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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ius Apr 15. 2024

바쁜 엄마는 죄인이다.

Busy working moms are careless.

미국에서 나의 두 번째 석사를 받고 졸업할 무렵 첫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아이에게 말한다.


"아들, 너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인처럼 영어 할 수 있어."


물론 사실은 아니다. 미국사람들도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배우고 같이 대화하며 노력했기 때문에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아이에게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가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런 말을 해주면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되어 '정말?' 하면서 열심히 영어 공부를 같이 하곤 했다.


매일 늦게 퇴근하고 저녁에 아이들의 숙제와, 학습지를 봐주다 보면 벌써 씻기고 재워야 할 시간이다. 학기가 시작하고 방과 후 활동으로 영어와 수학,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로봇제작이나 음악줄넘기등도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나의 퇴근 후 육아 출근 시간은 더 정신 없어졌다. 한 번은 방과 후 수학교실 숙제를 같이 하고 있었다. 영어숙제는 없냐고 묻자 큰 아이가,


"엄마, 선생님이 나는 숙제 안 해도 된데."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왜 안 해?"

"나도 몰라."


문자들을 다 찾아보니 항상 숙제에 대한 공지를 선생님은 해주고 계셨던 것인데 바쁜 일정 속에서 내가 읽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었다. 방과 후 영어숙제가 쓰기, 말하기, 읽기 등 매주 두 번씩 다양했는데 아이가 계속 숙제를 해오지 않자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그냥 안 해도 괜찮다고 하신 것 같다. 워크북등 책값은 어차피 부모가 내는 것이니 내 아이의 실력이 늘지 않으면 아이만 손해인 것이다. 공부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같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렇게 방과 영어도 숙제가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닫고 밀린 숙제를 아이들과 같이 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기억력이 뛰어난 편이다. 한번 기억하면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스펠링은 아직 서투르지만 그 단어와 뜻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숙제는 안 했지만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들은 스쳐 지나가도 기억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소홀해서 아이의 실력을 더 못 키우고 있었구나.'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유치원에 다닐 때 영어를 배웠던 둘째는 비교적 금방 숙제를 끝냈다. 하지만 한글이 비교적 느렸던 큰 아이는 영어를 늦게 시작했고 나는 큰 아이가 9살이 될 때까지 영어를 아이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나와서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잘하니 아이들은 영어는 문제없겠다며 사람들은 부러워했지만 사실 큰 아이는 9살 때 까지도 ABC 조차 쓸 줄 몰랐다. 모국어인 한국어를 잘해야 제2의 외국어든 제3의 외국어든 배웠을 때 완벽한 bilingual, trilingual (이중, 삼중 언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9살 때까지만 해도 영어에 대한 적대심이 심해서 내가 영어로 몇 마디만 던져도 나에게 돌아오는 아이의 퉁명스러운 목소리.


"엄마, 영어 쓰지 마세요."


먼저 영어가 왜 싫은지부터 알아야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보다 동생이 더 영어를 잘하는 게 속상했던 큰 아이는 지레 겁먹고 벌써부터 영포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야, 너도 영어 할 수 있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영어가 재밌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짧은 영어 동화책을 자기 전에 아이들을 모아 놓고 열심히 읽어주었다. 발연기의 대가인 나도 어느새 아이들 앞에서 성우가 되어 캐릭터마다 목소리를 바꿔가며 연기를 하고 있었다.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영어 단어 말하기 게임등 다양하게 놀이도 이용했다. 저녁 8시 퇴근. I인 나는 빨리 애들 학습지와 숙제를 봐주고 씻기고 재운 후 이불속으로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하나하나 더 꼼꼼히 봐주고 마주 보고 앉아서 같이 공부하듯이 아이들 한 명 한 명 옆에 있어주었다. 같이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는지 단어 하나하나 쓰는 내내 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말하며 쓰고 있었다. 발음도 여러 번 시키니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갈망했던 칭찬. 우리 아이들에게는 원 없이 해주고 싶다.  10살이 된 지금, 큰 아이는 이제야 알파벳을 익히고 내가 가끔 던지는 말에도 대답한다.


"Son, could you bring me your backpack? I need to check your homework today."

(아들, 오늘 숙제 좀 체크하게 책가방 좀 가져올래?)

"He is my cousin."

(그는 내 사촌입니다.)


???


엉뚱한 대답이라도 이제는 '영어 하지 마세요'가 아닌 내가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한 아이로 바뀌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물어보는 아이로 바뀌었다. 밤 11시. 보통 잠드는 시간보다 1시간이나 지난 늦은 시각까지 공부를 하고 지쳤을 법한데도 큰 아이는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영어가 좋아! 엄마처럼 영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할래!"


그래, 바쁜 워킹맘이라고 다 죄인은 아니다.


주말에도 아이들과 현미경에 대한  과학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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