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청년칼럼 2023. 10. 24.
‘안상수’에 대한 기억은 2011년도로 올라간다. (물론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한글 프로그램 폰트를 이것저것 클릭하다 만났던 ‘안상수체’일 것이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도슨트(docent.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일반 관람객들에게 작품, 작가 그리고 각 시대 미술의 흐름 따위를 설명하여 주는 사람) 활동을 하던 20대의 끝자락이었을 테다. 여느 날처럼 인포데스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중이었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젊은 대학생 무리와 함께 입구로 들어섰다. 대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지긋한 어르신이 가까이 다가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도슨트를 붙여줄 수 있느냐 물었다. 당시 정해진 시간 외에는 사전예약이 필수였던 터라 정해진 매뉴얼을 내놓았다, 죄송하지만 예약되지 않아 힘들 것 같다고. 큰 동요 없이 아주 점잖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을 보며 누군가 속삭였다.
안상수 디자이너 아니야?
뒤늦게 알아챈 관계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급하게 도슨트를 붙여 전시장으로 떠났다. 그렇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타이포 디자이너이자, 당시 디자인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홀연히 사라진 입구에서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정말 멋진 분이구나. 특별대우를 바라는 기색도, 거절에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는 유명 인사라니. 그 기억은 30대를 지나 4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지난 10월 9일 ‘안상수’를 다시 만났다. 제377돌 한글날을 맞아 광주 강연에 초청된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위아래가 붙은 한 벌짜리 점프수트와 빨간 모자 차림이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그는 여전히 점잖고, 훨씬 유연하고 유머러스했다. 한글에 대한 애정 넘치는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던 그가 말했다, 직업적인 디자이너로 살아가다 마흔에 한글의 그래픽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고. 그때부터 진정한 디자이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나는 또다시 멍해졌다. 마흔. 마흔이라니.
여러 기준이 있으나 보통 ‘청년’이란 19세 이상 39세 이하를 말한다. 그리고 40대는 중년, 5~60대는 장년을 지칭한다. 물론 사회 정책상 필요에 의해 구분되는 기준이겠으나 가끔씩 이상한 오기가 발동하기도 한다. (주민등록증 발급 기점으로 술·담배의 허용 여부가 판가름 되는 미성년자 시절에 만 몇 세의 기준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고 거칠게 외치던 시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회적인 약속임을 깊이 인지하고 있다) 디자이너의 전성기는 감각과 경험이 폭발하는 30대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기도 하고, 스스로도 40대에 들어서며 체력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퇴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위기감이 느껴질 때도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일흔을 앞둔 그의 에너지 넘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이제 막 마흔에 들어온 한낱 디자이너 주제에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묘하게 든든해졌다. 그렇게 ‘안상수’는 다시금 강렬한 기억이 되었다.
‘청년’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자신을 선생님, 교수님이라는 호칭 대신 그냥 ‘날개’라고 불러주라며 소탈하게 웃는 그에게 ‘청년’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청년’이란 ‘안상수’라는 정의가 추가되었다. 나의 마흔에는 어떤 새로운 세계가 열릴까. 제 2의 전성기를, 제 3의 전성기를 맞이할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