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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Sep 08. 2023

Ma GrandMa.

내 안의 할머니 할머니 안의 나

Ma GrandMa.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내 할아버지는 100 살이고 할머니는 98 살이다. 아니 97 살이었나. 

어쨌든. 어쨌든 그들은 너무 늙었다.


나는 남들 앞에서 그들이 그렇게 나이가 많다는 것을 뽐내며, -근데 너무 오래 사는 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요즘 그들을 매주 찾아가면서도, 정작 궁금한, -할아버지, 그렇게 오래 살면 기분이 어때?-하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 어쩐지 너무 매너 없는 문장인 것 같아서. 대신에 샷시의 그림자가 이쪽에서- 저 쪽에 닿아 길어질 때까지 그저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조금만 앓는 소리는 내어도 응급실에 데리고 가려 꾸역꾸역 옷을 입히고, 자식들은 그게 더 엄마를 고생시키는 거라고 겨우겨우 또 말리고. 그저 늙은 것뿐이라며 설득을 하고, 다시 주저앉히고. 

지겹도록 그 긴 시간을 같이 살았으면서도 여직까지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하고, 벌써부터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굴고. 내 보기에, 그 모든 게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요즘 들어 꾸준하게 그들을 찾는 이유는 이제 할머니가 언제 돌아갈지 모르게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치매는 있어도 정정했는데. 어느 날 밤 국수를 먹고 체한 이후 급속도로 기력이 쇠했다. 이후로 토요일마다 엄마가 누워있는 요양원에 갔다가 할머니가 누워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감사히도 난 여전히 어딘가에 고용되어 있으므로 평일엔 회사엘 오간다. 피곤하다. 피곤이 거의 나를 완전히 집어삼킬 것 같은 토요일 오전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한 세기를 사는 동안 내게 뭘 줬는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게 준 게 없다. 물론 그들은 내게 생명을 물려주었지만, 지금 나는 '돈'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산' 같은 것. 


/

사촌 언니 두 명은 번갈아가면서 한 주에 이틀씩, 혹은 삼일씩 할아버지 집으로 와서 할머니를 씻긴다. 방 청소도 하고 반찬도 좀 해놓고 화분에 물도 준다. 할아버지 집에서 나던 극심한 지린내 때문에, 나는 1년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언니들이 자주 다녀가기 시작하고부터는 할아버지 집에서도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난다. 언니들은 재산을 꽤 받았다. 


할머니는 요즘 날 알아보지 못한다.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를 보고 웃고, 날 만지고, 30초에 한 번씩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매주 토요일, 할아버지 집에 네 시간씩 머무르면서 -응. 밥 먹었어. 할머니. 먹었다고.-하는 대답을 적어도 389번 이상 한다. 할머니는 밥을 먹었는지의 여부로 안위를 살피는 것이다. 나는 그 질문을 통해 할머니가 본능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는 거실 식탁에서 자기 막내아들, 그러니까 내 아빠와 마주 앉아 아직까지도 꽤 뚜렷한 그 목소리로 말한다. -노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거 그 여자. 센타에서 나오는.- -요양보호사요 아버지.- -그래. 요양보호사. 얘, 하루 종일 장갑을 끼고 원, 느이 어멈을 끝까지 장갑을 끼고 만져. 맨손으로 만지기 싫것지. 노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할아버지에 치매가 없어도 그 또한 늘 비슷한 말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기저귀 한 장을 가지고 이 방으로 들어온다. 나보고 나가있으라고 말하면서. 사촌언니들은 할머니를 씻기게 하면서. 나 보고는 나가있으라 한다. 나한테는 준 게 없어서 일을 못 시키는 건가. 


할머니는 저 방에서 기저귀를 갈리우면서도 다시금 나를 찾고, 다시금 밥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계속해서 내 끼니가 궁금하다. 내가 할아버지로부터 뭘 좀 받았으면 나는 할머니를 씻겼을까. 잘 모르겠다. 


받은 게 있든 없든, 줬든 안 줬든, 할머니의 안에 반드시 내가 있다는 걸 안다. 그녀는 이미 쌀로 손으로 젖으로 내 아비의 목구멍에 많은 것을 담으며 이미 나 까지도 함께 담았다는 걸 안다.


언젠가-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 만약 아무도 나를 보호할 사람이 없었다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웠을 거다. 그랬을 거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저물어간다. 아예 사라지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그들이 저물고 나면, 나는 깨닫게 될까. 내 안에도 그들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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