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에게 창피하기 싫어서야. 내 스스로가 용납이 안되는 거지.”
예고 입시시절부터 따지면 사과는 만개는 더 그린 거 같다. 서있는 사과, 누운 사과, 뒤돌아있는 사과, 반 쪼개진 사과, 병에든 사과.
사과라는 구조물의 구성과 특징을 내 몸에 익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나. 그럼에도 나는 지금도 사과를 보지 않고는 그리지 못한다.
왜?
왜일까. 정확히 말하면 내 마음에 들게 그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 마음에 드는 사과란, 무엇인가? 빨간 동그라미에 꼭지하나만 달아도 사과다. 그림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내 마음속엔 정답이 있나보다.
입시준비를 하던 시절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는
“보고 그려.”
“안 보고 그렸지?”
그때의 우리는 창의적이고 싶었나보다. 지금 나에게 레퍼런스 없는 작업이란, 시도할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영역이고 언젠가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이다.
“그땐 보고 그리는게 그렇게 어려웠는데 왜 지금은 그게 안될까?”
“내 스스로가 용납이 안되는 거지. 내 자신에게 창피하기 싫어서.”
친구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건가? 내가 용납할 수 있는 사과는 무엇일까?
창의력 대장이 되고 싶지만 오늘도 나는 사진첩에 하트를 누르며 작업에 사용할 레퍼런스를 골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