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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Dec 08. 2023

내향형 인간에게 황금 인맥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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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한 모양이다. 작은 원룸에서 복층으로 된 오피스텔로 집이 넓어졌다. 그간 돈 좀 벌었나 보다. 그날 방송은 지락실이었고 콘셉트는 은지네 집들이였다. 저녁 무렵 피디와 작가가 먼저와 집이 좋다며 집 구경을 한차례 마친 뒤, 카메라를 설치하고 다른 출연자를 기다렸다. 본격 촬영에 앞서, '팔을 다친 스텝'을 두고서 그들끼리 하는 소소한 대화에서 찐으로 친한 그들의 우정이 화면으로도 전해지는데, 그런 찰나의 장면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묘한 애정이 함께 싹트는 김엄마다. 집들이 선물을 하나씩 들고 속속 도착하는 인물들. 연예인들은 집들이 선물도 하나같이 고가의 제품들이다. 그나저나 지락실의 묘미. 게임이 빠질 수 없다. 오늘은 콜백 챌린지다. 각자의 최근 통화 목록에서 공통으로 지정한 통화 상대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끊었을 때, 누가 먼저 콜백 받는지에 따라서 승리하는 게임이다. 이런 방송을 보고 있으면, 출연자가 방송 이면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 엿보이는 틈이 많아 김엄마가 쫄깃하게 훔쳐보는 좋아하는 상황이다.  


각자 회사 대표님에게 전화를 걸기로 정했다. '저는 대표님이랑 맨날 놀아요.' 하는 사람이 있고, '대표님.. 나 대표님 번호 있을까...' 하는 사람이 있다. 마냥 웃을 때가 아니다. 김엄마가 저기 앉아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얼굴이 굳어지며 보는 사람조차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방송 콘셉트에서는 오히려 출연자가 통화 상대와 어색하고 친근감 없이 비즈니스 상황을 보여주어도 그것대로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래도 단연 돋보이는 자는 인맥 부자, 외향형의 사람들이 어떤 소셜 스킬을 보여줄지 기대가 걸리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3, 2, 1.
걸고 삼 초 후 끊은 뒤, 모두 뚫어져라 핸드폰을 보고 있다.
띠리링


은지 핸드폰이 먼저 울린다. tvn 상무님이자 코빅 대표 박성재 님에게 일등으로 콜백을 받은 은지다. 무려 다음 주 식사 약속까지 있는 관계란다. 전화를 걸기 전부터 '솔직히 내가 이길걸.'이라며 승리를 장담하는 그녀의 여유가 탐났다. 방송의 작은 단면이지만 평소 그녀의 인성과 인맥이 엿보였다. 혹시 전화가 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전화가 차라리 안 와서 게임에서 져도 괜찮으니, 차라리 벨이 울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김엄마에게는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경지였다.






김엄마는 인맥 흙수저다. 심지어 뭣도 없는 판에 나름 고립을 자처하기도 한다. 김엄마의 융통성 없는 인간관계에 대한 처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너무 빠른 판단으로 관계를 저버린다. 김엄마가 이때껏 만나본 사람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에 대한 나름의 통찰력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언제나 김엄마의 함정이다. 초면에 캐치해 낸 그 사람의 단점을 일반화하는 것이, 더 깊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할 구실을 만들곤 했다. 둘째, 가치관이 안 맞다고 여긴다. 여기서도 그 사람의 가치관이 뻔히 보인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탁 보면 김엄마와 비슷한 성정인지 아닌지를 아주 빠르게 느낀다는 것은 김엄마의 민감하고도 세심하고 여린 성격의 일장일단이다. 셋째, 상대의 실수를 나쁜 기억으로 담는다. 절대 잊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한마디 실수가 김엄마의 호수 정중앙에 콕 박히는데, 이런 기억이 김엄마에게서 떠나지 않을 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기에, 더 오래 두고 보지 않고 정리할 근거로 삼아 버리는 것이다. 식당 좀 좋은 데 잡지 그랬니. 너 차가 왜 이렇게 후지냐 요즘 차들 잘 나오던데. 이런 말들.




계속 흙수저로 살 텐가. 그러기엔 김엄마의 여생이 너무도 많이 남았다. 여기서 조금은 더 확장하기로 마음먹어 보는 김엄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맥은 연결이다. 확장된 인간관계를 원하는 김엄마의 다짐은 이러하다.


첫 번째 다짐. 일단 그 사람. 겉으로 봐도 차분하고 진중해, 왠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둔 동네의 그녀. 아이와 연결고리가 있어 서로 지나치며 인사만 하던 사람이다. 더 친해지고 싶고 오래 알아가고 싶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계속 드는 이. 그녀에게 이렇게 해보려 한다. 만나고, 번호를 받고, 1주일 이내 톡, 1주일 이내 톡, 1주일 이내 톡, 두 번째 만나고 톡, 톡, 톡, 세 번째 만나고. 사람이 마음을 여는 데 두 달 정도가 걸린다는데, 이렇게 노력해서 이어갈 연 인지는 두 달 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을 터. 안 해 본 시도를 해 보기로 한다.



두 번째 다짐. 캘린더를 만든다. 이름하여 인맥 캘린더다. 수동적으로 연락이 오면 허둥지둥 만나는 것에 벗어나는 것이다. 먼저 선수 쳐 연락하고 약속을 잡아 두기로 한다. 한 달에 두세 번이면 족하다.


세 번째 다짐. 돕는다. 김엄마는 상대에게 도울 것이 없는지 짐작해 보는 습관이 있는데, 더 적극적으로 해보련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도움을 요청할 만한 기미라도 보이면 그건 기회다. 문제해결에 도움을 준다면 지인은 각별히 생각하여 '자기 일처럼 나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여긴다. 마음의 빚을 지게 하는 것이다.




다 필요 없고. 됐고.라는 식의 마인드에서 태세를 조금 바꿔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확장을 느끼는 김엄마다. 지독히도 내향형인 김엄마에게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이 비약적으로 넓어질 순 없겠으나, 한두 명의 새로운 사람을 인생의 폭 안에 들이는 것만으로도 다짐의 성과는 있는 것이려니.   



내향형 인간은 황금 인맥을 갈망한다. '사람을 유혹하는 5가지 기술' 같은 인스타 피드를 클릭해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 속에서 오히려 황금을 못 찾는 것이 김엄마와 같은 내향인의 한계이다. 빛 좋은 개살구. 인스타 팔로우가 백 명이 넘어가도, 사실 내용 없는 하루에 맥이 풀리지 않는가. 각종 그룹 채팅방에서 나의 존재감을 따지기도 전에 쏟아지는 정보에 파묻혀 길을 잃고 나면 헛헛하다. 2km 반경에서도 두세 군데 찾을 수 있는, 안 들어가 봐도 속이 훤한 편의점 같은 사람들이 온라인상에는 많은데, 내 사람 같지는 않다. 너무 많은 사람의 홍수를 피하는 것은, 내향형인 김엄마로서는 오래된 습관 같은, 스스로의 차단일지도 모른다.


찐 맛집. 내향인 김엄마가 진정 원하는 것은 화려한 인맥보다 찐 리얼 동네 빵집 같은 사람이다. 동네 알짜배기들은 파리바게트보다 먼저 찾는 그런 빵집 같은 곳 말이다. 동네 빵집은 브랜드 네임은 없어도 진정성이 있는 법. 김엄마부터 우리 동네에 스멀스멀 갓 구운 빵집 냄새를 꾸준히 퍼트리다 보면 언젠가 황금 같은 거위알을 가진 이가 냄새 맡고 찾아올지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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