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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종모종 Jul 31. 2023

불필요한 주목입니다만

무등일보 청년칼럼 2023. 07. 04.

대한민국은 축제의 도시다. 어떤 시각에서 보자면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관련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면에서 분명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도서 관련한 행사도 전국 곳곳에서 각자의 색깔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매력적인 행사들이 많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꼽아보자면 1954년을 시작으로 70년 동안 도서전을 이어온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서울국제도서전’과 2009년에 시작해 올해 15회를 맞은 유어마인드의 아트북 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 그리고 2013년에 스토리지북앤필름을 필두로 시작된 독립출판 페어 ‘퍼블리셔스 테이블’까지. 지금 도서 시장의 주요 화제가 무엇인지, 추세는 어떠한지, 소비자들이 주목하는 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주목할 만한 행사들이다.


그리고 국내 최대 책 축제라 일컫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지난 6월 14일 개막했다. 18일까지 5일간 36개국 530여 곳이 참여했으며, 다녀간 관람객만 13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잘 건너 다시금 현장에서 마주하는 행사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성황리에 진행되었으나,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또 다른 이유로 강렬하게 주목받으며 시작되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시행에 일조한 오정희 작가의 홍보대사 위촉에 반발하며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여러 문화예술단체가 행사장 방문을 시도 했다가 대통령경호법을 이유로 입장을 제지당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건희 여사는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송경동 시인은 개막식에서 끌려 나가는 사진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도서전은 ‘책’보다 먼저 ‘정치’로 주목받았다.


관련해서 비판이 쏟아지자 오정희 작가가 홍보대사직을 자진해서 사퇴했지만 사람들은 문화에 정치가 얼룩지는 상황을 이미 보았고,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낯설지 않다. 앞서 언급된 ‘블랙리스트’도 그러했고, 최근 불법 도로 점거를 핑계로 시장이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나선 ‘대구퀴어문화축제’도 그러하다. 비극적이고 불편한 사건들은 보통 유야무야 흐지부지되기 일쑤이며, 진정성 있는 사과나 뚜렷한 방지 대책이 세워지지 않은 채로 시간만 끌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길 기다린다. 이번에도 역시나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안일한 태도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중이다.


공권력은 국민의 동의가 있을 때 정당성과 권위를 갖는다. 서로 공존하기 위함이 아닌 어느 한쪽 또는 개인에 의해 남용되는 일방적인 공권력은 그때부터 폭력이 된다. 그저 책이 좋아서 온 수많은 관람객에게, 기대와 애정을 담아 열심히 준비했을 출판노동자에게 전혀 배려가 없었던 행사 운영이었던 것만큼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모두가 마음 놓고 온전히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불필요한 공권력은 적당히 빠져줄 필요가 있다.


본의 아니게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으로 생태 위기의 지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제전시에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고 마주해야만 하는, 인간이 미처 알지 못했던 불편한 현실과 현상들을 우리 손으로 직접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고 밝히며 대한출판문화협회는 ‘과연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묻고 있다.(출처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sibf.or.kr)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겠지만 묘하게 아이러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연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어딘가에서 부당한 이유로 끌려 나갈 누군가가 바로 우리가 되지는 않을까?



무등일보 청년칼럼 2023.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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