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로누스

by 다이안 Dyan

패트로누스

“익스펙토 페트로눔” 행복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사방을 차갑게 만들며 인간의 영혼을 키스로 앗아가는 검은 두건의 괴물로부터 보호하는 마법 주문이다. 이 주문을 외우면, 신비로운 파란빛을 휘날리는 동물이 나와 주문의 주인공을 악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20대를 가뿐히 넘어 30대의 허들을 넘어가는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마법의 세계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는 주문이자 대목이다. 처음 책에서 주문을 보았을 때, 처음 영화에서 그 주문을 눈으로 보았을 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여전히 좋아하는 그 마법세계를 매년 한 번 이상 되새김질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내 패트로누스는 어떤 동물일까?”


패트로누스를 찾게 된 이유는 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나 자신이 얼마나 유약한 인간인지. 쿠크다스 멘탈, 유리멘탈, 개복치 같은 단어가 나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 단어인지. 남들과 다르게 별 것 아닌 말, 작은 행동에 이상하게 혼자 상처를 받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왜 이럴까'하며 타고난 예민함을 원망했다. 때로는 '내가 뭘 잘못해서 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향한 창날을 더욱 뾰족하게 갈고 갈았다. 마치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듯이, 내 자신을 원망하고 탓했다. '모두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면 다들 평화롭잖아.', '왜 너만 그래?'라고 세상이 말하는 것 같았다. 한없이 깊은 자기 비난의 늪에서 빛나는 창날을 갈고 또 갈았다. 그렇게 날을 갈아대면 창에 찔렸을 때 더 아프고 힘든 것은 나인 걸 알면서도, 마치 학습능력이 없는 무생물이 된 것처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렇게 날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을 악으로 칭했다. 그리고 다시는 아프기 싫어서 날 악으로부터 보호해줄 무언가를 원했다. 그 악이 개인이 행하는 것이든, 사회가 행하는 것이든 중요치 않았다. 그 피해의 대상이 중요했다. 바로 나 자신. 내가 그 악으로부터 다치고 싶지 않았다. 다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몰아세우다 포기하지 않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날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실재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울과 자기 비난의 늪에 빠질 때면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현실을 잊고 상상 속에서 살고자 했다. 그럴 때마다 화면 속의 마법세계에 빠지곤 했다. 그렇게 현실의 시간개념을 잊은 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나의 자기 비난과 절망 등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유약한 내 눈앞에서 주인공을 지켜내는 푸른빛의 수사슴의 모습은 날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만의 패트로누스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나를 지켜줄 상상의 동물의 모습을. 그렇게 어떠한 악도 물리칠 수 있는 큰 패트로누스가 날 힘들게 하는 모든 악으로부터 날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다. 다만, 머글인 주인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그렇게 마법세계에 무조건적인 나만의 경비병, 지원군이 있다고 믿으며 잠이 들었다. 내가 힘들 때면, 나도 모르게 주문을 외우고 그렇게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 위해 싸우고 있을 충성스러운 나의 패트로누스가 내가 행복을 잃지 않도록 해줄 것이고 생각하곤 했다.


물론 온라인에는 이미 나의 패트로누스 찾기라는 심리 테스트가 있다. 그 테스트에 따르면 나의 패트로누스는 Red Squirrel, 붉은 다람쥐였다. 내가 그린 패트로누스의 모습과는 다른 앙증맞은 모습에 실망했다. 내가 그린 나의 패트로누스의 모습은 기린이었다. 왜 기린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한 동물은 아니지만, 크고 나서 종종 좋아하는 동물이 뭐냐고 물으면 기린을 말하긴 했다. 내가 키가 작아서 그런지 키가 큰 기린이 좋았고, 알려진 울음소리가 없을 정도로 조용한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키가 크니 다른 동물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린은 누구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크지만, 초식동물이라 다른 동물을 해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그 긴 다리로 발차기를 하면 어떤 악령도 저 멀리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해하지 않으며, 묵묵히 날 지켜줄 수 있는 존재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람쥐 대신 기린을 내 패트로누스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세상의 악으로부터 날 지켜주는 구원의 모습을 혼자 상상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언젠가 나의 구원을 불러낼 수 있는 표식을 만들려 한다.

나의 마음속, 머릿속에 평화와 행복을 지켜줄 신비로운 푸른빛을 뽐내는 멋진 기린을.




기린을 만들 기 전, 이미 날 지키는 표식들이 있다.


나의 뒤에는 나를 살피는 달이 있고,

나의 양옆에는 나를 감싸 안아주는 나무가 있으며,

나의 다리 밑에는 차오르는 노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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