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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Mar 13. 2023

항공점퍼

그는 2·30대가 많이 입고 다니는 카키색 알파 인더스트리 항공점퍼를 입고 있었지만. 오버핏으로. 그러나 전혀 멋스럽지 않았다. 그 남자는 13층 사무실 앞 복도에서 거의 30분 동안 서성였다. 복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뒷짐을 지고 노인과 같은 특유의 굽은 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그의 점퍼는 풍채가 좋았을 때 핏하게 입었던 것으로, 이제는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몸을, 어쨌든 무언가로 가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복도를 서성이며 사람이 나오기까지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불러내었다. 예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항공점퍼는 옛 동료와 휴게실에 마주 앉아 그 전과 비슷한 태도로 시시한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전 같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기엔 항공점퍼의 현실이 너무나 누추했다.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동료는 엉망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 앞에서 실없이 웃기 힘들었다. 예전과 같이 우스개 소리를 하다가 다시 일 이야기로 넘어가는 순간은 없었다. 더 이상 항공점퍼에게서 얻을 수 있는 업계의 새로운 사실은 없었다. 동료가 항공점퍼에게 업계의 새 소식을 알린다 하더라도 그에게 그것이 도움 되지 않았다.


그의 용건은 사고가 나기 이전 자신이 쓰던 노트북을 찾는 것이었다. 사실 사무실에 있던 사람 중 하나는 화장실에 오가며 배회하는 항공점퍼와 몇 번이고 마주쳤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겨우 1년 만이었는데도 말이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그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왔을 때에야 비로소 항공점퍼가 강우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모든 사람을 남겨두고 홀로, 시간의 저 앞으로 튕겨나간 사람 같았다. 시골길의 늦은 밤하늘을 연상시키던 어두운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고 얇아져있었다. 때문에 오른쪽 뇌를 밖으로 꺼내보았던 메스자국이 훤하게 보였다. 그의 왼쪽 얼굴은 완전히 찌그러져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힘겹게 얼굴을 구기며 윙크를 시도하고자 하는 노인과 아이의 얼굴이- 묘하게 뒤섞여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잘못한 건 아니었으나 동료들은 그를 불편하게 바라보았다. 안쓰럽게 대하자니 그가 더욱 위축될 것 같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자니 일부러 그를 배려하는 것 같아 그마저도 그를 서글프게 할 것 같았다.


그는 직원들이 자신의 노트북의 행방을 찾는 동안에 접견실에 앉아있었다. 사무실 집기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 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아니 미리 전화라도 하고 와야 될 거 아냐. 1년이나 넘은 노트북을 갑자기 찾아와서 내놓으라고 하면 그게 갑자기 생겨? 그래놓고 저기 또 앉아서 기다릴 건 뭐야. 그게 언제 찾아질 줄 알고.


 아까 저한테는 자기 자리는 어디 있냐고 묻던데요. 진짜 어떻게 됐나 봐. 자기 자리가 지금 여기에 왜 있어.


강우와 일면식이 있는 한 직원도 그들의 대화에 끼었다. 강우와 인사 정도 하고 지냈던 그를, 그러나 강우는 보고도 알은척하지 않았다. 그는 강우에게 말을 건넬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처한 마음이 다른 이들과 같았다.


 인지능력엔 문제없는 것 같아요? 기억력은요? 사실은 복도에서 봤는데 전혀 못 알아봤어요. 목소리도 완전히 달라졌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그 말에는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집기를 담당하는 직원이 신입사원의 옆을 툭툭 치며 말했다.


 너희들도 조심하지 않으면 저 지경이 되는 거야. 물론 저 친구는 음주였지만. 음주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될는지 몰라. 저렇게 되는 데 5분이나 걸렸겠어. 5분이 뭐야. 2분도 안 걸렸을 거야.



항공점퍼는 그가 처음에 전활 걸었던 직원과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어떤 사람은 그의 비틀어진 입에서 음식이 흐르지는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아까 그를 알은척하던 목소리들은 이제 그가 다시 돌아와도 아무 말이 없었다. 강우가 집기를 담당하는 직원 자리 옆으로 가서 섰다. 그녀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강우에게 물었다.


 강우 씨, 왜요. 뭐가 더 남았어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지금 저 가라는 거죠?


 아니, 아니. 아이고 왜 그래. 가라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업무 중이니까.


 예. 다 나아서 뵙자고요.


 그래. 얼른 더 나아서······.

 

 예. 다 나아서 또 술 한잔 야죠.


 죽다가 산 거잖아. 제2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예. 두 번째 인생이죠. 두 번째 인생이니까 이제 제대로 마시고 놀아보게요.


 말을 해도 참.


직원들은 그들의 대화가 얼른 끝났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가 나가려 문을 열자 모두가 크게 인사했다. 그제야 항공점퍼가 모두를 하나씩 바라보았다. 왼쪽 눈동자가 오른쪽 눈동자를 따라오는 게 버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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