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게 즐겁냐고요?
작품은 중절 수술 전문 산부인과 원장 '고령화', 그의 아들 '고주몽', 딸 '고민해'의 고 원장 가족 이야기다. 구성원이 가장 적게 등장하는 최적의 씬을 선정한 후 장면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새 역할은 딸 민해의 약국에서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직원이다. 민해가 고백 받는 상황을 목격한 후 오지랖 부리는 푼수데기를 만들었고, 이름도 '오지람'으로 지었다.
시작이 늦어진만큼 흘린 정보가 없었기에 우리가 연습을 시작하면 다른 조원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구경했다. 고요함이 클 수록 자신감은 작아졌다.
발표 당일, 모두 마지막 연습이 한창이었다. 나는 수정된 대본을 들고 교수님 앞에 가서 꾸벅 인사 올린 후 추가된 내용을 간략히 설명드렸다. 연애편지 건네는 사춘기 학생마냥 잽싸게 도망치는데 뒤통수로 종잇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이 곧 제출자를 호명했고 내부는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나 혼나려나 보다. 온갖 초조함이 한데 뒤섞여 버린 나머지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누가 썼니?"
"저요......"
"그래?"
"......"
"너 아주 잘 썼다. 나중에 작가 해."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던 교수님은 칭찬을 아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으레 건넸을 동기의 칭찬 한 마디와 상기된 표정 같은 것도 뇌리에 콱 박혔는데, 그 애는 연습 과정을 전부 지켜봤으면서도 어떤 게 추가 장면인지 몰랐다고 말했었다.
친한 동생이 물었다. 언니는 글 쓸 때 행복해요? 당시엔 그렇다 했으나, 며칠 골몰하니 답이 바뀌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니다.
글쓰기는 즐겁다. 술술 써낼 땐 희열, 수십 번 퇴고 끝에 갖춰진 문장들은 성취감을 주니까.
오롯하게 나의 취향과 부합하는 글. 모든 문자를 연결하면 나와 똑닮은 이야기가 들린다. 읽을 때마다 흥미로울 지경이니, 그럴 게 늘면 즐거움도 늘어난다.
행복은 그 이후,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줄 때 온다. 독자에게서 얻는 귀한 마음이고, 그제야 솔직한 행복이 수행된다. '읽을 가치'가 있다는 건 곧 인정받았다는 방증이니까.
물론 혼자 읽는 글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만, 나는 그렇다. 비밀 일기가 아니고서야.
결과적으로 달란트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건 맞지만, 품고만 있을 땐 절대 얻을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날개를 타고났대도 펼쳐야 비상(飛上)할 수 있으니, 열심히 퍼덕거리며 시험해 봐야 안다. 날고 싶다면 추락하는 것보다 그저 고개 쳐들고 선망하다 그치는 일을 창피하게 여겨야 한다.
22년도의 나는 올해의 나에게 '브런치 작가'를 선물하면서, 24년의 나를 위해 '열심히 글쓰기'를 부탁했다. 왠지 그쯤에는 내 날개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될 일이 생길 것 같다면서. 작가로써 이루고자 할 목표는 각기 다를 테니, 그간까지 동요 말고 열심히나 하라고.
그래, 타고난 김에 한번 날아 봐야겠다. 오늘 골머리 앓으며 퍼덕거린 이 글도 후에는 하나의 도약이 되어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