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이 역전되는 순간

by 다이안 Dyan

부모와 자식이 역전되는 순간

부모가 자식이 장성한 것을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손찌검을 거뜬히 가로막을 때?

용돈을 받던 취업 해서 자기 밥벌이를 하며, 아이에게 용돈을 받고 있을 때?

아니면 결혼해서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를 키워내고 있을 때?


그럼 반대로 자식이 부모가 작아졌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흰머리의 비율이 더 커진 머리를 볼 때? 어느 순간 나보다 작은 듯한 부모님의 뒷모습을 볼 때?


이런 순간을 당신도 느껴본 적이 있나?




최근 들어 나는 느끼고 있다. 더 이상 나의 부모님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크고, 위대하고, 올곧은 나무는 아니라는 것을. 모든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울타리가 되기엔, 이젠 헐거워진 나사와 여기저기 패인 구멍으로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해서도 부모님이라면 언제 무엇이든 물어봐도 다 답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부모님보다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져버렸다. 손가락을 조금 놀리면 직접 가지 않고 각종 서류를 떼고 신청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서류만 떼는 심부름쟁이가 아니다. 조금만 공부하면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픈 부동산, 금융의 행정 절차도 알아먹곤 한다. 정부의 지원금과 같은 각종 혜택도 이젠 내가 먼저 알아서 부모님께 챙겼냐고 묻고 있다. 각종 마트, 쇼핑몰의 할인 정보도 챙겨 내가 대신 주문해주기도 한다.


우상향 하던 부모님의 삶의 그래프는 이제 수평에 가까운 기울기가 되었고, 곧 내리막 길을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의 그래프는 그런 부모님의 그래프를 가볍게 스치며 그 위를 고무줄놀이라도 하듯이 들락날락하고 있다. 그렇게 점점 나는 세상물정에 밝아져 갈 때, 나이 든 부모님은 조금씩 세상물정 모르는 어두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부모님보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세상물정에 밝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최근 집안 재산 문제로 각종 세금 등의 문제를 나누던 자리였다. 당연히 모두가 알거라 생각했던 청약에 대한 내용을 우리 집 재무장관이라 칭했던 아빠께선 제대로 모르시더라. 내가 아는 것을 설명했지만, 어차피 집 안에서 돈에 관한 큰 일은 결국 우리 집 재무장관인 아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자기 고집과 뜻이 강한 예순 넘은 아빠와 싸우기 싫으니까, 그러려니 하는 흐린 눈과 적당한 백치로 백기를 들었다.

그 후에 그 결정이 내게 미친 영향은 그 고집스러운 재무장관의 설명과 달리 컸다. 정부에서 쥐어주는 모든 청년의 혜택을 뻥 차버린 꼴이 되고 나서야, 싸우기 싫어 회피한 내 선택이 결코 어른스럽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릴 때처럼 아빠의 말을 '어른의 말'이라 여기며 온전히 믿어버려선 안 됐다. 따져볼 것은 따져봤어야 했고, 일할 때만큼 꼼꼼하게 요목조목 살펴봤어야 했다. 더 이상 아빠라고 금융, 경제, 세금 모든 것에 빠삭한 것이 아니었구나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미 서러워도 억울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더 이상 감정에 휘말려있기엔 내 나이도 30대, 현실적인 전략과 대안이 더 급한 시점이었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듣도 보도 못한 부동산과 세금의 세계를 알아보고 있지만 여전히 외계어 같은 것은 여전하다. 그래, 한편으로는 나도 이렇게 어렵다고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나보다 나이가 2배 가까이 많은 부모님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겠지 싶다. 재산, 자산 무튼 그런 것들의 가치에 타이밍도 중요한 요소니까 한 순간 자신들의 선택으로 그 가치가 좌지우지되는 것은 무서운 결정이긴 하니까. 그렇게 내게는 너무 가혹하고 억울해져 버린 선택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다. 그치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어른이”라서 그 끝은 다시 욱-하고 분노가 올라온다.



그들도 부모이기 전에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그동안은 저 깊은 곳에 묻혀 있어서 알 수 없었다. 마치 공사장에서 땅을 파내다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발견된 유물처럼, 세월이 흐르며 표면에 모습을 드러낸 그 사실을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따뜻하게 쓰다듬어주기라도 해야 하나. 그저 덤덤히 바라만 봐도 되는 걸까. 아니면 안쓰러움의 눈물이라도 적셔주어야 하는 걸까.


더 이상 나의 부모가 세상으로부터 날 완벽하게 지켜줄 울타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해가 지날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흐린 연필이었다가, 이제는 볼펜, 네임펜으로 한 겹씩 더 쓰여 또렷해졌다.

'부모도 사람이다', '부모도 부모 역할은 처음이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논리적으로는 명확한듯한 이 문장 구조들이 내 마음속에선 한 글자씩 찢어져 붕붕 날아다닌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안정을 찾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부모와 나의 위치가 역전되는 이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받아들이기 싫다. 내게 다시 사춘기라도 와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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