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A Jan 12. 2023

타고난 김에 타고 날아 봅시다 1

잘 떠들어서 칭찬 받는 아이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지 벌써 2주가 되어간다. 2022년의 내가 2023년의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한번 열심히 해 봐, 하면서.


 번듯한 직장은 가졌어도 취미는 가져본 적 없었기에, 아드레날린이 전신을 휘감는 듯한 느낌을 태어나 처음 경험했다. 운동에서 얻는 것과 전혀 다른 다른 쾌감.

 선정 안내 메시지는 가히 앞날을 뒤바꾸는 문장이 될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오른다.


 브런치가 나를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날 때부터 글에 소질을 보였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없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나는 어릴적부터 유난히 '말'을 잘했고, 잘 했단다.

 그 영향인지 실제로 꽤 이른 나이에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계기도 참 나답다. 엄마가 오빠랑만 노는 게 싫어서.



 엄마가 두 살 터울 오빠를 앉혀놓고 글공부 시킬 때면 꼭 자리에 끼어들었고, 차창 너머 눈에 꽉 차는 간판들을 나서서 읽었단다. 모르는 단어는 ‘저건 무슨 글짜야’ 하고 익혔다. 엄마가 좋아할 걸 알아서 그랬을까, 뱃속에서 쥐고 나온 기질일까. 무튼 그랬다.


 '관종기'는 다섯 살짜리도 동화책을 읽게 만들었다. 엄마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는 날이면 목 좋은 곳에 앉아 보여주기식 낭독을 시작했다.

 엄마는 귀엽고도 가여운 나에게 반드시 칭찬을 줬고, 이모들은 어머어머 해 줬다. '엄마 이제 나갈 거니까 도나는 책 그만 읽고 쉬어도 돼!' 하면 할 일 마친 딸내미는 책을 휙 덮고 자리를 떴다.






 말발 좋은 어린이는 훌쩍 자라 성인이 되었고, 대학 맛을 보던 시절(다녔다고 하기엔 자퇴를 빨리 해서 이런식으로 표현한다) 한층 심화된 재능을 찾게 됐다.


 당시 김태수 희곡 작가의 희곡 연출 수업이 있었다. 교수님은 좁은 강의실에서 극본이나 미장센 등 연출가의 기본 소양을 갓난이 학생들에게 지도했다.

 다른 수업과 비할 수 없을만큼 흥미로웠고, 열정 가득한 가르침에 늘 두근거렸다.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고 싶었고 '교수님 같은 유명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오래 가진 않았다.



 그 수업에는 시나리오 작성 과제가 있는가 하면, 지정 희곡 중 한 씬을 정해 연출부터 연기까지 모든 장면을 완성시키는 팀 과제도 있었다.

 기말고사 과제로 지정된 작품은 '사랑이 메아리칠 때(김태수 作)'였다. 임의로 지정된 각 조는 발표 씬 선정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시작했다. 우리만 빼고.



 남학생은 모두 네 명. 조마다 한 명씩 속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본격적으로 안 괜찮아진 건 '저출산 시대 풍자'를 담은 줄거리와 남성과 여성의 끝없는 티키타카, 마침내 그들을 이어주는 삼신할미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다.

 

조는 다섯 개, 우리는 남학생이 없다.






 시작부터 패널티가 주어진 셈이다. 교수님 의도가 궁금했고, 총대를 메는 건 꼴랑 몇 살이라도 더 먹은 맏언니의 몫이었다. 바로 나.


"교수님, 여자가 남자 역할을 맡아도 될까요?"

"절대 안 되지. 로맨스는 이성간의 스킨십에서 보여지는 끈적한 무언가가 있는 법인데 그걸 동성으로 대체하면 (어쩌 저쩌 하셨으나 듣고 흘렸다)"

"저희 조에는 남학생이 없는데요?“

"어쩌겠어. 다른 조에서 빌려야지."

'오, 말 진짜 쉽네.'



 각 조는 직접 지정한 씬을 오 분간 연기해야 한다. 캐스팅을 한다면, 그 남학생 혼자 십 분 분량을 연습해야 한다. 그것도 패널티 아닌가? 누가 경쟁자를 위해 그 노고를 자처하냐 이 말이다.


"그러면, 시나리오 수정해도 될까요?"

"뭘 어떻게 수정하게."

"여성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서 해 보겠습니다."

"더 어려울 텐데. 가능하면 해 봐."



 예술인이 가지는 적정 수준의 완고함이었으나, 학생들 눈에는 그저 융통성 없고 뱃심 가득한 옛날 사람이었다. 솔직히 이해해 주실 줄 알았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일을 키워 버렸다.


"언니, 뭐래요? 어떻게 됐어요?"

"남학생을 빌리래."

"누구한테 부탁을 해요. 아무도 안 해 주지. 큰일났네."

"그, 그래서 내가 대본을 수정해 보기로 했어......"



 아, 내 단점은 ‘대충 할 거면 안 하기’다. 기어이 과제를 위한 과제를 만들어냈다.



작가의 이전글 이어폰 쓸 줄 모르는 광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