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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Mar 24. 2023

육개장 사발면과 행복한 기억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10살이 되던 해에 엄마에게 받았던 칭찬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릴 때 잘 먹지를 않았다. 먹고 싶어 하는 음식도 딱히 없고, 밥 한 공기를 먹으려면 두 시간씩 씨름을 해야 했으니, 키도 작았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도 엄마가 계란찜에 밥을 김치 이파리로 싸서 먹여주었던 게 떠오른다. 내게 밥을 다 먹이며 그 시간을, 엄마는 드라마를 보며 기다려주었다.


나는 아직도 육개장 사발면을 좋아한다. 가끔 먹고, 그 뚜껑의 이미지를 보면 내 어린 날의 엄마가 생각난다. 그날에 엄마는 욕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바닥솔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주방에 혼자 있는 나에게 육개장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다시 청소했다. 그날이 처음으로 내가 육개장 사발면 하나를 다 비운 날이었다. 나는 비어있는 사발면 용기를 뒤집어쓰고 엄마에게 다가가 놀라게 했다. 엄마는 빈 사발면을 보고는 나를 껴안고 몇 번이나 뽀뽀해 주었다. 엄마의 웃는 주름이, 내 반달눈이 그렇게 기억 속에 멈추어있다.


엄마가 해준 밥을 못 먹은 지 오래되었다. 20년은 된 것 같다. 얼마 전, 엄마는 나에게 요리책을 사다 달라고 했다. 요양원에 누워있지만 요리하는 법은 떠올려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나를 위해 요리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어제는 엄마의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어져서 엄마에게 전활 걸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소고기를 먼저 볶으라고 했다. 야채를 씻고, 썰고, 볶고, 물을 넣는 것까지. 엄마는 아이와 같은 어눌한 말투로 자세히 설명했다. 나는 냄비를 꺼내 그것을 그대로 해본다.


내 어린 날의 엄마가 해준 음식들을- 보다 성실히 먹었다면, 그 찌개들을, 국물을, 조금 더 먹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자라 있을까.


내가 만든 순두부찌개에선, 엄마의 맛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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