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머물러있거나 미래를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 이로부터는 많은 고통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문제'라고 규명한 어떤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예를 들어 그것은 관계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돈에 대한 문제, 생사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 없다. 해결이란 자유를 의미하고 삶이 더 윤택해 질 수 있는 발판을 의미할 테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결되기 전까지 고통 속에서 현재를 소모한다. 나는 이 고통의 타당성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여기에 있어서는 재밌는 사실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한다.
'이 문제가 나를 고통스럽게 해.'
'이거 때문에 죽을 것 같아!'
사실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고통받을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보통 이 문제가 스스로에게 고통을 준다고 믿을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믿음이란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어떠한 문제가 나에게 고통을 준다고 믿는 순간 나는 그 고통과 하나가 된다. 정말 웃긴 사실은 괴로워하든 그렇지 아니하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1획의 변함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간다. 해결되면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또다시 다른 일이 터졌을 때에도 똑같이 살아간다. 그러니 현재가 끊임없이 고통스럽고 쉼 없이 살아가며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현재는 없어지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만 잡으며 살아간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카르페디엠! 우리는 현재를 잡아야 한다. 어떠한 문제에 있어서 이 문제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게 되면 눈앞에 있는 문제는 그저 해결해야 할 대상이 될 뿐이지, 내가 현재의 감정을 소모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현재에 나에게 있는 것이 보인다. 작지만 생활할 수 있는 돈이 보일 수도 있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보일 수도 있고, 각자마다 주어진 것이 보일 것이다.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신의 기준,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서 주어지기 전까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누군가는 문제에 에너지를 빼앗겨 관계에 소홀해지고 문제가 생긴다. 또 누군가는 돈에 대한 걱정에 시달려 통잔 잔고를 볼 때마다 분노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의 만족에 우리의 힘을 기울여도 시원찮을 판에 과거와 미래에 에너지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사는 것이 타당할까?
사실은 이것은 스스로의 판단이다. 나는 이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판단 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자신이 살아온 것에 대해 공격받는 것을 싫어한다. 이 글을 읽는다면 모두 카르페디엠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