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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Jan 26. 2024

LED 등이 고장났다

부스스한 꼴로 나와 제일 먼저 접촉하는 버튼은 거실을 밝힌다. 아침 루틴 중의 하나다. 밋밋한 사각형이 조합된 저 등의 디자인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몇 가지 안되는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고른거겠지. 매번 등을 쳐다보며 살지 않지만, 볼 때마다 영 매력없다.


그런데 네모 모양의 한 쪽 변에서 껐다 켜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뿔싸. LED 등이 고장났다. 또 일거리가 늘었다. 아침부터 처리해야 할 일을 맞닥뜨린 김엄마의 마음 한 구석에 숙제가 얹히는 순간은 아름답지 못하다.  


순간적으로 언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 주간 일정을 훑었다. 시급한 일은 아니므로, 언제까지 여유를 두고 고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일정 중에서 하나 걸리는 일이 떠오른다. 파자마 파티다. 며칠 뒤, 아이 친구가 엄마와 함께 김엄마 집으로 놀러와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고쳐야 할까.

말까.  





꾸안꾸. 청소한 듯 안한듯. 열심히 청소했지만 원래 이러고 사는 줄 알았으면 좋겠다. 김엄마의 손님 맞이는 유별나다. 얼마나 분주한지 모른다. 일단 락스를 뿌려 화장실을 구석구석 청소한다. 특히 물 때가 잘끼는 바닥 모서리를 중심으로. 양치 거품이 튄 화장실 거울도 닦아내고, 손님이 열어 보진 않겠지만 혹시나 하여 수납장 안에 있는 물건도 보기좋게 정렬한다. 수건은 최대한 기품 나는 좋은  색깔을 고르고 걸린 수건에서 혹시 냄새가 안나는지 확인한다. 다음으로 거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워 깨끗한 봉지로 덧입혀둔다. 내용물이 안보이게. 부엌 가스렌지 주변의 기름 때를 닦아내고 렌지 위로는 가급적 냄비는 치워버린다. 정돈된 느낌이 중요하니까. 


이제 손님의 시선으로 집을 쭉 훑는다.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박스와 옷가지 등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운다. 현관의 신발을 정리해 넣는다. 햇볕이 들어오는 사이로 티비 주변 먼지가 보여 급하게 닦는다. 테이블 위에 평소 올려두던 것들을 대부분 정리하고 깨끗한 상태로 둔다. 거실 바닥에 건조기에서 막나와 치우지 않은 빨래 더미를 치운다. 아이방에 들어가서 평소 대충 개놓던 이불도 각잡아 정리한다. 모델하우스를 만들 판이다. 마지막은 냄새다. 손님이 들어왔을 때 기분 좋은 향이 은은했으면 싶어서 창문을 조금 열고 향초도 피워둔다.

 

김엄마는 정돈된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 누추한 꼴은 이왕이면 가려서 보이기 싫다. 그 집에 놀러가봤더니, 이렇더라는 식으로 흠이 날만한 이슈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곤해보여도 예민한 탓에 어쩔 수가 없다. 내향인으로서 김엄마 집에 손님이 다녀가는 일은 손에 꼽는 이벤트인데, 그 소수의 인원 중에 다녀간 뒤, 신경쓰이는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탓이다. 우리집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고 꼬리를 물고 생각했던 트라우마가 있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이불킥을 하며 괴로워했던 순간들이 김엄마를 더 분주하게 몰아붙인다.







조명 집에 전화했더니, 출장비 5만원에 교체비용 3만 5천원이란다. 8만5천원이다. 선뜻 결정하기에 머뭇거려지는 액수다. 기사 아저씨가 정확한 판단을 위해 사진을 찍어보내달라하여 다시 불을 켜봤더니, 어라, 깜빡거림이 사라졌고, 불을 끄면 깜빡거리다 꺼진다. 고민이 된다. 이대로 써, 말어?


그 날을 그려본다. 손님이 있는 상황에서 불빛이 깜빡거린다. 며칠 전부터 깜빡였는데 안 고쳤어요. 깜빡거리는 쪽의 불을 끄니 실내가 다소 어둡다. 불을 켜야 하는 상황은 저녁이니, 거실 쪽이 다소 어두워도 부엌 등을 모두 켜면 오히려 적절한 빛의 농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큰 문제는 없다.





어디까지 완벽해야 할까. 예민하고 잔걱정이 많은 김엄마는 오늘도 이렇게 에너지를 쓴다. 남들보다 더 빨리 피곤해지는 이유다. LED 등이 고장났을 뿐인데, 김엄마는 이렇게도 많은 생각을 해대느라, 다른 일은 더 깊게 생각할 여력이 없다. 최악의 상황까지 그려본 뒤에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는 납득할만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안도한다. 그런데, 그럼 언제 고칠까. 다시 월간 일정을 세세하게 따져보려 다이어리를 펼치는 김엄마를 어쩌면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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