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청년칼럼 2023. 03. 07.
30살. 계약직이 종료되며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됐다. 추가 연장 또는 퇴직 후 재계약이라는 편법도 없던 시절이라 구직 사이트에 숱한 이력서를 보내며 한동안을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여자 신입 이력서 제출 가능 나이가 28살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페이지를 보며 기로에 섰다. 취직이 가능한 회사를 찾을 것인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날 것인가.
2015년. 동명동 한 주택가에 독립서점 겸 독립출판사를 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반 타의적으로 후자를 택한 셈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어떤 원대한 계획과 의미를 가지고 시작하게 됐냐는 질문을 종종 받을 때마다 ‘딱히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는 말을 부러 붙이지만 2023년 현재까지도 소위 서점 주인으로서 ‘버티는 삶’을 잘 영위하는 중이다.
독립서점은 2010년 초반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며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광주는 2015년을 기점으로 여러 곳의 서점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플랫폼 ‘동네서점’이 발표한 ‘2022년 동네서점 트렌드’에 따르면 2021년 대비 전국의 독립서점은 70곳(9.4%)이 늘어 815곳에 달하며, 광주는 현재 18곳의 독립서점이 운영되고 있다. 광역시 단위 중에서는 하위 순위에 속하며 전년 대비 증가폭이 1곳에 그친다는 한계도 분명 존재하지만, 열악한 운영 환경을 여실하게 느끼는 당사자로서는 함께하고 있는 서점 숫자에 조용히 박수를 보낼 뿐이다.
대형서점과 달리 독립서점은 오롯이 운영자의 취향으로 운영되는 개인 영업장에 속한다. 독립출판물만을 다루기도 하고, 특정 분야 혹은 특정 테마를 가지고 소규모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종합서점과 구분할 수 있겠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공간에 따라 음료를 함께 판매하거나, 출판사를 겸하거나, 북스테이(서점에서 숙박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운영방식)를 갖추거나, 지원사업을 받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중소서점이 몰락해가고 있는 시대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이 독립적인 서점은 여전히 기성 시스템에서 비주류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주류 서점의 주요 고객은 이른바 MZ세대라고 지칭되는 20, 30대가 주도적이다. 그렇다면 유난히 청년 세대가 비주류 경계에 있는 이 문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립서점은 번거롭다. 대형서점만큼 접근성이 좋지도 못하고,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10%의 할인율도 없다. 익일 택배와 무료 반품이 가능한 대기업의 쾌적함에 비할 수 없고, 유동적인 운영시간을 여러 번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과 취향에 맞는 책을 찾지 못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럼에도 그들이 독립서점을 찾는 이유는 가치 중심적인 소비를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번거로운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세대는 먼 미래가 아닌 보다 가까운 현실에서 자기만의 가치를 찾아 나선다. 그것은 큰 고민과 계획이 없다기보다 선택권이 부족한 삶에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오롯이 잘 버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해력이 떨어지고, 조직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꼴에 꼰대짓까지 하는 이미지로 희화화되고 있으나 이것은 비단 MZ세대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몇 가지 이미지로 세대를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어느 시대이건 사회 변화에 기반한 다른 모습의 세대가 출현하기 마련이다.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것으로 지금의 청년세대가 문제만을 내포하고 있다고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바라보는 것이 옳다.
기성서점의 시스템과 독립서점의 시스템은 다르다. 그리고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청년세대의 가치관 역시 다르다. 상대방의 ‘틀림’이 아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삶은 다양성으로 빛나고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잘 버티는 모든 세대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