 후에는 엄마보다 내게 먼저 꿈에 인사하러 와주셨다. 특별한 꿈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손주 중 나의 꿈에 제일 먼저 찾아와 주신 것은 어쩌면 할아버지가 내민 사과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나마 기억해주지 못해 내가 속상해한 것을 하늘에서 전해 듣고 나오신 것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나는 가슴 한편의 서운함, 속상함으로 기억할 수도 있던 할아버지를 묵묵히 날 뒤에서 지켜주신 바위 같은 존재로 남기려고 한다. 그렇게 내가 힘들 때면 지친 마음을 잠시 기댈 수 있는 그런 나만의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전하고 싶다. 할아버지가 날 아껴준 것처럼,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위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나 역시 할아버지처럼 표현에는 서툴지만, 할아버지의 아내부터 이제 갓 태어난 증손녀까지 모두에게 그 사랑을 나누며 살겠다고. 아직은 바위가 아닌 반죽 덩어리라 전쟁 같은 사회생활에 상처받곤 하지만, 나도 곧 할아버지처럼 단단한 바위가 되겠다고. 할아버지는 농부였지만, 이젠 나에게 신이 되었다고. 하늘을 향하는 우체국이 있다면 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