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Rococo)를 풍미한 화가, 앙투안 바토(Antoine Watteau)는 달콤하고 우수에 젖은 고요함이 내려앉은 공원의 연회를 그렸다. 젊은 연인들은 꿈꾸는 듯한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들 위로 우아한 햇빛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이처럼 아름다운 환상 세계를 그려낸 화가는 2년 후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가 그린 한 소녀의 초상에도 그와 같은 어두운 색조가 나타난다. 빠르고 경쾌한 붓질,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품위 있는 호사스러움은 끝내 그림에 짙게 끼얹어진 어딘지 슬픈 분위기를 가리지 못했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 불같은 정열, 화가로서의 사명감, 타인과 사귀고자 했던 강렬한 열망은 젊고 광기 어린 화가를 지독히도 괴롭혔다.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나무, 텅 빈 방과 같이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들은 정신적인 위기와 절망으로 작품 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그의 삶 마지막 3년 동안 그려진 것들이다.
아름다움의 덧없음에 대한 깊고 슬픈 깨달음, 꺼져가는 삶에 대한 치열한 애정, 격앙된 강렬한 감정은 화가의 몸과 마음을 불태우는 격렬한 고통이었으며 동시에 폭포같이 쏟아지는 위로와 구원이었다. 그들의 짧은 삶, 찬란하게 아름답던 날 그들은 붓을 잡고 있었고 그릴만한 가치가 있는 그들의 세계를 그렸고 그 순간들은 Starry, starry... 눈부시게 빛났다.
2. 작가 note
요리는 내게 초콜릿으로 쓴 시다. 들뜬 왈츠고 시고 떫은 그림이고 맵고 쓴 고백이다.
열정은 고통이었다. 성실하고 지난하게, 또 격앙되고 고조되고 예민하게 나는 창작 행위에 스스로를 던졌다.
예술은 때때로 폭풍처럼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고 마음을 압도한다. 내가 예술가로서 진실로 진실로 원하는 것은 나와 만난 당신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번 팝업의 주제는 우리 땅에서 초여름에 돋아나는 무화과, 오디, 산딸기, 불에 풀풀 구우면 밀밭 냄새가 나는 햇죽순, 달고 진한 밭마늘, 얼갈이, 열무... 한치 먹물을 끼얹은 보리와 콩, 옥수수, 별과 바다를 닮은 소라다. 그들은 섬세하게 아름답고 강렬하게 빛나며 오래오래 기억될만한 가치가 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진한 색조에 우아하고 섬세한 묘사, 특히 약간 젖은 듯한 질감 연출에 초점을 맞췄으며 재료 본연이 가진 형태와 색, 맛과 향을 과도한 변형 없이 자연스럽게 담아내고자 했다.
완두콩 핀초(Pintxo) 뜨겁고 열정적인 동료는 어릴적 어머니가 만드시던 흰 쌀밥 위에는 완두콩이 있었다고 했다. 논과 밭 위 뛰어노는 생명들을 빵 조각 위에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완두콩 스프레드와 크림 치즈로 입안에 꽉 찬 풍부한 질감을 주고 핑크 페퍼로 스파이시한 입체감을 주었다.
복숭아 가스파초(Gazpacho)에서는 복숭아 그 자체의 본질과 생명력이 느껴져야 했다. 달고 서늘하게 만든 냉수프 위에 우리 숲 곳곳에서 강인하게 돋아난 짙은 초록빛 비릅과 돌나물, 열무 이파리를 올리고 호두와 후추를 뿌렸다. 산딸기와 오디와 같은 열매들을 듬뿍 곁들여 수줍고 무성한 초여름의 숲을 표현하고자 했다.
구운 햇죽순과 밭마늘 또한 여전히 숲과 밭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그들 본연의 모습이어야 했다. 가로로 베어내어 알알이 박힌 밭마늘 옆으로 흑설탕과 거칠게 부순 흑후추를 뿌려 마치 흙과 같은 질감을 주었고 구운 햇죽순과 열무 뿌리에는 연두빛 부추 페스토가 끼얹어져 마치 6월의 논밭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처럼 알싸하고 달콤한 맛을 연출하였다.
한치 먹물을 끼얹고 소라를 곁들인 보리 빠에야(Paella)는 마치 별과 같이 독특한 질감의 소라 껍데기와 보랏빛 색조의 커다란 꽃, 거칠거칠한 보리쌀의 배치를 통해 고요하고 고독한 밤하늘을 보여주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