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A Nov 22. 2023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춰요

민들레가 쏘아 올린 작은 에코



  독립 후 K-드라마에 빠져 사는 중이다. 넷플릭스도 올 하반기부터 시작했으니 상대적으로 늦게 입문한 셈이다. 시청해야 할 콘텐츠가 한 무더기인데, 이거 안 보던 시절에는 사람들이랑 무슨 대화를 나누고 살았나 싶다.


  11월 3일 오픈. 출퇴근길 전광판은 온통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포스터였다. 볼게, 볼게. 그만해라. 나도 모르게 11월 3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번듯하게 약속을 어겼다. 주말 내내 일정이 잡혀있던 나는 다음 월요일부터 부랴부랴 정주행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이미 마지막화까지 시청을 마친 이들의 후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힐링'이었다. 나는 힐링 필요 없는데.



  기대감이 컸던 탓인지 1회는 다소 다소 뜨뜻미지근했다. 나는 의외로 면전에서 '힐링받아라! 감동받아라!' 하는 식의 메시지 전달 방법으론 자극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사건 발생의 인과 관계와 해결 방식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현대 사회에서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라고는 하나, '어쩌다 감기에 걸렸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해 준 작품은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날도 어김없이 밥상 위에 아이패드를 놓고 몰입하여 시청 중이었다. 저녁 식사는 가볍게 먹겠다는 의지로 곤약밥을 먹었다. 당연히 포만감은 적다. 그날따라 자제력이 무너졌는지, 다 먹은 밥그릇을 앞에 두고 몇 개 안 남은 메추리알 장조림의 씨를 말리고 있었다.



  총 12회차 중 11회차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쉼 없이 달려왔다. 잔잔한 울림들로 마음이 몽글해질 무렵, 막바지에 다가와서야 장조림을 씹지도 못하고 꺼이꺼이 울어 제끼는 '밥상머리 오열 사태'가 발생했다.






(스포일러 주의)

  극 중 '민들레'는 정다은의 동료 간호사다. 일찍 철들 수밖에 없었던 가정환경 탓에 쫓기듯 직업을 선택했던 들레는 선배 다은의 직업 정신을 보며 근간을 흔들 만큼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남자 친구인 여환이 물었다. 너를 설레게 만드는 건 어떤 것이 있는지. 나 말고. 친구도, 취미도, 목표도 없었던 들레는 대답을 주저한다.


  그랬던 들레가 주변의 도움으로 조금씩 변화했다. 진단받은 병명 '엄마'로부터 자신을 치료하고 본인을 위해 나아가기로 한다. 다음 스텝은 오랜 시간 피해왔던 동기 모임에 참석하는 것. 그곳에서 동기 '나라'를 만난다.



  크루즈 승무원인 나라는 탑승객 승하선 시 멋진 공연을 선보이며, 여행객들에게 황홀한 추억을 선물하는 것까지 승무원의 일이라고 했다. 설명해 주는 순간에도 매우 상기된 모습이었다. 영상 속 나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춤을 췄고, 노래 불렀다.


  호기심이 생긴 들레는 나라의 직장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2차 장소까지 따라나섰다. 그곳에서 들레를 반겨 준 이들의 생김새는 다양했으나, 나눠 가진 열정과 흥은 모두 같은 것이었다.

  승무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수줍어하는 들레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술도 한 잔씩 나누고, 웃고, 환호했다. 분위기에 완전히 녹아든 들레에게서 처음 마주하는 얼굴이 보였다.


  정말 희한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치 실연 당한 사람처럼 대성통곡을 했다.






  당시 내 소원은 '노래방 가서 실컷 놀기'였다. 독립 후에는 딱히 부를 사람도 없고, 부를 만한 사람들은 노래방을 싫어했다. 본가 살 땐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과 노래방에 갔다. 셋이 소리도 실컷 지르고, 두 내외의 맹목적인 우쭈쭈도 독차지했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한 행복을 느꼈고, 내게 가장 큰 해소 창구가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걸 취미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흥이 많구나, 노는 데 환장했구나, 나서는 걸 좋아하는구나 한다. 가끔 작정하고 가서 좋아하는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고, 춤추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거늘.

(혼자 갈 수도 있지만 같이 웃고 즐길 사람 없으면 아무짝에 소용없다.)


  나는 운동도 꾸준히 하고, 모임도 자주 참석하는 편이다. 맛있는 것도 아주 잘 챙겨 먹고, 글도 (아주 가끔) 쓴다. 이렇게나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기에 스트레스도 더러 해소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행위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마치고 나면 '뭔가 2% 부족한데...'라는 생각만 깊어질 뿐.



  한동안 언니에게 노래방 가고 싶다며 생떼를 부렸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질색하며 (물론 다른 사람과 충분히 갈 수 있으나 삘이 꽂혔을 때 바로 가고 싶었음) 다른 방법을 찾자고 회유했다.


  그간 쌓일 대로 쌓인 스트레스 탓인지, 완강히 거절하는 모습에 서러워져서 눈물 한 바가지 퐁퐁 흘렸었다. 이럴 일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착한 언니는 크게 놀라 달래주었다. 지금 당장 가자! 노래방 가자! 하며 위기로부터 탈출하려 했으나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 책임져' 상태가 된 나는 싫다고 울부짖었다.






  언니에게 들레 이야기를 했다. 들레가 꿈을 찾는 게 기특해서 울었어? 아니면, 감정이 이입 됐어? 장기전에 어이가 없어도 깡그리 털릴 만한 개연성이지만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냥, 웃음기 없던 애가 활짝 웃는 게 짠해서. 해방감이 눈에 보여서? 나도 몰라, 왜 눈물이 나는지.......


  본인도 몰랐던 내재된 열정이 잘만 하던 간호사를 관두게 하고, 새 꿈을 좇게 만들었다. 지하 연습실에서 동료들과 합을 맞추며 시종일관 웃는다. 각자만의 해소 창구가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려서일까. 별거 아닌 일에 큰 위로를 받았나 보다. 나 힐링 필요했네.



  하지만 나는 청개구리다. 요즘엔 나서서 가자 하니 가기 싫어졌다. 그냥, 그 순간 흔쾌히 '좋아, 가자!' 하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난 신이 날 때 (이런)춤을 춘다.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 요 요 요



  

 






작가의 이전글 나의 다이나모스, 나의 도나를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