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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렝땅 Dec 08. 2022

소설을 쓰는 건 마케팅과 같다

주인공을 통해 물건 팔기

난 소설을 쓸 때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쓴다. '쓰다 보면 물 흐르듯 이어지겠지.' 이게 내가 소설을 쓰는 방법이다. 그래서 시작점(주제)은 있지만 끝점(엔딩)이 없다.


보통 소설을 인생에 빗대 표현하는데 나는 마케팅에 빗대 표현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조금은 생뚱맞고 엉뚱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케팅은 사업이나 광고 이런데 필요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거다.

맞다. 나는 소설을 '작가가 캐릭터를 통해 소설 속 다른 사람과 환경에 물건을 파는 행위'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팔아야 할 때 마케팅 조사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조사를 하고 고민을 하고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결국 시장에 나가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어느 정도 근접하게 유추를 할 뿐이지 100% 내 생각되로 되는 건 없다. 이는 소설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대로 나는 엔딩을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쓴다. 내 물건(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팔릴지(전개) 나는 모른다. 시장에 나가봐야(글을 써봐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소량으로 판매(아이디어 초안)를 한다. 쓰다 보면 술술 써진다(잘 팔린다). 아무리 고민해도 써지지 않는다(안 팔린다).


잘 팔리는 물건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니까 속도를 내서 더 많이 판다. 즉, 더 많이 쓰고 한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쓴다.

반대로 안 팔리는 물건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좋은 제품으로 연구해서 팔거나 폐기해야 한다. 지지부진 써지지 않는 글은 잠시 서랍에 넣어두고 고민하거나 가차 없이 폐기한다.


단편 쓰면서도 이런 고민을 하나? 싶겠지만 글이 짧고 길고는 중요하지 않다. 단 몇 줄로 모든 영감을 끄집어내는 시를 보자. 만약 글 양을 고민의 척도로 삼는다면 시는 아무나 쓰는 글이 될 것이다. 오히려 나처럼 특정 장르를 고집해서 쓰는 사람이 글의 양이 많더라도 그 척도가 얕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세상에 나가기 이전, 작가와 주인공 사이의 계약이다. 내가 주인공에게 "이 글이 잘 팔리게 해줄게"라고 유혹해서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이 "무슨 회사가 제품을 만들어 놓고 마케팅을 안 하는 거야?"라고 불평하게 만들어 놔서는 안 된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폐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폐기하는 과정 또한 마케팅의 일환이다. 적어도 내 소설 속 주인공에게 "이렇게 했는데도 잘되지 않았네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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