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한다
나는 공포 소설을 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환상 소설이지만 저변에는 공포가 깔려있다. 그런데 참으로 인기가 없다. 그냥 몸소 체험될 정도로 공포 장르 자체가 인기가 없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단순한 이치인데 공포의 등급이 매우 올라간데다 미디어가 너무 발달을 많이 했다.
고전 공포 소설을 읽어보면 "열린 유리창으로 차갑고 희뿌연 바람이 얼굴을 타고 지나갔다"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옛날에는 미디어는커녕 조명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어두운 밤에 집에 혼자 있거나 길을 걷는 것 자체가 공포였을 것이다. 그러니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면(특히 여름) "귀신인가!"라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한여름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찬 바람을 일부러 만들어 내는 시대인데 귀신 타령에 콧방귀나 뀔까.
게다가 미디어의 발달은 또 어떤가? 유튜브에서 공포 영화, 공포, 무서운 영화, 공포 게임 같은 단어만 검색해도 수두룩하게 영상이 나오는데 누가 밋밋한 소설 속에서 공포를 찾으려고 할까.
결국, 장르도 시대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요즘의 소설 트렌드는 소비, 감성, 공유가 강한 것 같다. 격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아픔도 보듬어 줘야 하고, 서로 감정을 교류하고 웃거나 울어야 한다.
적어도 공포는 위 세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스트레스 정도는 풀 수 있지 않나? 하겠지만 "저는 공포물을 쓰는데요?"라고 하면 "무서운 거? 난 무서운 거 싫은데... 로맨스 같은 거 안 쓰나?"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그런데도 굳이 공포 소설을 계속 쓰는 이유가 있다. 어릴 적부터 공포를 좋아했고 여전히 공포물을 사랑한다. 공포물은 로맨스도 넣을 수 없고 드라마도 넣을 수 없고 액션도 넣을 수 없다. 그냥 공포가 장르 자체다. 어쩌면 이런저런 생각 할 필요 없이 한 가지 생각만 할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공포물 좀 써볼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글쎄... 모르겠다. 그냥 말리고 싶다. 이제 공포물은 성공하기 힘든 공식인 건 맞다. 아니면 공포를 무지하게 사랑하거나.
나는 비주류만 쫓는 마조히스트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어 쓰고 있지만 지금 글을 쓰려고 하는 분들이라면 성공 공식에 근접한 글을 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