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A Jan 11. 2023

이어폰 쓸 줄 모르는 광인

노래 잘 듣고 삽니다

 


 매일 아침 아홉 시 육 분에 출발하는 지하철을 탄다. 19개 역을 지나면 아홉 시 사십 분이 된다. 걷는 것까지 도합 한 시간이 소요되는 나의 출퇴근길. 서울 중심을 가로질러 끝에서 끝으로 간다.


 나는 이동 중에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변인들 말로는 그런 게 '진짜 광기'라고 했으나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또래 사람들 중에서 드물다는 건 안다. 왕복 두 시간 조금 더 되는 거리를 ‘맨귀'로 다니는 사람. 이어폰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마당에 스마트한 세상과 거리를 둔다. 선물 받기 싫은 물건 1위다.






 광인이 된 원인 중 하나는 아침으로 올인된 수면욕 탓이다. 좌석에 엉덩이를 대는 순간 까무룩 잠들어 버린다.

 사노비의 신체는 연차가 쌓일수록 출퇴근 맞춤형 인간으로 진화하는데, 개탄스럽게도 나의 스탯은 '안내 방송을 알람 삼아' 쪽에만 특화되었다.

 '귀신같이 깨어나기'는 침대 위일 때와 비슷한 수준인데, 이 스킬은 당연하게도 주변 소음이 차단되는 경우 발동시킬 수 없다. 반드시 한 정거장(희한하게 멀리 가지도 못하고 꼭 거기까지만)을 지나 깨워 주니 이따금 생경한 동네를 경험하곤 한다.



 다른 하나는, 안 쓰고 싶어서다. 말 그대로. 보행자로서 염려하는 교통안전, 그로 인해 야기되는 사건들에 불안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거니와, 정말 듣고 싶은 것은 이어폰을 빼야 들리기 때문이다.


 대부분 ‘살아있는 소리'다. 스트레스 역치가 높아 거슬릴 게 적은 편도 맞다만, 어딜 가나 들리는 히트곡보다 주변을 살피게 만드는 생동감 가득한 소음(공해 수준은 논외)을 사랑한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는 자연에서 온다. 과일 가게 사장님이 단골손님에게 건네는 너스레, 걷다 지친 할아버지 할머니 쉬어갈 때 아이구 하는 소리, 고단한 퇴근길에 저보다 더 커 버린 자녀의 끼니를 묻는 다정한 잔소리 같은 건 오직 사람에게서 온다.



 원체 오지랖이 넓다. 온정에 애착하는 기질도 한몫한다. 좌석을 양보하는 대화에 인류애가 충전되고, 다정한 위로 건네는 지하철 안내 방송 들으며 눈물 훔친다.

 고요함이 싫어 그럴 수 있으나 '소음을 피하고자 귓전에 소리를 주입한다'는 문장은 어폐다. 열린 귀를 막고 다니면 남 사는 이야기에 둔해진다. 감흥이 사라지면 그저 그렇게 있고 싶어 진다. 에너지의 영감도 사라진다.

 


 무엇이든 부딪히고 익혀야 발전하는 것처럼, 나 사는 세상은 보고 들어야 확장된다. 갇혀 살기 대신 같이 살기를 선택했으므로 나는 더욱 넓어지려 한다. 하루가 굴러갈 때 들리는 다양한 소리를 듣고 싶다. 내가 광인으로 사는 이유다.






+

 ‘계산할 때에는 잠시 이어폰을 빼 주세요’라는 문구를 종종 본다. 응대 직원은 키오스크가 아니다. 곧 당신과 작은 대화를 나누고자 하니, 마주하는 순간은 부디 귀기울여 달라는 뜻이다.

가끔은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에서 벗어나, 걸음 닿는 매 현장에 몰입해 보는 것도 좋다.

작가의 이전글 ep.2 어른 말고 '진짜 어른' 되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